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강 역경에 대하여
1. 역경의 내용과 성격
역경은 중국 고대의 가장 중요한 전적 가운데 하나로 약 2천 년에 달하는 경학 시대 동안 여러 경서 가운데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해 왔다. 또한 지식인들도 역경의 가치를 인식하고 중요시하였으며, 한 대부터 역경을 주석하고 연구한 저작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중국 고대 문화 발전의 중요한 한 영역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역사상 중대한 영향을 미친 역경은 어떠한 책일까?
역경은 원래 주역이라 불렸으며, <<좌전(左傳)>>이나 <<주례(周禮)>>에서도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후대 사람들은 주역을 말할 때 역전도 이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원래는 다른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하나의 책을 경이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나타낸 것은 대략 전국시대부터이고, 역경이라는 이름은 후대 사람들이 주역을 경전으로 받들면서 나온 이름이다. 따라서 주역이 본래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선조들은 어떤 이유에서 주역이라는 두 글자로 책의 이름을 삼았으며, 또한 주역이라는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먼저 易 자를 살펴보면, 고대에서의 易이란 글자는 점서에 대한 통칭이었으며, 때로는 점치는 일을 책임지는 사람을 칭하는 글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례>>의 기록에 따르면 태복이 연산, 귀장 주역- 세 가지 복서를 관장하였다는 이야기는 앞서 강의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런데 앞의 두 종류의 역은 모두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고, 오늘날에는 단지 주역의 일부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점서를 왜 역이라고 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꼽히는 것이 “易”이라는 글자가 석척(蜥蜴)이라는 동물을 모방해 만든 상형문자라는 것이다. 고대의 문자 가운데서 “역”자를 글씨로 쓰는 사법으로 볼 때 이 설명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석척이란 동물의 이름은 몸을 색깔을 수시로 잘 바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것이 아마 점서를 ‘역’이라고 부르게 된 주요 원인인 것 같다. 또 후대 사람들은 역에 ‘삼의(三義)’ 혹은 “사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것은 역의 뜻을 해석하고 밝히는 작업에 속한다.
(역위易緯 건착도乾鑿圖 참조. 삼의는 간역, 변역, 불역, 사의는 여기다 교역(交易) 한 가지가 더 첨가되어 있다.)
‘주(周)’ 자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하여 “두루 미치어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주역>>은 우주의 모든 원리를 다 갖춘 책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대(朝代)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주’를 주대(周代)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고대 문헌의 기록이나 고대 사람들이 책의 이름을 붙일 때의 관습을 보면 후자의 견해가 훨씬 더 합당하다. 고대의 ‘주’ 자가 붙은 서적들은 모두 주대의 뜻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례(周禮)>>는 주나라 시대의 예의 제도를 설명하고 있고, <<주서(周書)>>는 주 왕조의 관방(官方) 문헌을 지칭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역>>은 주나라 때의 점치는 책인 셈이다.
한편 주역을 그 내용의 구성으로 볼 때 기타의 서적과는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반 서적은 모두 편이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역의 구성 단위는 괘로 책 전체가 64괘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전국시대부터 상, 하 두 권으로 나누어졌는데, 상편이 전 30괘이며, 하편은 나머지 34괘로 되어 있다.
(이런 편성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서괘전을 읽을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함.)
‘괘’라는 이름이 쓰이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괘를 ‘괘掛’의 뜻으로 해석하여 괘상(卦象)을 매달아서 사람들이 보기 편하게 한 것이라는 뜻으로 설명하였다.
또 청대의 장혜언(張惠言1761-1802)은 “점을 쳐서 이를 땅에 써 효를 식별하는 것을 일러 괘라 한다.”라는 학설을 제기하였다.
즉 점을 치면서 효를 얻을 때마다 이것을 땅에 써서 기억하기 편하도록 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효를 표시하여 한 괘를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괘의 한문이 두 개의 흙 토자와 한 개의 복(卜)자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괘’자의 본래 뜻에 부합하는 설명인 것 같다.
주역 64괘는 여덟 개의 기본 괘가 두 개씩 중첩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 여덟 개의 기본 괘가 8괘로 건(乾), 곤(坤), 감(坎), 간(艮), 손(巽), 태(兌), 리(離), 진(震)이다. 이것의 괘형 및 괘상은 ( )이다. <<주례>>에서는 8괘를 경괘(經卦)라 부르고, 64괘를 별괘(別卦)라 부른다. 괘상의 기본 요소는 기(-), 우(--) 양획이다. 8괘는 모두 삼획 괘로 매 괘는 모두 -과 --이 중첩되어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역을 처음 접하는 초학자들은 누구나 매 괘의 괘상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송대의 유학자 주희는 <<주역본의>> 속에 ‘팔괘취상가(八卦取象歌)’를 기재하여 초학자들이 괘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건삼연(乾三連) 곤육단(坤六斷) 진앙우(震仰盂) 간복완(艮覆碗)
리중허(離中虛) 감중만(坎中滿) 태상결(兌上缺) 손하단(巽下斷)
매 구마다의 제일 앞의 글자는 괘명이며, 뒤의 두 글자는 그 괘의 괘상에 대한 묘사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8괘는 3획 괘인데 이것이 두 개씩 중첩되어 구성된 64괘는 6획 괘가 된다. 그러므로 64괘 가운데의 매괘는 모두 상괘와 하괘로 구분되는데 상괘는 외괘 또는 회괘(悔卦)라고 하고, 하괘는 내괘, 또는 정괘(貞卦)라고 한다.
