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니시의 마조 3

매실이 다 익었구나.



어느 날 마조가 강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승이 계신 곳을 들렀다. 마조가 향을 사르고 엎드려 절하자, 회양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나는 그대가 집에 가지 않기를 충고한다.
 그대가 간다 해도 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옆집에 사는 늙은 여인은 그대의 어린 시절 이름을 부르리라."
마조는 스승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집에는 가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후 오직 강서에만 머물렀는데, 사방에서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 날 대매라는 승려가 처음으로 마조를 친견하고 나서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현재의 이 마음이 곧 부처다."
이 말을 듣고 대매는 문득 깨달았다. 이후 그는 대매산으로 돌아가 몇 년이 지나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날 마조는 한 승려를 보내 그를 시험해 보도록 했다.
승려가 대매에게 물었다.
"도대체 마조 스님께 무슨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대매가 말했다.
"현재의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들었지."
"그런데 요즘 들어 마조 스님의 말씀이 좀 달라지셨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단 말인가?"
"이제 마조 스님은 이 마음 자체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매가 말했다.
"그 늙은이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짓을 언제나 그만둘까? 그가 아무리 '비심비불'을 말한다해도 나는 오로지 '즉심즉불'일 뿐이다.!"
승려가 돌아와 마조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자 마조가 말했다.
"매실이 다 익었구나!"


라즈니시 강의

** 선사는 철학자가 아님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선사는 합리적이지 않다. 선사는 근본적으로 매우 비 논리적이고 불합리하다.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내일은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똑 같은 것을 말화는데도 그는 여러가지 방식을 취한다. 이것이 선이다. 작은 풀 포기하나와 하늘의 거대한 별이 전하는 멧세지는 같다. 존재계는 그 아무것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진리는 근본적으로 표현 불가능하다. 마음은 이것을 이해하기 힘든다. 마음을 옆으로 밀어놓고 휴식하는 순간 존재계는 그대에게 문을 연다.(59p)

** 마조는 육조혜능과 기본 입장이 흠사했다. 특히 마음 밖에는 부처가 없다는 혜능의 가르침을 마조는 그대로 따랐다.
이 마음이라는 단어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상적인 마음 즉 생각과 감정 감상 집착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똑 같은 마음이 비어있음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대는 마음의 모든 생각과 감정ㅇ르 비워낼 수 있다. 이 마음이 비는 순간 마음과 무심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 그러니 마음이라는 말 때문에 혼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어떤 선사는 즉심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들은 현재의마음(卽心)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붓다도 그 안에 들어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조건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조건이다. 그때는 마음 그 자체가 붓다이다.

** 붓다는 말한다. 이 몸이 곧 붓다이며 이 마음이 곧 극락이다. 그러나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그대는 몸이 아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순된 말을 통해 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그대가 몸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붓다이듯이 이 몸 자체가 곧 붓다이다"
생각이 개입하지 않으면 이 마음 자체는 하늘만큼 드넓다. 고담 붓다는 모순되지 않다 다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모순된 방법을 사용한다. 
혜능은 남악회양에게 마조를 소개한다. 혜능은 늙었고 마조는 젊다. 혜능은 마조를 자신을 계승할 회양에게 맡긴것이다. 혜능은 마음밖에는 부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혜능의 마음이란 빈 마음 곧 무심이다.

** 마조는 스승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태어난다해도 집에는 가지 않기로 맹세했다.
매우 이상하지만 의미 심장한 충고이다. 
회양은 마조에게 집에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이제 마조에게는 이미 집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 그대에게는 이미 집이 없다. 육체조차 그대의 집이 될 수 없다. 온 우주가 그대의 집이다. 그러니 어디로 가서 그대의 집을 찾을 것인가. 마조는 이제 갈 집이 없다. 그는 이미 부처가 된 것이다. 그는 구름이 되었다. 
그대가 간다해도 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의 존재는 결코 아무데로도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지금 여기에 있다.

** 대매가 묻는다. 부처런 무엇입니까. 마조는 말한다. 현재의 이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 
이것이 바로 혜능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가르침이다. 그런데 마음은 결코 현재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음은 항상 과거나 미래에 존재한다. 
 현재는 빈 마음이 있을 뿐이다. 만일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마음 곧 즉심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싶으면 무심이라는 말을 쓰도 무방하다.  즉심은 무심이다. 현재를 이해한 사람에게근 모든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은 미래나 과거에 존재하므로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은 마음의 사슬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68p)

** 마조는 대매가 깨달았음을 알았다.
다꾸앙의 시
달은 어디로도 그림자를 던질 생각이 없고
연못은 달을 묵게할 의도가 없네
히로사와의 물은 얼마나 청명한가.

생각이 없는것, 의도가 없는 것. 그것이 진리의 상황이다. 달은 그저 아름답고 호수도 그대로 아름답다. 그들에게 아름다울 의도 따위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호수는 달을 비출 생각마저도 없다.

** 연못과 호수 바다는 달을 묵게할 의도나 욕망이 없다. 달을 비추는데 관심이 없다. 호수는 달 그림자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의도없이 목적없이 성취하려는 욕망없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의도를 갖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