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강
<<주역>>이란 무엇인가?
1. <<주역>>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초기의 주역은 분명히 점치는 책이었다. 그러나 주역은 신이 만든 책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신의 뜻을 편 책이 아니라 인류의 경험이 결집된 것이다.
중국의 상고 시대에는 생산력의 수준이 낮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인간은 자신의 우면을 주재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괴이한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어 신의 뜻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인적 의지와 능력을 지닌 존재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여김으로써 이러한 초인적 의지와 역량을 인격화해서 ‘상제’ 또는 ‘상천’이라고 불렀는데, 후세사람들은 이를 통칭하여 ‘신’이라고 하였다.
신이 인간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고 여겼기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의 뜻을 알아 그 뜻을 위배함으로써 입을 화를 피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신의 뜻과 통하는 길을 모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점을 치는 것이었다.
점을 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시초를 배열 조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와 부호를 얻어서 이를 근거로 신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초를 신령한 풀- 신초라고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불로 거북이의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를 구운 다음, 거기에 나타난 갈라진 무늬의 형상을 보고 신의 뜻을 판단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복(卜)이라고 하였다. 이것 또한 거북의 등껍질과 동물의 뼈를 신령한 물건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숫자와 부호, 갈라진 무늬의 형상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점을 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점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감수성에 근거했을 뿐이었다. 점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번 숫자와 부호, 갈라진 무늬의 형상을 기록해 두었다가 이를 실제로 행하였을 때 효험이 있었는지를 검증한 다음, 그 결과를 그 점복의 숫자와 부호, 갈라진 무늬의 형상 아래에 기록하였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점을 쳐서 얻게 된 숫자와 부호, 갈라진 무늬는 근거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실제로 효험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이러한 숫자와 부호, 갈라진 무늬의 형상 및 그것의 실제적 효험의 기록을 정리하여 책을 만들어 점을 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점서이다.
고대의 점치는 책은 한 종류가 아니었으며, 어떤 종류의 서적이든지 짧은 기간 동안에 곧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주역은 서주 시대에 형성되었고 시초의 변화로써 사물의 변역을 예측하는 것이어서 후대 사람들이 ‘주역’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주역은 폭넓게 전해졌다. 그러나 주역의 원래 형식이 비교적 예스럽고 투박하며, 기록된 상황 또한 축약되어 있어 후대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주역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설명과 해석을 첨가하였다. 이러한 설명과 해석은 일정 기간 동안 차곡차곡 쌓이고 나름대로 정리되어서 책으로 엮여졌는데, 이들의 주역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런 책들은 주역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었다.
후대사람들은 이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각기 이름을 붙였다. 즉 주역을 전수서를 ‘역전(易傳)’이라 하며, 원래의 주역을 ‘역경’이라고 한 것이다.
‘전(傳)’은 전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역전’이란 주역을 전수하는 책이란 뜻이다. 또한 ‘경’은 항구불변의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에 대한 상대적인 말이다. ‘전’은 전수를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여러 종류가 있고, 각각 설명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원본인 주역은 단지 한 종류로서 여러 종의 ‘전’이 받들고 따르는 항구불변의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역경’이라고 한다.
여러 역전들이 오랫동안 전해지면서, 어떤 역전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하였다. 한 대까지 계속 전해져 온 것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역전으로는 열 가지가 있다. 이것이 바로 단사상전(彖辭上傳), 단사하전(彖辭下傳), 상사상전(象辭上傳), 상사하전(象辭下傳), 계사상전(繫辭上傳), 계사하전(繫辭上傳),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設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십익’이라고 부르는데, ‘翼’이란 ‘羽翼’ 즉 새의 날개를 의미하며 역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대 이후의 주역은 주역의 원본인 역경은 물론 한 대까지 전해져 온 역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한 대 이후에는 주역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단지 역경 뿐만 아니라 역전에 대해서도 연구했으며, 주역의 점치는 방법과 그 속에 담겨진 도리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또 주역의 문구에 대한 훈고와 고증을 통해 인간사의 변화와 우주와 천지를 설명하였는데 이는 문예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천여 년의 세월 동안 주역에 관한 연구 저작은 3천여 종을 넘어 광활하고 방대한 하나의 학술 영역을 형성하였는데, 이 영역을 역학이라고 한다.
이렇듯 주역의 역사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주역이라고 말할 때의 ‘주역’은 단지 ‘역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역전’ 그리고 ‘주역’에 관련된 방대한 지식체계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와 체계에 기초하여 이후의 설명이 진행될 것이다.
2. 주역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역경은 64괘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괘마다, 괘명, 괘상, 괘사, 효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리괘의 경우, ‘리(離)’는 괘명이고, ( )는 괘상이다. “利貞 亨 畜牝牛吉”은 괘사이고, “初九 履錯然 敬之無咎....”는 효사다.
괘상은 여섯 개의 부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부호마다 양(-) 아니면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효’라고 한다.
괘사는 각 괘상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설명한 것이고, 효사는 각 효가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섯 개의 효는 각기 나름대로의 효사를 가지고 있다. 리괘의 경우, 초구는 가장 아래의 일효를 가리키며, 그 효사는 “이착연 경지무구”이다.
