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라즈니시4-17

서양의 붓다 17

 

헤라크레이토스

사물의 도리를 아는가?


제8부 
사물의 도리를 아는가?

 


<원문>


이 로고스가 영원히 옳다 하여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듣기 전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듣고 난 후에도 이해하지 못한다.

만물에 공통 되는 것 우리는 그것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

로고스는 만물에 공통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지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인간의 본성은 진정한 이해가 없다.
신의 본성만이 그런 이해를 갖고 있다.

인간은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한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만이 지성적이다.

인간은 신성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로고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 로고스에 대항한다.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어느 누가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 로고스는 우주 전체, 이 존재계 자체의 논리다.
로고스는 궁극적인 법칙이다. 이것을 노자는 도라했고 우파니샤드와 베다에는 리트(rit)라불렀다. 이 우주적 조화 안에서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이 만나 하나가 된다. 양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역설과 모순이 용해되어 사라진다. 상카라는 이것을 브라흐만이라 불렀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라 불렀다.

... 인간의 마음은 논리적이다. 논리는 양극에 기초한다. 이것은 강의 한쪽에서 건너편 강뚝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강은 양쪽 뚝 사이를 흐른다. 한쪽 뚝만 있는 강은 없다. 그런데 그대는 이쪽 뚝에서 저쪽 뚝을 보지 못한다. 한쪽 뚝만 믿는다. 강이란 대립되는 양쪽 뚝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이 대립은 적대관계가 아니라 깊은 우정이며 사랑의 결집이다.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정상과 걸짜기는 하나다.

... 골짜기를 언급하지 않고 정상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를 이해하는 것은 쉽다. 그는 일관적이다. 또한 정상을 언급하지 않고 골짜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모든 철학자는 합리적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쉽다. 약간의 학식과 지적 훈련만 받으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하면 할수록 더 미궁에 빠진다. 그들은 정상과 골짜기를 함께 말하기 때문이다. 

... 철학의 접근 방식은 논리적이다. 이 논리를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말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라말한다.

... 인간의 논리는 신이 남성이라고 말한다. 모든 신을 여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로고스는 양자를 포괄한다. 신은 그 더하기 그녀다.
그대도 그인 동시에 그녀다. 그러므로 그대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대 자신의 전체성을 이해할 때, 이 우주를 그대의 전체성을 통해서 조망할 때 비로소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비적인 비전이다. 이것이 로고스다.

... 천국과 지옥은 하나의 사다리에 속해 잇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같다고 말한다. 사다리 전체를 보는 것이 로고스다. 신과 악마는 둘이 아니다. 구분은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구분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대는 양쪽 모두인데 그대를 남성에 고정하면 그대안의 여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 여성이 울고 눈물흘린다. 

... 내부에서 전체가 된 남자는 더 이상 외부의 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붓다와 마하비라처럼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 온다. 

... 삶 전체가 변증법적이다. 로고스는 변증법적이다. 그러나 이성은 직선적인 과정이다. 
이 세상과 신 사이의 화음을 듣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한 산야신-구도자이다. 세상을 버린 사람은 다른 극단으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변증법적이지 않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우둔하다. 이 세상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무엇인가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음악이 없다. 반대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기도와 명상이 없다. 침묵이 없다. 시장에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카오스상태다.
그 다음에 희말라야나 수도원에 가보라.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역시 삶이 없다. 생명력에서 벗어나 잇다. 먼지가 잔뜩 쌓여있다. 시장에 죽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수도원에도 죽은 사람들 뿐이다. 시장과 수도원에는 조화가 없다.

... 조화로운 사람은 복잡하다. 그는 단순하지만 이 단순성은 아주 복잡하다. 그의 단순함 안에는 대립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깊은 자비심을 갖고 있는 동시에 불화처럼 화를 낼 수 있다. 그는 절대적으로 초연한 동시에 극진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는 사랑하면서도 초연하다. 그의 내부에는 골짜기와 봉우리가 만난다.  소리와 침묵이 만난다. 그대에게는 음악적인 귀와 가슴이 있다면 이 사람 안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드물다. 그 자신이 로고스가 된 사람이다. ㅋ리슈나, 노자, 붓다, 헤라클레이토스, 예수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로고스 안에 산다. 그들은 로고스의 축소판이다. 그들의 존재는 존재계 자체와 같다. 그들 안에서 존재계 전체가 변형된다. 그들은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십자가. 죽음. 이 세상 모두를 받아 들인다. 무엇인가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