64괘 중 상하괘가 같은 괘는 모두 8개 있다. 이것은 경괘가 중첩되어 형성된 것이므로 원래 경괘의 이름 그대로 부른다. 예를 들어 건상건하 괘는 건괘라 부르고 감상감하 괘는 감괘 등이 그렇다. 나머지 56개는 상하괘가 다르기 때문에 괘명도 다르게 불린다. 예를 들어 건상곤하는 비(否)괘, 곤상건하는 태(泰)괘로 불린다.
주역의 64괘는 매 괘마다 괘상, 괘명, 괘사 및 효사의 네 가지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건괘를 살펴보자.
(괘상) 乾 元亨利貞
初九 潛龍勿用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
九四 惑躍在淵 無咎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上九 亢龍有悔
用九 見群龍無首 吉
맨 처음의 여섯 개의 -부호로 이루어진 ( )이 괘상이다. 이것은 3획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건괘가 중첩된 것이다. 괘상 가운데 6획, 즉 6효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면서 초효, 이효, 삼효, 사효, 오효, 상효로 구별한다. 괘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과 --의 두 종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대략 전국시대부터 -은 九로 --은 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모두 -으로 구성된 건괘 6효는 아래서부터 순서에 따라 초구, 구이, 구삼, 구사, 구오, 상구라고 한다.
괘상이 괘의 첫머리에 위치한 것은 각 부분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면서 괘 전체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 뒤의 문자는 괘상에 대한 설명이다. 괘상( ) 뒤에 있는 ‘건’은 이 괘의 괘명이며, ‘원형이정’은 이 괘의 괘사로 전체적으로 괘의 기본 특징을 설명한다. 괘사는 본래 단사(彖辭)라고 불렀으나 당나라 이후에 바뀌었다. 괘사 다음 부분이 효사이다. 효사마다 그 앞에 효제爻題가 있다 예를 들면 초구, 구이 등이다. 한 괘는 6효로 되어 있으므로 효사 역시 여섯 개가 있다. 효사는 한 효의 내용과 성질을 설명하는 것으로 각 효의 위치와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효사 역시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면 건괘 초구의 효사는 ‘잠룡물용’인데, 구오 효사는 ‘비룡재천 이현대인’인 것과 같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오직 건괘와 곤괘만이 전부 -과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양괘의 내용에는 용구와 용육이라는 두 개의 항이 더 있다. 그런데 용구와 용육의 뒤에 나오는 문자는 어떤 구체적인 한 효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역의 점치는 방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효사라고 할 수 없다. 건과 곤 양괘 외의 62개의 괘상은 모두 -과 --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만 위치와 수량만이 다를 뿐이다. 각 효의 호칭은 그 성질과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건과 곤의 6효의 호칭보다 복잡하다. 예를 들면 수뢰둔괘의 경우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초구, 육이, 육삼, 육사, 구오, 상육이라고 하며, 지천태의 6효는 아래서부터 초구, 구이, 구삼, 육사, 육오, 상육이라고 한다.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에 맞게 64개 조목의 괘사가 있다. 각 괘는 6효호 구성되어 있으므로 64에 6을 곱하면 모두 384개의 효가 있게 되고, 384개의 효사가 있다.
한편 주역에는 상도 있고 문자도 있어 그 내용이 특수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이 책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역은 ‘주대의 점서’였다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이미 이 책에 대한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주역은 주댕에 복리(卜吏) 또는 무인(巫人)들이 관장하였으며 , 그 기능은 길흉을 예측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좌전>>과 <<국어>>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주역과 관련된 자료들 역시 이 점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좌전>>과 <<국어>> 가운데 주역에 대해서 언급한 곳은 스물두 곳인데, 그 가운데 열여섯 곳이 인사의 길흉을 점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율 역시 춘추시대 사람들이 주로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물론 춘추시대부터 이미 주역을 철학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일어났으며, 그 이후에는 역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 사람들의 주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 뿐 주역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의리를 논하는 책 즉 천도와 인사의 교훈을 주로 설명하는 책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주역을 역사서로 여기고 있는데 이것 역시 정확한 이해가 될 수 없다. 한편 주희는 <<주자어류>>에서 “역은 본래 복서의 서적이었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주역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이 본래 점서였다는 것은 그 내용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괘상이 모두 -과 --의 두 개의 부호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해진 방법을 거쳐 괘상을 얻은 다음 이것을 바탕으로 길흉을 판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괘효사 역시 주로 길흉의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이 ‘吉’ ‘利’ ‘無咎’ ‘凶’ 등의 점사이며, 이러한 글자가 없는 경우에도 길흉의 뜻이 그 문자 속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주역의 괘효사는 모두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길흉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점서로서의 본래 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주역 속에는 수많은 생활의 지혜가 녹아있으며, 이는 당시의 생활수준을 보여 준다. 이러한 특징들이 바로 주역이 점점 점서의 모습에서 벗어나 철학서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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