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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의 마조 1
선 빈 거울에 담긴 노래
남악회양이 마조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한눈에 마조가 법기임을 알아보았다. 회양은 좌선하고 있는 마조를 찾아가 물었다. "대덕은 무엇을 얻으려고 좌선을 하는가?" 마조가 대답했다. "불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자 회양은 부근에 있던 기왓장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마조 앞에서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에 쓰실 겁니까?" 회양이 대답했다. "거울로 쓰려고 하네." 이에 마조가 빈정거렸다. "그런다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양이 일갈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다면 좌선으로 부처가 되겠는가?" 마조가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회양이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마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양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불을 흉내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좌선을 배우고 싶은 것인가? 만일 좌불을 흉내내고 싶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양새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좌선을 배우고 싶다면, 선이란 결코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법은 영원히 계속 이어질 뿐, 결코 머무는 적이 없다. 좌불을 흉내내는 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앉음새에 집착하면 정작 깊은 이치에는 이를 수가 없다."
라즈니시 강의
** 우리는 마조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 강의의 제목은 빈거울이다. 경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조의 생애에 대하여 알아보자. 왜냐하면 마조는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무지의 구름을 걷어내고 올바로 볼 수 있는 투명한 눈을 갖는 것, 그대의 어둠을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형시키는 것은 아주 대단하고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마음은 어려운 일에만 관심이 있다.
** 선은 그대가 아주 평범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선은 특별한 존재를 원치 않는다. 이것은 마음의 욕망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음은 항상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마음은 모든 사람들이 수많은 생을 통해 쌓아올린 엄청난 욕망의 집합체이다.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은 무겁다. 마음은 과거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겸손하고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붓다를 보는 순간 마음은 즉시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한다. 그대는 텅 빈 거울이 되어야한다(16p)
** 마조는 709년 중국 당나라 때에 태어났다. 그는 육조 혜능이후 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일찌기 육조혜능은 남양회양에게 말한바 있다. "그대의 발 아래서 말 한마리가 나와 천하삶들을 발길질로 차 죽이리라" 마조는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지냈으며 아삽세 전에 출가승의 길을 걸었다. 법명은 도일이며 남악회양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고 2천여명의 제자를 기른후 788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호랑이 처럼 보고 소같이 걸었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대주, 백장, 지장, 대매, 혜장, 남전이 있고 백장 문하에서 황벽, 위산이 나왔다.
** 그대는 자신의 씨앗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승은 안다. 스승은 그대가 붓다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과거에는 스승도 붓다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붓다다. 마찬가지로 그대 또한 붓다가 될 것이다.
** 존재계는 물을 창조한 뒤 갈증을 만든다. 스승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스승은 선교사가 아니다. 회양은 이미 잘 알려진 선사였으며 마조는 일개 수행 사미승에 불과했다. 그러나 보라 스승은 글 대덕이라 부르고있다. 스승에게 있어 그대는 현재의 그대가 아니다. 스승은 이미 미래의 그대를 다 본다. 그대는 대덕이다. 붓다가 아직 깨달음에 도달하기전 한 스승을 찾아갔다. 그런데 왼 일인가 스승께서 무릎을 꿇고 붓다의 발을 만졌다. "그대는 자신의 씨앗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대는 언젠가 붓다가 될 것이다. 그대와 나 사이에는 사소한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무 차이도 없다"
** 불성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성은 이미 그대의 본성이다. 만일 그것을 얻으려고하면 놓지고 만다. 다만 그대의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 본다면 붓다가 깨달음의 광채를 뿌리며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얻는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그대는 얻을수도 있고 얻지 않을 수도 잇다. 얻음은 항상 외부의 무엇과 결부되어있다. 부, 명성, 권력 이런 것은 얻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불성은 아니다. 그것은 성취가 아니다.
** 그대 자신이 그대로 있다면 선방에 앉아 붓다처럼 가부좌를 한다고 붓다가 되겠는가? 기왔장이 거울이 되지 못하는 바와같다. 그대는 붓다와 같은 가부좌를 틀 수는 있다. 그러나 붓다를 흉내내는 것은 붓다가 되는데 아무 도움도 안된다. 마음을 가는 것 만으로는 붓다가 될 수 없다. 붓다는 거울이다. 붓다는 거저 비출 뿐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거울 처럼 비어있다. 거울안에 무어가 있다면 어떻게 사물을 비출 수 있겠는가? 거울 앞에 아무리 많은 사물이 오고가도 거울에는 아무 흔적도 없다. 이것이 도다.
붓다는 어떤 때는 서 있고 어떤 때는 걷고 어떤 때는 잠잔다.
** 붓다는 말했다. 나의 상을 만들지 말라.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 형체를 따라함으로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깨달음에는 형태가 없다. 그대는 내면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불상에서는 깨달음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니 불상을 만들어 사람들을 오도하지 말라.마음은 오도되기 쉽다.(27p) 나를 꽃으로 만들지 말라. 향기로 놔두라(28p) 불상을 숭배함으로서 붓다가 될 수는 없다. 본질적인 이치는 거울과 같다. 그것은 비추기만할 뿐 선악과 미추는 판단하지 말라(29p)
** 깨달은 자 그는 어디로도 간 적이 없다. 그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시간이 멈추고 마음이 멈추었다(32p)
빗방울이 우리의 웃음소리를 듣기 위하여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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