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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부 만물은 변한다.
<원문>
우리는 같은 강물 속에 발을 담그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아무것도 머물지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차가움은 따스함이되고 따스함은 차가움이 된다.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게 된다. 병이 있기에 건강이 유쾌하고
살아 있음과 죽음, 깨어 있음과 잠, 젊음과 늙음 이것은 하나이며 똑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전자가 후자가 되고, 후자가 다시 전자가 된다. 뜻밖의 돌연한 반전에 의해서.
그것은 해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모든 것은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강물속에 발을 담그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며 흐른다. 이것이 일반적인 종교와 진정한 종교간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힌두교에서는 변화하는 것은 외형, 즉 마야(maya)일 뿐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브라흐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정반대로 말한다. 붓다의 이해도 이와 같다. 붓다에 의하면, 변화만이 영원하다. 변화가 단 하나의 영원한 현상이다. 오직 변화라는 현상만이 변하지 않는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변화한다. 나의 이해 또한 이와 같다.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그대 자신의 에고를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원한 신을 추구할 때 그대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대는 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대는 영원히 존재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이 세상이 바뀌어도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신의 왕국을 찾아라. 거기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 너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힌두교, 유태교, 기독교 등의 일반 종교는 기본적으로 에고의 여행이다. 그대는 왜 변화가 외형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는가? 그대는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죽음처럼 보인다. 그대는 무엇인가 영구적인 것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그대는 영원한 안식처를 원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런 안식처를 찾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관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대는 신과의 관계에 이런 생각을 투영한다. 신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으면 그대 또한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추구, 영원히 머물고 싶어하는 이 욕망이 문제다. 왜 그대는 존재하기를 원하는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그대는 비존재를 두려워하는가? 비존재, 무, 공, 죽음,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한 진리를 아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릴 준비가 되어야만 진리를 알 수 있다.
... 그대는 어떻게든지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 무아에 대한 이해, 변함없는 흐름에 대한 이해, 고정된 실체는 없고 흐름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때 그대는 투명한 거울이 된다. 이때에는 동요할 자도 없고 해석할 자도 없다. 왜곡할 자가 없다. 그대 안에서 존재계가 있는 그대로 반영된다. 이렇게 존재계가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 이것이 진리다.
... 영원히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대가 주어진 순간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산 사람, 삶을 맘껏 줄긴 사람은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주어진 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은 두려워한다.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많은데 떠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이 다가오는데 그대는 삶을 통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다. 성숙하지도 못했으며, 꽃처럼 피어나지도 못했다. 그대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이것이 두려움의 정체다.
... 삶을 완전히 산 사람은 항상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준비된 자세는 강요된 것이 아니다. 그의 준비성은 꽃에 비유될 수 있다. 꽃이 피어나 사방에 향기를 날린다. 매순간을 즐기며 산들바람에 춤춘다. 바람을 견디고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일출을 감상한다. 저녁때가 되면 완전한 만족이 오고, 꽃은 대지로 돌아가 휴식할 준비를 한다. 삶을 완전히 누리고 난 다음의 휴식은 아름답다. 이것이 자연의 이법이다. 꽃은 대지로 돌아가 잠을 잔다. 긴장도 없고 번뇌도 없다. 울면서 매달릴 일도 없다.
... 그대가 삶에 매달리는 것은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강한 바람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지 못했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대는 아직 아침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직 젊음도 누리지 못했는데 늙음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직 사랑도 해 보지 못했는데 죽음이 오고 있다. 이렇게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이 올 때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대는 낮을 즐겼다. 이제는 한밤의 휴식을 즐길 때가 되었다.이겨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영원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대가 아직 충족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영원한 자아를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집착이다. 그대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몸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는 것을 안다. 이제 그대는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자아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소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영혼을 믿는다. 삶을 충분히 누린 사람, 삶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직 이런 경우에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강이라는 상징을 좋아하지만 붓다는 불꽃을 상징으로 선호한다. 이 불꽃이라는 상징은 더 미묘하다. 불꽃은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치 않다. 뿔꽃은 매 순간 사라지고 있다. 낡은 불곷이 가고 새로운 불꽃이 나타난다. 저녁에 춧불을 켜 놓고 다음날 아침 끈다고 할 때 이 촛불은 똑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붓다는 말한다. 똑 같을 수가 없다. 불꽃은 밤새도록 타오르고 있었다. 밤새도록 불꽃이 사라지고 사라졌으며 새로운 불꽃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라지는 불꽃과 태어나는 불꽃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그대는 차이점을 알지 못한다.
