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여기에도 신은 있다.
몇 명의 방문객이 뜻하지 않게 헤라클레이토스를 찾아 갔을 때 그는 불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여기에도 신은 있다.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시간은 장기를 두는 아이와 같으니 완권이 그의 것이다.
광신은 신격화된 질병이다.
... 진리를 구하는데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지식을 빌려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대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물론 빌려오는 것은 쉽다. 그러나 빌려 온 것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진리는 그대의 것이어야한다.
... 내가 진리를 안다해도 그것을 그대에게 전해 줄 수는 없다. 전해 주는 가운데 그것은 거짓이 된다. 이것이 진리의 본성이다. 아무도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진리는 빌려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훔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그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대 스스로 알지 못하는 한 지식은 앎이 아니다.
... 진리는 살아 있는 현상이다. 누가 그대를 대신해 살아 주겠는가? 그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아무도 그대를 대신해 살아 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그대를 대신해 사랑할 수 있겠는가?
... 진리는 그대 스스로 살면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진리는 밖에 있지 않다. 진리는 그대의 내면에서 성장한다. 진리는 물건이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그대의 주체성(subiectivity)이다. 그러니 어떻게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 올 수 있겠는가? 그대가 직접 진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설령 베다 코란 성경이 진리라 해도 그것을 일고 왼다고 그대가 진리는 될 수 없다.
... 구도자는 신뢰한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기다린다. 그는 꾸준히 탐구한다. 그러나 걸음마다 목적지로 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그대를 데리고 간다. 실수도 배움의 일부다. 실수를 두려워 하면 배울 수 없다. 길이 무서우면 여행을 못한다. 남에게서 얻어 온 것은 중고품이다. 진리에 관한 한 중고품은 없다. 그것은 거짓이다. 중고 진리는 없다. 진리가 진리이기 위해서는 항상 신제품이고 정품이어야 한다.
<원문>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 이것은 남에게서 배워 얻은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가꾼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성장이며 주체성이다. 이것은 나자신의 경험이다. 그대 스스로가 경험했을 때 그것은 그대를 변형시킨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는 많은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유롭지 못하다.
<원문> 광신은 신격화된 질병이다.
...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결코 광신자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진리가 다차원적인 얼굴을 갖고 있으며, 그 얼굴을 바라보는 방식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안다.
...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진리로 가는 길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는 진리의 얼굴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어떻게 편협한 광신도가 되겠는가? 그는 "나의 진리만이 진짜다. 나의 신만이 진짜 신이다. 당신의 신은 가짜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은 진리를 빌려 온 사람들의 말이다.
... 질병은 나쁘다. 그러나 신격화된 질병은 더 나쁘다. 그대는 신격화된 질병을 보고 최상의 건강으로 생각한다. 이때 추악함이 생겨난다. 이 미친 사람들은 신에게도 허튼 소리를 하라고 강요한다.
... 세상에 하나만 유일한 책이고 다른 것은 쓰레기라면 우파니샤드는 어떻게 되는가? 붓다의 말은 어떻게 되는가? 노자의 도덕경은 어떻게 되는가? 왜 바이블이 유일한 책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바이블은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책이라고 주장하면 추해진다. 이것이 신성화된 질병이다. 나의 진리가 전부라고 주장할때 에고가 들어온다. 진리는 아무런 주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리는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저 존재할 뿐이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 드러날 뿐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진리는 어느 누구도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진리는 그대에게 도움을 준다. 진리는 그대를 사랑한다. 진리는 그대가 변형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대를 개종시키려는 노력은 없다. 그런데 힌두교인들은...
... 길은 무한하다. 목적지가 무한한데 길이 어떻게 협소할 수 있겠는가?
... 왜 단순하게 존재하지 못하는가? 예수를 사랑하고 좋게 느끼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붓다를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이다. 그대의 사랑은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길을 간다. 그들이 제 갈 길로 가도록 놔두어라.
... 이해의 인간은 항상 망설인다.
... 내면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망설일 여유가 없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확실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신은 여름이며 겨울이다. 신은 낮은 동시에 밤이다. 그는 풍요인 동시에 배고픔이며, 휴식은 동시에 긴장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원문> 여기에도 신은 있다.
... 그는 사원에 가지 않았다. 보는 눈을 갖고 있다면 듣고 느낄 수 있다면굳이 사원에 갈 필요가 있는가? 이 자리에도 신은 있다. 신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존재계 자체가 신이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여기에도 신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느낄 수 있다면 매순간이 신성하고, 모든 것이 성스럽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교회에 가고 절에 가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그대이지 상황이 아니다. 상황은 똑같다. 절밖에도 절 안에도 신은 있다. 신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그대는 신을 보지 못하고 장소를 바꾼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상징이다. 불은 아름다운 상징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이 근본 원소를 '프라나(prana)'로 부른다. 깊은 곳에서 보면 이 존재계 전체가 불이다. 그리고 불은 생명이다. 짜라투스트는 옳다. 그는 불을 최고의 신으로 선포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만물의 근본이라고 말함으로써 무엇인가 암시하려고 한다. 살아 잇는 것은 따스하다. 뜨거운 환영, 뜨거운 사랑이다. 차가움은 죽음을 상징하고, 따뜻함은 삶을 상징한다. 태양에너지는 불이다. 관찰해 보라. 저녁때가 되면 만물이 슬퍼진다. 나무와 새들도 완벽하게 침묵을 지킨다. 모든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꽃잎이 닫힌다. 지구 전체가 아침을 기다린다.
