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라즈니시4-18

서양의 붓다 18

 

헤라크레이토스

그대의 개인적 운명은 없다.


제8부 
사물의 도리를 아는가? 2

... 로고스는 만물에 공통된다. 로고스는 만물의 공통된 기반이다.
존재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가 존재할 뿐이다. 그대는 허구적 실체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들 모두가 귀의를 강조한다. 존재계와 싸우지 말라. 그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존재계와 싸울 수 있겠는가? 이것은 파도가 바다와 싸우고 나뭇잎이 나무와 싸우는 격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지 말라. 그대만 지친다.

... 그대의 개인적 운명은 없다. 그대가 전체가 되면 전체의 운명이 곧 그대의 운명이다. 전체의 목적지가 곧 그대의 목적지다. 전체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지복으로 충만하다. 오직 그대만이 걱정하고 그대만이 불안해 하고 있다. 존재계의 강물과 함께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강의 일부를 잘라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대가 누구이길래?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인간은 항상 실패한다.

 


<원문>


만물에 공통되는것
우리는 그것에 의해 인도되어야한다.

... 지옥은 비범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그들이 정치가든 예술가든, 문학가든, 그들이 어디에 있든 간에 지옥은 비범한 사람들, 에고이스트들을 위한 곳이다. 에고가 지옥이다. 에고가 고통을 준다. 그대는 불필요하게 모든 것과 싸운다. 그대는 결코 편안하지 못하다. 불편함이 그대 삶의 방식이 된다. 에고가 있을 때 그대는 항상 불편할 것이다. 에고는 불편하다. 그것은 구두 속에 삐죽 솟아난온 못과 같다. 끊임없이 그대를 찌르고 있다. 이것은 그대가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무엇을 찾던 그대는 발견할 것이다. 만일 잘못된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에고는 항상 잘못된 것을 찾는다. 에고는 끊임없이 불편함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불편을 통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아무 문제도 없을 때 에고는 사라진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발이 발에 맞으면 발을 잊는다. 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잊혀질 때 어떻게 에고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에고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발이 끊임없이 발을 괴롭혀야한다.  그래야 그대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잇다. 에고이스트는 사랑할 수 없다. 그는 명상할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다. 진정으로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온전하다. 이때 에고가 사라진다. 에고는 자의식을 뜻한다. 자의식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어야만 잘못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옳을 때 자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통된 것을 찾아라. 공통된 것에 주목하라. 특별해지려고 하지 말라. 

... 우리는 특별한 것을 바란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저 가만이 조용히 앉아 있어라고 한다. 기도와 명상 따위엔 신경 쓰지 말라.그러면 자연히 기도와 명상이 일어난다. 

... 삶은 그자체로 위대하다. 개선할 필요가 없다. 만일 자연이 그대가 물구나누 자세로 서는 것을 원했다면 자연은 그대를 그런 식으로 창조했을 것이다. 자연에 귀를 기울여라. 자연을 따라가라. 자연과 싸우지 말라. 그저 따라가라. 그러면 깊은 침묵에 도달할 것이다. 이 침묵은 평법해졌을 때 오는 것이다.

위대해 지려는 욕망은 질병이다.

...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예수를 보라. 그는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있는 붓다보다 더 평범해 보인다. 편범한 존재로써 예수가 보여주는 행동은 아름답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 예수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보리수 밑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그의 아름다음을 능가할 수는 없다. 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써의 특성을 갖고 있다.

만일 길에서 예수를 만나면 그대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예수가 로고스에 더 가깝다.
예수가 더 인간적이다. 그의 인간미는 신성하다.

... 만일 존재계가 소수의 사람들(천국)만 위한다면 왜 그대를 창조했겠는가? 존재계는 아무도 편애하지 않는다. 존재계는 거기에 참여할 준비가 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는 가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태어난다. 어떤이는 목수의 아들이고 어떤이는 어부의 아들이다. 이것이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 평범하게 살라. 보편적인 것을 찾아라.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말라. 특별해 지려는 노력 자체가 그대의 뿌리와 로고스를 갈라 놓는다. 로고스는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자신만의 독자적인 지성을 갖고 잇는 것으로 착각한다. 특별한 개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개체성과 비범함을 잃는다. 반면, 평범한 사람,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며 개인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은 이 존재계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개체성을 얻는다. 평범한 사람이 가장 비범해 진다. 이 비범함은 선물로 오는 것이다. 그대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문>


인간의 본성은 진정한 이해가 없다.
신의 본성만이 그런 이해를 갖고 잇다.

