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51 멍든 가슴 만져주시는 손 길가에 차이는 돌멩이 맞아 굳어진 응어리 동면하는 곰처럼 웅크린 고독 숨을 막는 성대의 혹 따뜻이 싸안고 찬바람 몰아 산 너머 보낸 봄비 지금 알 낳은 새처럼 가볍게 날고 싶구나 장마 *96 990710 뜬금 없이 내리는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 하늘이 산을 덮고 시야는 빗줄기에 막혀 앞뒤가 안 보이는 세상 길바닥은 물이 철철 흐르고 사람들은 종이배 탄 개미처럼 흔들린다 나비 애벌레 긴 날을 고치 속에 있다가 고운 날개 다 만들고 두꺼운 벽 헐고 나온 날 그치지 않는 비 날개 한번 펴지 못하고 추녀아래 웅크렸는데 천둥 바람 쉬지를 않고 내가 그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쫓았던 것은 여름 내 탱탱하던 거미줄 찢겨진 끝에 얻는 것은 한 조각 상한 고기임을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항해 끝에서 만난 도시는 낯설어 이 곳에서 새로 말을 배운다 한들 언제 사랑의 노래 짜맞춤이나 하겠더나 너였구나 너였구나 하다가 입을 다물고 장마 비 아래 선 장승처럼 흐르지도 못하는 장승처럼 흘러가는 물 본체도 못하는 장승처럼 나는 무심한기라 맞고도 무심한기라 홍수 *162 990811 연 열흘 쏟아 붓는 비 서울을 쓸어갈 듯 일렁인다 오물과 때로 출렁이던 세상 이제사 큰 빨래 더러운 때 씻어내고 거짓의 옷을 찢고 쓰레기를 쓸어가는구나 맑은 물 따뜻이 데워 씻어라 씻어라 할 때는 다 놓지고 우레 폭풍우 와서 산사태 풍랑 흙물로 빨래를 하는 구나 산이 찢기고 집을 쓸어가고 창자속 마음 아래까지, 도시에서 바다까지 큰 빨래터 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