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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연을 다녀 온 감회는 글로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다. 남명의 사적지 20여 곳을 돌아 보면서 입이 딱 벌어지고 가슴이 울렁거려 감동의 물결이 멈추지 않던 곳이 이곳 포연이다. 소진정에서 내려다 보면 포연은 폭포가 아닌 쏘이며 지금은 유 원지 놀이터로도 이용하기도 좀 그렇고 그런 강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연대라 쓴 바위 앞에는 500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가 청청하고 그 그늘 아래 가운데 돌로 된 큰 탁자와 앉을 수 있는 5-6개의 자릿돌이 그대로 있었다. 그 옛날 스승께서 이곳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친구들과 시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을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감개가 물결쳤 다. 포연은 한국전쟁시 온 마을 하나가 희생된 거창군 신원면 인 근의 구사리에 있다. 합천에서 거창으로 가는 1026번 지방도는 대병면에 이르러 1089번 지방도가 되며 다시 신원면 양지리에서 산청에서 오는 59번지 도로와 만난다. 포연은 이 양지 삼거리에서 59본 도로 2km 정도 인근 지점에 있다. 남측 강에는 쏘가 있고 언덕 위에는 우람한 소나무와 정자 소진정 임청정 둘이 있다. 스승께서 감악산을 등반하시고 포연에 들렸던 것은 1549년 추석 후 였으며 이때 함양의 선비 임희무 박승원등이 찾아와 동행하였다. 이 포연에서 쓴 浴川이라는 시는 남명의 시를 논할 때나 그의 사상 을 논할 때 항시 따라 다니는 시로 읽는이로 하여금 처절하고 오히 려 차가운 바람을 맞는 기분을 준다. -내 오장 속에 티끌만한 더러움이라도 있다면 내 배를 갈라 이 물에 흘려 보내리라- 지금에서 보면 좀 지나치나 생각의 조금 다름이 파직과 죽음이 뒤따르던 시대에 그러한 지조를 내 보이지 않고서는 여간하여서 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