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그 의미는 너무나 깊어라 2
<원문> 많은 학식도 이해를 가르쳐 주지 못하네
...(167p) 많은 것을 아는 사람도 어리석게 행동한다. 많은 것을 알고도 각성이 줄어든다. 그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 행동한다. 이 시대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많은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신과 멀어졌다. 지식이 산처럼 쌓이고 도서관은 날로 커져간다. 사람들은 수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지식을 강요한다.그들이 앎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그들의 경이감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그들이 더욱더 신비감에 휩싸이는 것을 방해한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들은 신비감을 더 많이 느껴야 한다. 꽃과 나비와 바위를 보고 감동할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지식으로 가득채워 놓는다.
<원문> 금을 찾는 사람들은 깊이 땅을 파헤치지만 얻는 것은 거의 없으리라.
... 학식으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금이란 인간이 부여한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금에 감동하는 새나 토끼나 말을 보았는가? 금의 가치는 사회적인 투영일 뿐이다. 이론과 지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모두 죽은 유물이다.
<원문> 모든 길을 여행해 보아도 여혼의 한계를 발견할 수 없으리니 그 의미는 너무나 깊고 깊어라.
... 기지-이미 알려진 것., 미지-아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알려지는 것, 불가지- 불가지의 차원은 항상 알려지지않고 남는다. 이 차원은 광대하고 무한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전체다. 어떤 식으로든 부분이 전체를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온 곳을 우리가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파도와 같다. 파도가 바다 전체를 담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바다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웃을 뿐이다.
... 종교는 너 자신을 알아라한다. 그러나 진정 그대가 그대 자신을 알 수 있겠는가? 누가 아는 자이고 누가 알려진 자가 될 것인가? 지식은 구분에 의존한다. 그대는 나를 알 수 잇다. 내가 대상이고 그대는 아는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를 알 수 없다. 그대는 그대 몸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대의 몸이 그대는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현자들이 모두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일까? 그대 자신을 알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불가지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안 사람은 없다. 진정한 앎에 도달한 사람들은 광대하고 궁극적인 것은 영우너히 불가지의 차원에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 불가지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도약이다. 그대는 바다 안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그대가 바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바다가 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는 뭔가 결함이 있고 미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의 본질이다. 이것이 자연의 깊이이며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의미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심연으로 들어가는 것, 너무나 무한하기 때문에 그대는 사라진다.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가 소유된다.
... 신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대를 소유하도록 허용하는 수밖에 없다.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이것이 "귀의"이다.
... 모든 길을 다 여행해도 그대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길이 하나로 합쳐지지만 결코 목적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왜 그런가? 삶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은 축제다. 아무 목적도 없다. 삶은 특정한 목적지로 가지 않는다. 단지 가는 것을 즐길 뿐, 특정한 목적지가 없다. 삶은 놀이이며 게임이다. 삶을 심각하게 대하지 말라. 심각하면 삶을 놓진다. 진지하되 심각하지 말라. 심각함과 진지함은 다르다. 심각할 때 그대는 목적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수단과 목적이 구분되고 방법과 성과가 구별된다. 그대는 야망으로 가득찬다. 심각함은 야망이다. 그것은 질병이다. 그대는 이 세상에 관한 관심을 철회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야망에 찬 마음은 이제 다른 세상을 생각하고 있다. 심각함은 종교적이지 않다. 심각한 사람은 자연히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생각에 골몰한다. 심각함은 머리에 속한다. 그러므로 심각한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웃지 못한다. 그는 놀이를 즐기지 못한다. 그는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 진지한 사람은 전혀 다르다. 진지함은 가슴에 속한다. 그는 진실하지만 심각하지 않다. 그는 추구하지만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의 추구는 어린아이의 놀이와 같다. 발견해도 그만, 발견하지 못해도 그만이다. 어린아이를 보라. 그는 강아지를 쫓아 달리다가 중간에 나비를 발견한다. 그러면 즉시 방향을 바꾸어 나비를 쫓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 옆에 있는 꽃을 발견한다. 이제 그는 나비를 잊고 꽃에 전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매우 진지하다. 그는 강아지와나비를 잊었다. 이제는 꽃이 전부다. 어떤 것에 전적인 관심을 쏟을 때, 그것이 진지함이다. 어떤 것을 수단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일 때 그대는 교활하다. 그대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대는 착취한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길을 이용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는 길이 곧 목적지다. 종교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디에 있건 그곳이 목적지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이 사람이 목적이다.
...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삶 전체가 내게 집중되어 잇다. 달리 갈 곳이 없다.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기고 누려야 한다. 이런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는 어디로 갈 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침 산책을 즐길 뿐이다.
... 세속적인 사람은 목적을 지향한다. 비 세속적인 사람은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산다. 모든 것이 이 순가에 집중된다. 이때 지금 이 순간은 무한이 된다. 아무리 많은 길을 걸어도 무한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남는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다. 삶은 영우너히 이어지는 과정이다. 삶은 무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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