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지혜는 하나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 중용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중요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덕이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 사물의 본질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데 지혜가 있나니 로고스가 아니라 내 말에 귀를 귀울여 만물이 하나임을 시인하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하나다. 만물을 조종하는 지성 만물을 통하여 그 지성을 아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유일무이하다. 이 지혜는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 동시에 또 그렇게 불리기를 바란다.
...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본래는 그렇게 어려워서는 안된다.이것이 가장 쉬운 것이어야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너무나 복잡한 일이 되었다. 인간은 자기자신의 무지에 너무나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과 마주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회와 국가 종교에 의해 인정받는 인간의 삶 전체가 자신에 대한 무지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위험한 인물로 분류된다.
... 자신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위대한 혁명이다. 자신과 마주쳤을 때 저절로 생겨나는 지식,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사회의 눈이 아니라 신의 눈을 통해서 본 자신, 문명화 되고 쇠네되고 교육받은 모습이 아니라 야생화같은 자연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보았을 때의 지식말이다.
... 사회는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려고 한다. 로봇은 조종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사람을 조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수, 붓다. 헤라클레이토스같은 이들을 조종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존재를 통해 움직인다. 바람과 같고 구름과 같다. 강물처럼 움직인다.아름답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위험한 존재다. 그들은 비 사회적인 인물로 분류되고 십자가에 달린다.
... 사회는 지배를 원한다. 특권층은 그대를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한다. 그들은 그대가 무지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첫번째 난관이다. 인간은 사회에 태어날 수밖에 없다. 부모, 선생, 성직자 모두 사회의 일부이다. 사회가 사방에서 인간을 에워싼다. 어떻게 탈출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 두번째 난관은 그대 자신에게서 온다. 그대 또한 타인을 억압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인간은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는 억압당하지도 않고 타인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그 차원에서 지배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진다.그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남의 자유도 돕는다. 그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이 두번째 난관은 더 어렵다. 그대는 사회를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에고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소유, 지배, 권력에 대한 욕구가 없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는 자유로운 삶을 원하며 다른 사람 또한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 이 두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대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배와 착취 소유에 대한 욕구를 버려라. 그러면 사회의 올가미를 순식간에 벗어날 수 있다. 에고가 문제다. 이것이 자신을 알지 못하는 이유다. 에고는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준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오래 갖고 있으면 그것이 훼손되고 무너질 것이란 공포심이 생긴다. 자기 자신을 알고자하면 이 거짓된 이미지를 버려야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한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그대가 만든 거짓 이미지는 존경받는데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의 적나라한 모습은 분노, 질투, 증오심 등 온갖 부정적인 것으로 감겨있다. 조금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추악한 것 투성이다. 그래서 그대는 즉시 등을 돌리고 도망쳐 나온다.
... 수천년 동안 붓다들이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쳐왓다. 그러나 누가 이를 귀담아 들었는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추함과 마주쳐야하는 일이다. 그 추함을 통과해야한다. 그 다음엔 그대 내부에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 그러나 그 아름 다운 존재는 외곽에 있지 않다.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도달하려면 당연히 외곽을 통과해야한다. 그대의 추한 모습에서 도망치지 말라.
... 중심에 도달하면 그대는 신이다. 표피층에서 그대는 세속적이었다. 세속은 추하다. 그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는 추하다. 침략과 폭력, 억압 노예화의 모든 역사가 그대 표피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마음은 그대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사회의 산물이다. 마음속에는 과거의 온갖 세균과 질병, 과거의 모든 추악함이 다 들어있다. 마음은 집단적인 것이다. 이 인간의 역사 전체를 관통해 들어가야 한다.
... 그런데 그대는 회피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실상과 반대되는 고상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보려한다. 온갖 이상과 유토피아 - 표피층에 장식될 장막을 친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너 자신을 알아라고 말한다. 이것이 단 하나의 지혜다.
... 사람들이 너는 신이다. 혹은 너의 여혼은 영원하다 할 때 그대는 우쭐하고 솔깃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다만 그대를 색칠할 뿐이다. 모든 인도인이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도인의 삶이 아름다운가? 당치도 않다.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진리를 왜곡한다.
... 자신을 알려고 하면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자신에 대한 앎을 진정제의 개념으로 착각하지 말라.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화를 약속하는 사람이 잇다면 속임수다.그러나 인간은 쉽게 덫에 걸린다. 그대는 불길을 통과해야한다. 깨달은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속임수는 도움이 안된다. 속임수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몇분동안 주문을 왼다고 며칠동안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오늘 이곳에 도착했다. 그러니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명상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명상은 시작의 지점까지 돌아가야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 인간은 주문을 외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주문을 외서 근원에 도달할 수 없다. 방황하고 놓지고 죄를 짓고 살인을 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수만년을 살아왔다. 전쟁, 착취, 억압, 지배가 판을 쳐 수만년이다. 그대 자신이 이 기나긴 역사의 한 일익을 담당하여 온 장본인이다. 이 모든 책임이 그대에게 있다. 이 담장ㅇ르 훌쩍 뛰어 넘을 수 있겠느가?
... 초월은 가능하다. 그러나 손쉬운 속임수로는 안된다. 초월은 수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 한순간에 과거의 모든 고통을 겪을 준비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끔찍한 악몽이다. 이것은 위험지대로 가는 여행이다. 자신에 대한 앎은 가장 위대하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노자 예수,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여기에 따른다. 행복해 지려면 욕망만으론 안된다. 행복해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진정제와 마취제를 찾는다. 그는 푹 자기를 원한다.이 순간에 실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 그는 개인적인 꿈의 세계를 원한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간다해도 변하지 않는다. 수행, 기도 신을 통해서 행복, 기쁨, 만족을 추구한다. 그들은 결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
...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유형이다. 행복은 단지 하나의 조화다. 진리와 하나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행복이다. 진리를 추구해야한다. 진리를 발견하면 행복은 저절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