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자렛인에 대한 단상

나 자 렛 인 에 대 한 단 상 최근 "92년 예수 공중 재림"을 믿고 이를 전교하는 종파가 있다고 한다. 인간의 예수 재림에 대한 한결 같은 소망 만큼 아름답고 순수한 열정은 없을 것이므로 이는 이를 비난 하려 한다 거나 이것이 틀렸다는 무슨 논거를 대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들의 믿음대로 92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분의 신국이 이땅에 건설되고 그의 영원한 평화의 세상이 온다 면야 그들은 물론이고 온 인류에게 그야말로 얼마나 큰 복음 이겠는가! 그러나 그 "때"와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말씀 들을 한번 되 살펴 보면서 오늘 정말 덧없이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한번 조명해 보고져 한다. 전도서의 3장을 읽어 보면 이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있 다. 날때와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3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 할 때가 있고 춤 출 때가 있으며(4절)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6절) 찢을 때와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와 말 할 때가 있으며(7절) 사랑할 때와 미워힐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가 있다(8절)고 하였다. 그러면 에수님 께서 오실"때"는 언제인가. 지금인가. 내년인가. 아니면 1900년 전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오는 때와 그 징조에 대하여 여러 기록을 남기셨다. 그중에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인상적 이었던 말씀은 "여기섰는 사람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하신 마태복음 16장 28절의 말씀과 감람산 위에서 각가지 시대의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다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24장 34절의 말씀 이다. 나는 이러한 말씀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고 그리하여 그 사도들의 시대부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 왔을 것임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이러한 말씀들을 초기 경건했던 우리 선조 믿음자들이 그대로 믿고 기다렸음은 쉽게 상상하고 남음이 있다. 이것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말씀들이 이미 이루어져 1900년 전에 이미 오셨거나 말씀이 이루어 지지 않았거나 해야 옳을 일이다. 그 일은 접어두고 잠시 다음 구절을 읽어 보자.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다 모른다"(36절) 이 아무도 모르는 "때"를 우리 인간은 알아 보려고 2000년 전 그 이래 끊임 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그중에 일부는 이 재림의 시기 문제로 종파에서 분리해 나가거나 새로운 종파를 이루었음도 잘 아는 사실이다. 어째서 예수님께서 "아무도 모르고 그 자신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때"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나서는 것일까. 그들은 어찌보면 예수님 보다 자신을 더 내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재림의 방법도 너무도 걱정 스럽다. 이미 2000년 전에도 유대 땅 모든이들이 메시아의 강림을 애타게 기도하고 있 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그들을 압제하는 로마로 부터 그들을 해방시키 고 그야말로 그들의 대적을 무찔러 유대의 영광을 드높일 다윗왕과 같은 그런 메시아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유대인들의 바람일 뿐인 것인 지 아니면 하 나님의 뜻이었는 지 누가 판별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들은 그들 앞에 나 타난 조그만 마을 나자렛의 목수로 이땅의 삶을 시작하신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았다.(오늘 까지도) 지금도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그 예 수님은 하늘 영광을 한몸에 안고 만만 천사를 거느리고 하늘 위에서 모든이들 이 바라보는 대 낮에 오실까. 마치 2000년전에 유대인들의 바람처럼. 혹시 나자렛의 목수처럼 오시거나, 아니면 어두운 밤에 아무도 모르게 지하철을 타 시고 오시는 것이나 아닐까. 그 많은 성경 구절 중에 유독 인자가 구름을 타 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리라는 마태복음 24장 30절의 말씀만 유독 눈여겨 보아야만 할 것인가. 성경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마 태 12:30)라고 하기도 하고 나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편(누가9:50)이라 고 하기도 한다. 안식후 첫날 예수님의 무덤에 향유를 가지고 온 여인들에게 천사는 무어라고 했던가?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으려 하느냐> (누가복음 24장5 절)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부활하신후 몇번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그들은 잘 알아 보았던가? 알아 보기도 하고 못알아 보기도 하였다. 요한복음 20장 11절 에서는 그토록 사랑하던 마리아 조차 바로 눈앞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누가복음 24장 13절에는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오래 같이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요한복음 21장 4절에는 베드로 조차도 그물을 다시 던지라는 분이 예수님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이것이 부활 후 세번째 나타나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음) 이러한 것들은 단지 성경구절의 사실의 기록에 불과 한가? 무슨 다른 상징 적 의미는 전혀 없을까? 같이 먹고 같이 지내고 같이 산 동시대의 그분들 조차 잘 알아 보지 못한 그 분의 모습을 오늘날 정말 이 타락한 세대의 인간들이 어떻게 이 서울 거리에 오신 예수님을 금방 알아 보겠다는 것인지. 좀 가슴을 여미고 경건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 이다. 예수님 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 했다" (마태복음 24장 34절) 고 분개 하셨었다.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 이다" (마태복음 25장40절) 우리가 오늘 할 일은 그 "때"의 비밀을 알아내어 천국의 백성이 되려는 야망 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따라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때 임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 께서는 "하나님의 나 라는 볼수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 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있느니라" (누가복음 17장 20-21절)고 말씀하셨다. 거듭 다짐 하거니와 이런 말씀의 주석과 유추 해석을 하자는 것이아니다. 우 리는 경건하게 요한의 말씀을 다시 새겨 볼 일이다. 그 당시엔 예수님의 재 림의 날을 정말 삶의 일부로 기다리던 때 이었음을 상기하자. "어느때나 하 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 하시고"(요한1서 4장 12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요한1서 4장 8절, 16 절 반복) "보는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없느니라" (요한1서 4장 20절) 우리가 하나님께서 92년에 오실 것을 바라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 었을 원하시는 지를 기도 해 볼 일이다. 우리는 이미 오신 그분을 수없이 내 쫒고 채찍 질 하고 십자가에 목매단 것은 아닐까. 아니 우리의 이웃에 사는 가난하고 병들고 의지할 곳없는 이웃과 핍박받고 버림받은 사람들 속에 예수 님의 그림자가 계신것은 아닐까. 그분은 사랑의 모습으로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것은 아닐까. 최후의 날에 그분의 구원을 받아 하늘 나라의 백성이 되실 분들은 누구일 까. 그분은 이렇게 말 했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마태 복음 12장 48-5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