역경은 신비적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축적되고 정리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리괘의 괘사는 옛날 사람들이 점을 쳐서 리괘의 괘상을 얻은 다음 길리(吉利)를 얻었고, 점을 친 일이 암소를 기르는 일과 관계가 있었으므로 그 괘 밑에 “이정 형 축빈우길”이라는 괘사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정”은 리괘과 길한 괘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고, ‘형’은 제사지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축빈우길’은 이 괘를 얻은 후에 암소를 길러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줄곧 신비스러운 시각으로 역경을 대하면서 이를 사용해 점을 쳤으나, 역경의 가치는 오히려 예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 체득해 낸 이치에 있다. 예를 들면 괘상은 모두 양과 음 - 두 종류의 부호로 구성되어 있고, 이 두 종류의 부호가 여섯 개의 층차로 중첩되어 64괘를 이룬다. 이것은 아무런 부족함 없이 하나의 완전히 정비된 순차적 배열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것은 점치는 형식의 이면에 옛사람들이 그들의 생활 과정에서 얻은 세계에 대한 이해의 시각이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는 기본적으로 성질을 달리하는 두 종류의 사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사물들이 출현한 것은 성질이 다른 기본적인 두 종류 사물의 분량과 위치가 같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역경에는 이러한 관념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점치는 형식 속에 모호하게 내포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경은 일종의 점서이지 도리를 설명한 책은 아닌 것이다.
반면에 역전은 역경의 점치는 방법을 해설하면서도 도리를 밝혀 이를 설명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도리 가운데 어떤 것은 역경 속에 암암리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자 자신의 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주역의 기본 이론과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러므로 역전의 공헌은 주역을 점서에서 철학서로 전환시킨 데에 있다. 예를 들면 <<계사전>>에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구절은 전세계의 기본 법칙을 설명한 것으로 상반된 두 가지 요소의 상호 교체야말로 모든 사물을 변화 발전시키는 근본 법칙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역경>>은 점서로 남게 되었지만 <<역전>>이 철학서로 변한 것은 한 대부터 역사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주역>>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주역>>을 학문의 일종으로 생각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점술의 일종으로 여긴 것이다.
학과 술은 서로 다른 분야이다.
학은 <<주역>> 속에 담겨 있는 도리를 연구하는 것이고, 술은 <<주역>>을 이용하여 인사 속의 길흉을 추측하는 것이다.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두 인식은 각각 상호 대립적인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전자는 인간의 지혜를 계발하여 인간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물에 대응하는 능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후자는 사람들이 <<주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신비감을 강화하여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제거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의 노력까지 버리게 하여 사람들을 어리석고 우둔한 혼미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역>>의 가치는 학에 있지 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 선현들의 논의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공자(기원전 551-479)는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이 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지,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주역>>의 의리를 깨닫게 되면 점은 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순자(荀子 기원전 313-238)는 이러한 학풍을 요약하여 “역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한나라 때의 학자 가의(賈誼 기원전 200-168) 역시 당시의 점치는 사람들을 가리켜 자신들의 말재주를 바탕으로 남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재물을 빼앗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천한 무리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주역>>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학과 술을 구분하여 역학을 점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술로 학을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이다.
3. 주역 연구의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이전의 역학 연구에서는 상호 관련을 가지면서도 상이한 두 가지 연구 방법이 병존해 왔다. 하나는 문자에 대한 훈고(訓詁)와 고증을 중시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역에 담겨 있는 의리를 밝히고 해석하는 것을 중시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주역 경전의 문구와 자의를 주해하고 괘상 및 그 논리 구조를 검토 분별하는 것으로, 주역의 본래적 의의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주역 경전에 담긴 도리를 밝히는 것으로, 때로는 주역 경전을 빌려 자신의 역학관을 피력하거나 자신의 이론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연구 방법은 모두 오랜 세월 동안 역학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후자는 중국의 역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도 주역을 연구하는데데 이 두 종류의 연구 방법은 참고할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는 주의해야 한다. 첫째 주역 경전의 훈과와 고증에 대한 연구는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조건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그 의리를 밝히는데 있어 주역 경전의 문구를 벗어나 임의로 견강부회하며 이를 달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 외에 또 다른 과학적인 연구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주역 계토의 전적을 하나의 역사적 발전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주역을 살펴보면 주역은 경, 전, 학,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세 부분은 각기 다른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상적 발전 수준을 반영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세 시기의 문헌을 연구할 때에 당연히 그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분석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그것들 사이에 진행된 사유 발전의 논리 과정을 탐구하고, 법칙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정리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경험적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주역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역사적이고 분석적인 연구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운용하면 주역 경전의 본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역대 역학 발전의 과정과 사상사에서 역학이 차지하는 지위와 공헌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역경 건괘의 괘사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후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해석들을 내놓았는데, 역전에서는 이것을 네 종류의 도덕 즉 “인의예건(仁義禮乾)”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건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는 뜻이다.) 한당 때에도 많은 해석들이 책으로 출판되었고, 송대 학자 주희는 원형은 통순(通順)의 뜻이며 이정은 길리(吉利)의 뜻이라 하였다. 이 해석은 문자의 훈고 방면에서 볼 때 역경의 본래 뜻에 더욱 가깝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해석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모두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와 같이 주역에 대한 역사적 연구 방법을 운용하게 되면 모든 것은 오직 경전만을 좇는다는 사상의 편향성과 고대의 서로 다른 시기의 역학 사상을 현대의 사상으로 현대화하려는 잘못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학 연구가 신비주의적 분위기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게 발전해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연구 방법을 취하든 처음으로 역을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주역 경전의 문구를 읽고 그 뜻을 깨달아 주역의 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런 후에 문자의 훈고와 고증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 속에 담긴 의리를 탐구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 원리를 운용해야 실제 문제를 관찰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역을 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학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는 일이다. 이것이 역학 공부의 기본인데, 결코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실증 없이 임의대로 상상하여 역의 이치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