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류의 지고한 스승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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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바올로 예찬 머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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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으며 내가 선택한 세레명은 이것 저것 검토할 필요도 

     없이 바울로였다. 바울로는 내가 가톨릭에 들어오기 훨씬전 아니 기독교에 심취하고 나서

     부터, 아니 그 전 성경을 알고부터 가장 존경하게 된 분이다. 그분을 생각하면 정말 경탄

     과 존경의 념을 감 출 수 없다. 그의 정열, 그의 다정함, 그의 지고한 사랑-그의 예수님

     에 대한 지고한 사랑과 그가 보여 준 신자들에 대한 지고한 사랑-그의 말솜씨, 그의 글솜

     씨, 그 모두가 오늘날 우리가 믿고있는 기독교의 모든 기준을 그분게서 세운 것같은 감정

     을 누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활동 기간중 베드로를 제자의 앞자리에 세우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까지 바울로를 택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바

     울로는 어느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사도가 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
 
     으며 신약을 이루는 27권의 성경중 14권을 그 자신이 직접 썼거나 썼을 것으로 간주 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순교하는 날까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로마인으로서의 시민권, 그리고 

     태생으로서의 유대인인 점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증거자가 되었다. 그가 전도한 

     예수님은 예수님과 몇년을 같이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전달받았고 예수님의 기적

     을 직접 목격하였고 또 그들 스스로도 이적을 행한 다른 열한 사도들의 그것에 비추어 아무

     런 손색이 없었을 뿐아니라 오히려 훨씬 우수하고 호소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성당에

     서 바치고 있는 미사에서 사용되는 많은 언어들이 바울로에게서 부터 다듬어진 것이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는 

     평화의 인사말은 로마서 1:7에 바울로께서 기록하신 바로 그 구절이다. 이세상에 있는 모든 

     인사말중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인사말이 어디 있으랴. 온 세상에 퍼져있는 인사말 중에 이

     보다 더 경건하게 우리의 미사를 거룩하게 하여 주는 인사 말이 또 있으랴. 나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바울로의 천재와 그의 위대함에 감사를 보낸다. 바울로가 예수님을 안 것이 그

     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듯이 나로선 바울로를 안 것이야 말로 그기에 못지 않다 

     할 것이다. 이런 위대한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내 이름위에 부친 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송구

     스러워 나는 바울로라는 이름 을 그대로 쓰지 못하고 주교이셨던 바울리노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내게 있어 바울리노는 바울로를 추앙하고 상기하고자하는 외에 다른 아무런 

     의미도 없다. 바울로- 내 일생을 예찬하여도 부족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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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  우리에게 평화를 가르친 바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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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의 5월은 다른 오월과는 획기적으로 다르게 보인다. 한동안 목소리가 굵었던 분들이 

     어디론가 숨고  한동안 몸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분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 그런 오월이 었

     다. 그 중에서도 5.18광주에 대한 것을 빼 놓을 수 없다. 1980년 잔인한 오월의 한주일 동안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 지옥의 한 주일동안에 그기에 있었던 모든 분

     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평화"바로 그 한마디 였을 것이다. 1950년 6월부터는 그러한 고통이

     이 나라 온 민족에게 근 2년 이상이나 계속 되었다. 몇사람이 단위를 이루는 하나의 가정에

     서 조차 간단한 불화가 일어나도 "평화"의 소중함은 이루 다 표현 할 수 없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같은 것으로는 조금도 대체 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평화"라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숭고한 말은 없다. 유대나 아라비아의 인사말은 "샬롬"이다. 이는  "평화"라는 말

     이다 그런 인사를 받은 사람은 "샬롬 마리꿈"한다. 

     "그대에게도 평화를" 이란 말이다. 아마 예수님도 이말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부활하신 후 제
 
     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바로 이 "평화"라는 말 이

     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울로는 이 "평화"라는 말을 가장 아름답게 쓰신 분이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

     께" 하신 말씀이 바울로의 말씀 이었음은 앞장에서 이미 인용한 바이고 "평화의 하느님"이란 

     말도 바울로께서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 한 말씀이다. 1984년 한국기독교200년 대회의 주제

     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었다. 이 말은 바울로께서 에베소서2:14에서 하신 말씀이다. 하

     느님과 그리스도를 곧 평화로 본 것이며 평화의 축복을 기독교인의 은사로 본 것이다. 예수님

     께서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간다".<요한 14:27>고 말씀하신일도 있다. 그러나 요한복

     음이 바울로의 상기 기록보다 먼저 쓰여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바울로의 기록이 먼저

     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바울로가 아니고서는 "평화"라는 말을 그토록 아름답게, 그토록 숭고

     하게, 그토록 거룩하게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로는 "평화"를 기대하였고 그리하여 우리

     에게 평화를 주고 갔으며 온세상 교회에서 날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하신분이다. 

