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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시의 마조 7
근원으로 돌아가라.
약산유엄은 율장학파에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경전 연구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에 입문하기 전가지 고행 수도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법의 형식화를 넘어 진정한 자유와 순수성을 염원했다. 그래서 스승을 구하던 중, 석두를 만나게 되었다. 약산유엄은 처음으로 석두를 친견하고 나서 물었다. "삼승십이분교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 남방에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아무쪼록 자비를 베푸셔서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석두가 말했다. "긍정해도 소용없고 부정해도 소용없다. 또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해도 소용없다. 자네라면 어찌 하겠는가?" 약산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자 석두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자네는 나와 인연이 없는 듯하니 마조 스님께 가 보게." 약산은 석두의 말에 따라 마조를 찾아갔다. 그는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는 석두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마조가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그의 눈썹을 치켜 올려 눈을 깜박거리게 만든다. 또 어떤 때는 그가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을 깜박거리도록 가만 놔 두지 않는다.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는 자가 그이다. 그대는 이것을 이해하겠는가?" 이때 약산과 마조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약산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마조에게 큰절을 올렸다. "무엇을 알았길래 절을 하는가?" 약산이 말했다. "제가 석두 스님께 있을 때에는 마치 쇠소에 매달린 모기 같았습니다." "이제 그와 같이 깨달았으니 잘 지켜 보전하라." 약산이 마조의 곁에서 시봉하기 삼 년, 어느 날 마조가 물었다. "요즘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약산이 대답했다. "피부가 모두 벗겨져 나가고 오직 진실만이 남았습니다." 마조가 말했다. "이제 자네가 얻은 것은 마음의 근본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손끝에서 발끝까지 그것이 닿지 않는 것이 없구나. 이제 자네는 대나무 밧줄 세 가닥을 허리에 동여매고 아무 산이나 들어가 있게." 약산이 물었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산에 들어가라 하십니까?" "그렇지 않다! 머물지 않고 계속 여행할 수도 없는 일이며, 여행하지 않고 계속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젠 더 이상 나아갈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 위의 배처럼 이곳 저곳 떠다니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이곳은 자네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다.
라즈니시 강의
** 진정한 스승은 추종자를 모으는데 관심이 없다. 그는 추종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스승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의 잠재성에 관심이 있다. 만일 자신이 제자가 꽃피기 알맞는 풍토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스승은 주저없이 제자를 다른 스승에게 보낸다. 그러나 사이비 스승은 다르다. 사이비 스승은 제자에게 복종을 강요한다이 경우는 스승을 떠나는 제자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사이비 스승은 자신의 에고를 만족시키려 한다. 제자의 행복과 성장은 뒷전이다.(139p)
** 마조와 석두는 당시 선의 양대 거목이었다. 그들의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라이발 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인간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문제는 자신의 삶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정 반대이다. 힌두교인드은 세상ㅇ르 매우 아름다운 방식으로 구분한다.
1. 첫번째 시대는 진리의 시대이다. 진리가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다.
2. 두번째 시대는 삼각의시대이다. 첫번째 시대에는 네개의 다리가 잇었다. 그 시대는 온전한 책상에 비유된다. 이번에는 세개의 다리로 서 잇다. 아직도 진리에 대한 탐구는 잇다. 그러나 절실함이 덜하다. 3. 세번째 시대는 이각시대. 두 다리로 서 있다. 이제 균형을 잡을 수 없다. 4. 마지막 시대는 이 시대-어둠의 시대, 진리 탐구가 사라진 시대다. 사람들은 오직 세속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결국 헛되이 사라질 것들을 얻기 위하여 평생을 바친다.
이런시의 비유적인 시대구분은 좀 우습지만 진실된 면도 있다. 현대에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미지의 세게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잇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다.
붓다는 42년동안 가르침을 폈다. 당연히 제자들에 의해 엄청난 분량의 경전이 집결되었다. 이를 집결한 제자들은 절대적인 겸손과 무아 아무 긴장도 없이 우주와 더불어 휴식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율장의 모든 경전은 그대를 침묵과 평화 자비로 인도한다.
--약산 유엄은 율장학파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
선에 입문했을 때 그는 지금까지 공부해온 모든 것이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일종의 프로그래밍이었다. 이것은 하지마라 이것은 하라..특정한 무엇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종교는 프로그래밍에 의존한다.
** 선을 알게 되었을 때 약산은 즉각 차이점을 알았다. 그는 율장을 공부하는 동안 그것을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배워 온 모든 것이 비본질적인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프로그램이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자비심을 가져라. 인간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라" 선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약산은 지금까지 공부해 온 거시 순전히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 긍정해도 소용없고 부정해도 소용없다..... 약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우리는 부정이거나 긍정 둘 중의 하나에 매달려 왔다. 붓다의 논리는 다르다. 첫번째 대답은 긍정이고ㅓ 두번째 대답은 부정이다. 그리고 세번째 대답은 긍정과 부정 둘 다이다. 이것이 삼중논리다. 붓다는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중도에 머물러라. 실체는 중도에 있다. 하지만 중도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석도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해도 소용없다... 이 세가지 범주에서는 진리가 없다. 진리는 이 세가지 범주를 초월하며 논리를 통해 설명되지 않는다. 약산은 궁지에 몰렸다. ..자네는 마조에게 가보게.. 이것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황금시대의 아름다움이다. 그들은 호적수였다. 이것은 석도의 관심이 오직 제자의 성장에 잇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조.. 나는 어떤 때는....
약산은 더욱 어리뚱절하다. 순간 마조의 눈과 마주칠 때... 그 순간 그는 깨닫는다. 아무 긴장도 없이 휴식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진리는 언어로 설명될 수 없다(159p)
** 이제 자네는 대나무 밧줄 세 가닥을 허리에 동여매고 아무 산에나 드어가 있게..... 마조는 약산이 진정으로 깨달았다고 확신한다. 이젠 그대가 붓다다. 저쪽 기슭에 닿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실어나르는 배가 되라. 그대는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불길을 퍼뜨려야한다. 한 명의 붓다가 다른 사람이 또한 붓다가 되었음을 알았을 때 취해야할 행동을 보여준다. 큰 나무 밑에 자라는 식물은 어느시기엔 다른 곳으로 옮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 객관적인 세게에서는 나누어 주는 만큼 잃는다. 하지만 내면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그대는 나누어 줄수록 더 많이 갖게된다. 더 맑은 물을 퍼낼수록 더 신선한 물이 솟는다. 더 많이 나누어 줄수록 그대는 더 많이 갖게된다.
** 깨달은 후에는 그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존재ㅔ가 연주하는 피리가 된다.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타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에게는 존재계 전체가 깨들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제 스스로 일어난다. 나무어 줌은 스스로 ㅣ어난다. 비는 스스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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