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1
김시습 평전
심경호 지음, 출판 돌베개 값 28,000 원
불교·유교 이상 연결한 선비
이 책 첫 장에 김시습이 그린 선비 모습의 자화상이 실렸고, 그 뒷장에는 스님 모습과 신선 모습의 초상이 실려 있다.
그의 초상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전하는 까닭은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해석에 따라 그의 옷차림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편력이 유·불·선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그의 옷차림을 바꿔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 옷 뿐이었던가. 조정에서는 그의 유가적인 충절을 부각시키려고 그의 전기를 짓게 하였으며, 몇백년 전에 죽은 그에게 이조판서라는 벼슬과 청간(淸簡)이라는 시호도 내렸다. ‘해동전도록’에서는 여말선초의 도맥을 후대에 이어주는 중시조로까지 표현하였다.
그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를 지었던 문인이었으며, 성리학과 정통 유가 사관의 주제를 저술로 남긴 참여 지향의 선동가였다. 불교의 사유를 유교의 이상과 연결시키려고 고심했던 철학자였으며, 몸과 생명을 중시하여 수련 도교를 실천한 혁신적인 사상가였다.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였으며, 국토 산하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역사를 발견했던 여행가이기도 했다.
김시습은 자신의 모습을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했는데, 저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한데 아울러 김시습 영혼의 일대기를 서술하였다.
천재 김시습은 세 살 때 외할아버지에게서 한시를 배웠는데, 세종 임금에게 불려가 그 솜씨를 보이고 ‘오세’라는 호까지 얻었다. 그러나 그는 곧 한시의 구속을 벗어났다. 허균은 그의 시가 “맑고 호매하여 세속을 초탈하였다.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서 다듬고 꾸미는데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평했는데, 그가 형식을 벗어난 것은 자기 검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노래를 이루지 못한 독백과 오열도 많은데, 이것이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기도 하다. 평전 곳곳에 그의 시가 실려, 그의 고뇌와 갈등을 보여준다.
율곡의 '김시습전' 100배분량 본격 평전
곳곳에 독백 담은 시, 고뇌·갈등 보여줘
선조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율곡에게 김시습의 전기를 짓게 하자, 율곡은 그의 생애를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마음은 유가인데 자취는 불가라는 뜻이니, 당시 형편 때문에 스님의 옷을 입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때 출가했던 율곡 자신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중불교 조동종을 정리한 ‘중편조동오위’를 거쳐 ‘십현담요해’ 저술에 이르는 과정이 단순한 자취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 자취를 추적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으며, 700쪽이 넘는 평전에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김시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시습의 생애에 있어서 두어 가지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받아들이지 못해 체제에서 뛰쳐나갔지만 그의 불경 언해사업을 예찬하였으며, 세조가 친히 도첩(승려 자격)을 적어 주자 ‘요임금 때 같은 태평시절에 왕도정치를 펼쳤다’고 찬양하였다. 한때 환속하고 결혼했던 시절의 행적도 불투명하다.
저자는 김시습의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평전이라면 모순되는 행적의 평가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독자들은 모처럼 김시습을 제대로 이해한 평전을 읽게 되었다. 율곡이 지은 ‘김시습전’보다 백배나 늘어난 분량은 우리에게 즐거움이자, 또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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