     그분 자신이 평화의 사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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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   삶의 고달픔을 따뜻이 위로하는 바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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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어느 특정한 해가 더 힘들고 어렵고 더 고달프고 고통이 더 심했다는 등의 말

     을 해서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악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

     인지 알 수 없다. 나 자신은 유전자에 이미 기록된 운명이나 태어나기 전에 기록된 생명책의 

     예정된 코스를 인간이 산다고 믿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질병을 설명 할 수 있으나 사고나 전쟁

     같은 것을 설명 할 수 없다. 생각하면 어느 한 해건 그냥 모든 일이 순탄하게만 넘어가는 그런

     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1993년은 정말 힘들고 고난스런 한해였다. 년초

     부터 죄없이(내 주장이지만) 행정관서와 송사가 있어 자신을 변호 하는 데 숱한 시간과 온갖 

     정력과 많은 돈을 소비 해야 했다. 이에 따르는 다른 회생도 많아서 자연히 본업이 타격을 입

     게 되고 급기야는 몇명 안되는 종업원들의 급료마저도 마련하는 데 많은 애로를 격어야 했다. 

     개인 적으로는 년초부터 6개월간 장기 치료를 받는 질병에 시달려야 했고 5월과 8월에도  다른

     병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인생의 무상함과 생의 고달픔을 한 몸으로 격어야 한 한해였다. 지금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지금을 지혜롭게 잘 지내면 나머지 나의 생애를 평화와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잘 못되면 여태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탑틀이 하루 아침에 손상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때의 나의 바울로, 우리의 바울로가 있어 얼마나 그 위로가 되는가. 인간은 누구

     나 선한 노력에 대한 응답을 기대한다. 아니 우리가 모두 열심히 살고 땀흘려 일하는 모든 것

     이 결국 어떤 노력의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이루어 지는 것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

     이다. 매일 아침엔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한해는 한해의 계획을 세우며 또한 일생을 통하여도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다. 간혹은 이러한 목표가 사실과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러한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때 인간이 느끼는 실망이란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가져오고 회복하기 힘

     든 병에 빠뜨리기도 한다. 특히 그 목표가 단순한 물질적인 것일 경우에는 다시 계획을 세우고

     또다시 힘을 내어 추진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적인 희망과 기대 그리고 선한 희생

     과 이웃에 대한 염려, 자기의 봉사로 인한 것이 었을 때의 인간의 실망이란 삶 자체의 덧없음

     을 한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의 응답을 받는 기도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바울로가 얼마나 정열적인 분이셨는가는 우리는 수이 그의 기록을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는 스스로 이방인 전도를 책임 맡은 사도로 자처 하였으며 소아시아와 그리스의 모든 도시를 

     돌며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신자를 조직하였으며 수많은 박해를 받고 쫒기는 생활을 하였으나

     그가 만든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염려 속에 많은 편지를 남기고 있다. 그가 이미 떠난 그의 조직

     속에서는 자연히 그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 났을 것이며 당시에는 그분 말고도 여러 전도자가 

     같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그분과 조금 다른 면을 가르쳤을 수도 있었다. 더

     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자꾸만 지연 된다는 점이 또한 가장 큰 문제 였을 

     것이다. 당시엔 모든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내 놓고 오직 기도와 신심으로 그리스도의 재림만

     을 기다리는 많은 신도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아마 바울로는 심각한 고뇌에 숱하게 빠져

     야 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응답을 기다리는 신도들 어떤 면에서는 착한 신도들을 어떻게 위

     로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는 어떻게 정리를 해 주어야 할 것인가.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시오". < 갈라디아서 6:9> 가만히 이 구절을 음미해 보면 정말 바울로

     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음 을 느끼게 한다. 갈라디아는 비교적 바울이 초기에 세운 

     교회였을 것이고 이 기록은 아마도 모든 신약의 다른 성경이나 복음서들이 만들어 지기 훨씬 이

     전에 씌여 졌을 것이다. 바울로는 이 갈라디아서에서 그가 만든 교회의 신자들에게 나의 자녀들

     ---, 어머니 같이,--- 아버지 같이---, 하는 말로 그가 얼마나 그의 공동체와 몸과 마음을 같이 

     하고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다.


     선을 행하다가 성과가 좀 늦거나 성과가 없는 것같이 보인다고 하여 실망하여서는 안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13 약간의역>

     그의 이러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없었다면 어떻게 초대 교회의 그 신앙이 오늘날 우리

     에게 까지 굳건히 전달 될 수 있었겠는가. 바울로를 생각하면 그의 따뜻하고 거룩한 마음씨에 

     절로 찬탄의 念을 금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고 부유하여진 오늘 날에도 실망은 신앙

     심을 해치는 가장 큰 적이다. 바울로는 실망하는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다독거려 주어야 하는 

     지 가장 잘 아신 분이었다.


       그는 오늘도 삶에 지치고 피곤해 하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무 개념하지 말고 항상 힘쓰시오 그것이

      인간적인 일입니다".
                                                                      < 바울로-디모데후서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