... 우리는 전체에서 왔다가 전체로 돌아간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왔다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 과정 전체가 신비에 싸여있다. 그러니 어떻게 그대만의 개인적인 지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 이 존재계에 일어나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지금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바로 이 순간에 존재계 전체가 한데로 모이기 때문이다.과거, 현재, 미래가 이 순간에 집결되어 있다.
개인적인 지성은 불가능하다. 재능이 탁월한 사람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느낀다. 아인쉬타인이나 큐리부인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그것을 안다. 아인쉬타인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순간에 발견이 이루어졌다. 그 순간에 전체적인 의식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시인들에게 물어보라. 영감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의식이 그들을 사로잡고 그들은 단순히 매개체가 된다.

... 보편적인 의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대는 이것을 그대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 의식은 결코 그대의 것이 될 수 없다. 이 의식은 항상 우주의 공간을 떠다닌다. 그대 주변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더 열려 있어라. 모든 것을 내맡기고 수용하라. 전체가 되어야만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원문>


인간은 사물의 도리를 알 지 못한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만이 지성적이다.

... 그대는 지성적이지 않다. 그대를 에워싼 바다,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그대의 내면에도 잇고 밖에도 있는 그것이 지성적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니다. 그대는 하나의 오류에 불과하다.

 


<원문>


인간은 신성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 그대는 의심한다.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성한 것이 그대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대의 이심 때문에. 단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의심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문이 있다면 그것은 신뢰이다. 자연을 믿을 때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자연을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된다.

... 자연과 싸우지 말라. 자연을 관조하면서 그대로 허용하라. 자연이 그대를 어디로 인도해도 좋다. 마음이 만들어 낸 목표는 모두 허구다. 그런 목적을 갖고 있는 한 그대는 무엇을 하건 성공할 수 없다. 결국은 자연이 이긴다. 오직 전체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부질없는 싸움을 벌이지 말라.

... 자연을 허용하면 궁극의 목적지에 이른다. 인위적으로 해야할 일은 없다. 자연은 이미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다. 그대는 한 알의 씨앗이다. 그대 안에 설계도가 전부 들어 있다. 우리는 땅에 씨앗을 뿌린다. 씨앗은 나무에 대한 모든 청사진을 갖고 잇다. 나무의 골격, 앞으로 피어날 꽃과 이피리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씨앗은 나무가 될 조감도를 갖고 있다. 허용되기만 하면 된다.

... 인간은 신이 될 청사진을 갖고 잇다. 인간은 신의 씨앗이다. 인간의 의식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 의식이 성장하고 성장하여 우주가 되는 지점까지 도달해야한다. 그대 쪽에서 해야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수련도 필요없고 교리나 강령도 필요 없고 종교도 필요없다. 자연으로 충분하다. 이 자연을 허용하기만하면 된다. 자연을 신뢰하고 받아들여야한다. 이 신뢰를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

... 씨앗은 자연을 신뢰한다. 그는 땅속에서 썩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그는 이 존재계를 즐기며 희열을 느낀다.

... 새가 알 밖으로 나온다. 이미 알려진 세계를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날개를 펴고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픙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목적지도 없고 계획도 없다.새는 그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날면서 희열을 느낀다. 까마득한 하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런 일이 그대에게도 일어나야 한다. 그대는 하나의 씨앗이며 알이다. 그대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점을 지적하고 잇다. 그대가 놓친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원문>


인간은 신성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 의심하기 때문에 핵심을 놓친다. 신뢰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신뢰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신뢰하라. 그러면 스스로 알아서 한다.

 


<원문>


어 느누가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 존재계는 항상 존재한다. 존재계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존재계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존재계는 영우너하다. 어떻게 존재계와 대항해 싸울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습고 터무니 없는 짓이다.
지혜는 모든 것을 내맡기고 복종하는데에 있다. 이것이 유일한 지혜다. 이때 아름다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대의 행위에 의해 생기는 일이 아니다.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대는 진리로 가는 길에 장애물을 만들 수는 있지만 진리를 불러들일 수는 없다. 눈을 감고 진리에서 도망갈 수는 있지만 진리를 창조할 수는 없다. 진리는 이미 존재한다. 진리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대가 계속 진리를 놓치는 것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이 그대의 눈을 멀게하고 의심이 그대의 가슴을 닫아버린다. 그대는 의심이라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가 커질수록 더 풍요로운 삶이 그대 앞에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