... 불은 항상 위로 향한다. 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불은 위로 흐른다.
... 불꽃은 찰나지간, 몇 분의 1초 동안만 눈에 보이다가 사라져 버린다. 그대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수록 사라져 가고, 낮은 차원으로 내려갈수록 더 견고해진다. 물은 낮은 온도로 내려가면 차가워지고 얼음이 된다. 돌처럼 굳어져 움직임이 멈춘다. 불은 얼음을 녹인다. 그러면 다시 움직일 것이다. 백도까지 올라가면 물은 증발하여 사라진다. 인간의 90%는 깨어나지 못한 얼음상태다. 9%만이 녹아 흐른다.
... 성 안에서, 분노와 증오 안에서 그대는 아래로 움직인다. 성은 그대를 녹일 수 있다. 그러나 날아오르지는 못한다. 그래도 얼어있는 상태보다 낫다. ... 얼어붙은 상태를 보여주는 완벽한 표본을 원한다면 수도원에 가보라. 그들은 무조건 부정한다. 성을 부정하고 음식을 반대한다. 이렇게 부정하면 차가워 진자. 불을 잊어버린다. 얼어붙는다. 이것은 성취가 아니라 추락이다. ... 얼어붙어 잇으면 그대는 아무하고도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얼어붙은 상태에서 그대는 밀폐된다. 가대는 감옥을 만든다. 이렇게 갇힌 상태에서는 신으로 가는 길이 있을 수 없다.
... 그대안에 더 많은 불이 창조되어야한다. 그대는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라. 몸이 가능한 한 많이 움직이도록 허용하라. 에너지를 불러일으켜라. 에너지가 고등치게 하라. 에너지는 이미 존재한다. 그대가 할 일은 그 에너지를 고동치게 하는 것뿐이다. 양쪽에서 타오르는 횃불처럼 살아라. 그대는 타오르는 불꽃이 된다. 돌연 그대는 우주속으로 사라진다. 신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불이 상징하는 의미다. 붓다는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다.
<원문> 시간은 장기를 두는 아이와 같으니 왕권이 그의 것이니라
... 왕권은 아이의 것이며, 시간은 장기를 두는 어린아이와 같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릴라(leela)' 즉 유희라는 개념을 압축시켜 놓고 있다. 삶은 게임과 같다. 삶을 비지니스로 만들지 말라. 그렇치 않으면 삶을 놓칠 것이다. 삶은 놀이다. 놀이를 즐겨라. 무엇인가 달성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어린아이처럼 되어라. 그는 놀이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 어떤 목적을 추구하면 삶 전체를 잃을 것이다. 삶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 삶은 목적 없는 놀이다. 삶은 아무데로도 가지 않는다. 그저 삶 자체를 즐길 뿐이다. 이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은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 삶에 시가 존재하는 것은 이 삶에 아무 목적도 없기 때문이다. 장미꽃은 왜 피어나는가? 장미 꽃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모른다." 새들에게 왜 노래하는지 물어보라. 새들은 이렇게 터무니 없는 질문을 하는 그대를 보고 어리둥절 해 할 것이다. 노래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마음은 목적을 추구한다. 항상 마음은 무엇을 성취하려 한다. 마음은 단순하게 즐기지 못한다. 장래에 성취해야 할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도달할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성취할 것이 없을 때 마음은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 ...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도달할 목적지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계 전체가 즐거움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대를 제외한 우주 만물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왜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가? 왜 목적없이 피어나는 꽃이 되지 않는가?
... 모든 아이는 왕이다. 벌거벗은 아이도 황제보다 낫다. 아이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아이는 예외 없이 아름답다. 아이는 목적과 의미를 추구하는 마음에 물들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놀이를 즐길 뿐이다. 내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 어른은 이유와 동기의 세계에 산다. 아이와 어른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오직 진정한 성자만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성자는 다시 태어난 어린 아이다. 두번째 탄생이 진정한 탄생이다. 두번째로 태어나는 사람은 스스로를 탄생시킨다. 이것이 변형이다.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 아이들에게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신은 여름이며 겨울이다. 신은 평화이며 전쟁이다. 신은 악이며 선이다."라고 말한다. 성자에게는 모든 도덕률이 사라진다. 모든 구별이 사라진다. 만물이 성스럽고 모든 장소가 신성하다.
... 기쁨에 넘치는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는 매순간을 기쁨으로 산다. 그는 해야 할 일을 다했다. 정원에 땅을 파는 일도 기도가 될 수 있다.
... 왕권은 순진무구함을 의미한다. 순진무구할 때 신이 그대를 찾아온다. 어린 아이의 가슴은 신의 왕국이다. 순진 무구할 때 신의 왕국이 그대를 찾아온다.
... 시간이 장기를 두는 아이와 같다고 말한다. 낮과 밤이 움직인다. 시간은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수레바퀴와 같다.
... 시간은 게임이다. 아무 데로도 가지 않고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게임이다. 삶은 즐거운 축제다.
<원문> 광신은 신격화된 질병이다.
... 내 말을 이론으로 만들지 말고 그대 안의 변형으로 삼아라. 내 말을 통해 삶을 만들어라. 그것을 살아라! 그렇게 사는 순간 그대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지구 전체를 그대의 교회로 삼아라. 이 존재계 전체를 그대의 사원으로 삼아라.
... 그들을 강제로 천국으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라. 그런 폭력 때문에 인류의 과거가 그토록 불행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