... 변화가 만물의 본질이다. 영원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안목은 힌두교의 시각보다 더 심오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얻은 가장 심오한 통찰이다. 영원은 허구다. 이것을 이해하면 에고가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 조성된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할 때, 왜 집착하겠는가? 아무리 집착해도 변화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 강물의 흐름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
... 강물도 똑같지 않을 것이며, 그대도 똑같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순간이 새롭고 독특하다.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 순간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현상이다. 이 순간은 과거의 반복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새롭다. 그러나 집착과 소유욕을 갖고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면 그대는 이 새로움을 놓칠 것이다. 생각해 보라.
... 사랑을 할 때에는 그 사랑이 존재하는 동안 즐겨라. 그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말라. 그렇게 애쓰는 동안 그대는 사랑의 순가을 놓쳐버린다. 그대가 노력해서 준비를 마칠 때쯤이면 사랑의 꽃은 이미 시들어 버린다. 즐길 준비가 되었을 때 사랑의 순간은 이미 지나갔다. 아무도 그 순간을 돌이킬 수 없다. 그럴 발법이 없다. 강물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대는 매순간 새로운 기슭으로 밀려간다.
... 계절의 변화는 아름답다. 이 변화를 통해 그대는 매순간 새로워진다. 순간마다 새로운 기분, 새로운 존재의 뉘앙스가 았다. 순간마다 새로운 눈과 새로운 얼굴이 있다. ... 전체적으로 산 사람은 늙어서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한다. 이런 사람은 추하다. 이미 젊은 시절이 지나갔는데도 그는 젊음을 과시하려고 한다.
... 연인과 같이 있는 동안에 그를 사랑하라. 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이별의 시간이 올지 모른다. 진실로 그를 사랑했다면 이별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삶을 사랑했다면 삶과의 이별 또한 아름다을 것이다. 그대는 삶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다른 쪽 기슭으로 떠나면서 그대는 감사의 말을 남길 것이다. 삶이 준 수많은 경험, 그대는 그 선물에 감사할 것이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건 삶이 지금의 그대를 만들었다. 고통이 없으며 기쁨이 존재할 수 없다.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삶을 통해 성장한 사람, 삶의 고통과 기쁨을 아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이해한다.
...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나를 성자로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내가 성자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더 나은 세계에서 성자는 동시에 죄인이 될 것이다. 물론, 그는 성자다운 방식으로 죄를 지을 것이다. 이것은 옳다. 하지만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농부처럼 되어라. 만일 그대가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 이해의 씨앗, 명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 농부처럼 되어라. 공업 기술자처럼 되지말라. 서두르지 말라.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할 일을 다한 다음에는 그저 기다려라.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라. 지나친 것은 안하는 것과 같다. 그대의 노력 자체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이다. 성급하게 결과를 말라지 말라. 때가 되면 저절로 오기 마련이다. 오늘 그 일이 일어난다면 좋다. 그러나 오늘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삶을 이해하는 사람, 투명한 지성을 가진 사람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때가 무르익으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그는 기다린다. 그는 유치하게 서둘르지 않는다.
... 자연은 그대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따른다. 이것이 "모든 것은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다. 기다려라.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기다려라. 지금 당장 결과를 바라지 말라. 그런 바람 자체가 결과를 더 늦춘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라. 농부처럼 수동적을 관찰하면서 깨어 있는 의식으로 기다려라. 그러면 원하는 바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면 놓칠 것이다. 시간을 너무 의식하면 명상으로 돌어갈 수 없다. 명상은 시간이 없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항상 이것을 명심하라. 그대만 준비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
... 계절과 보조를 맞추어라. 이것을 명심하라. 긴장할 사간에는 긴장하라!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긴장을 모른다면 어떻게 쉬겠는가? 화를 낼 줄 모른다면 어떻게 자비를 알겠는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통해 성장하겠는가? 모든 것은 알맞은 때가 있는 법이다. 때가 되면 저절로 온다. 지금까지 항상 그런 식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드넓은 존재계에 그대의 길을 강요하지 말라. 존재계가 어디로 가는지 잘 관찰하고 거기에 순응하라. 이것이 무지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잉이다. 무지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대로 강물을 떠밀려고 하낟.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이 없다. 그는 자연이 어디로 가는지 관찰하고 거기에 따른다. 그에게는 자연을 떠미는 에고가 없다. 그는 자연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지 안흔ㄴ다. 그는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자연은 정복되지 않는다. 어떻게 부분이 전체를 정복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에 복종한다. 그는 자연이 어디로 가든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그는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과 같다. 구름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바람 가는 곳이 그의 목적지다. 목적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을 맡기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그곳에 지복이 있다. 모든 곳이 목적지다. 그대가 할 일을 자연에 자신을 맡기는 것뿐이다. 매순간이 삶의 최절정이다. 그것을 허용하라. 모든 것을 내맡기고 순응하라. 그러면 안심하고 휴식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제철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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