참새를 잡은 거미 2
2.
..내가 그를 알게된 것은 전쟁의 따갑던 총성이 조금 자지러들고 동네 주변에 주둔하던 그 무서웠던 군인들이 물러난 후 우리 아이들이 집 밖에 나가 놀아도 괜찮을 즈음의 가을이었다.
정말 그때까진 우리는 집 밖에 나가서는 안되었다. 언제 누구의 총을 맞을 지 몰랐고 잡혀 갈 수도 있었으며 길에서는 아무 물건이나 줏어서도 안되었다. 그것들이 폭발하여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또 들려오곤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주는 선물을 받아서도 안되었으며 이상한 일은 언제나 신고를 해야한다고 했다.
참담했던 전쟁은 온 동네를 불사르고 삼칸 사칸, 때로는 기와집으로 105가구가 살던 농촌마을을 모두 한칸짜리 귀틀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방 바깥에 돌을 쌓아 부억을 만들고 우리는 그 단칸 방에서 아홉식구가 살았다. 아이들은 잿더미를 헤쳐 깨어진 그릇조각이나 기와조각을 가지고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리 집 뒤로는 내 걸음으로 한시간이상이나 걸어야 돌 수 있을 만큼 큰 대밭이 있었는데 나는 그 대밭이 늘 무서웠다. 그 속에서 공비들이 숨어 있다가 어느 시각에 튀어나올 것도 같았고 큰 짐승이 살것도 같고, 큰 뱀이 득시글 거릴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집 옆쪽 대밭 언저리에 피난 때 가재도구를 숨겼던 굴이 있었다. 물론 소개(疏開:소까이)에서 돌아와 보니 그 속엔 아무 것도 없었다. 모두 도둑맞은 것이다.
굴 오른편에 큰 누나의 나이(내가 태어나기 전에 벌써 시집간 누나)보다 오래된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집쪽 큰 가지는 집이 불탈때 화기를 받아 말라 죽었으나 반대쪽 작은 가지는 살아남아 베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굴 속에서 추수를 끝낸 집단(벼 묶음)을 펴고 집을 만들어 그 안에서 집 주인하고 놀았다. 물론 방을 여러개 만들었다. 할머니 방도 만들고 아버지 어머니의 방, 그리고 누나들 방이 세개 내 방도 따로 만들고 동생방도 만들다보면 언제나 방이 모자랐다.
이 놀이가 끝나면 여전히 우리 아홉식구는 방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밥을 먹고 자야했다.
그 날은 집단으로 만든 그 굴 속의 방에서 서쪽으로 지는 햇살을 막 받을 지음이었는데 감나무 죽은 가지 아래에 큰 밤알만한 검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공중에 저렇게 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굴밖으로 나와 그것이 커다란 거미라는 것을 알았다. 거미는 자신이 뽑은 실의 끝에 매달려 바람을 을 기다리며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매달려 있었다. 그 거미는 내가 여태까지 보아온 가장 큰 거미보다 더 컸다. 거미가 저렇게 클 수 있다니. 나는 신기해서 가슴이 뛸 지경이었다.
나는 그날 밤 벌써 허풍장이가 됐는데 저녁을 거의 다 먹고 기어이 그 말을 실토한 때문이었다 "나 하사이 밤 만한 거비 봤다! "
온 식구들은 들은체도 안했다. 하사이 밤은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밤이다. 하사이란 일본 사람이 우리마을 뒷산에 30정보(약 9만평이다)를 일구어 신 품종 밤나무 밭을 만들었으며 해방이 되자 그곳은 한국사람의 차지가 됐으나 그 밤의 이름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 주변에서 나는 밤은 대개 조랑밤으로 그다지 크지 못했다. 사실 그 거미가 하사이밤만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집 밤보다는 훨씬 컷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데 누나들은 한 참이나 있다가 웃어넘기며 또 후라이하며 나를 놀렸다. 나는 바로 그 날 거짓말 장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그 거미를 보았다. 나의 놀이터래야 그곳밖에 더 있는가? 거미는 며칠간이나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혹시 죽은 거미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어느날은 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그 거미를 한참이나 찾았고 그 때 나는 그가 나의 친구라는 것을 드디어 알았다. 그는 집과 감나무 꼭대기 사이에 그물을 치고 그 중간에 버티고 있었으며 때로는 나무 속 어디에 가서 숨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숱하게 많은 벌레를 잡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드디어 참새까지도 잡는 것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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