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굴산 명경대
스승께서 선친상을 당하여 삼가로 내려온 후(1526) 김해로 가기전(1530)
탈상 후에도 삼가에 머물며 학문에 정진했다.
이때 학문의 장소로 알려진 곳이 자굴산 명경대이다.
자굴산은 뇌룡정의 동쪽 7km 의령읍의 서북쪽 5km에 위치한 높이 897.1m로
정상부근에는 깍아지른 절벽이 있고 절벽위에는 평평하게 족히 수십명은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곳이 명경대로 스승은 명경대에 자주 오르고 이 바위가 보이는 절간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짐
명경대란 시도 전해진다.
남명은 28세때 부친 판교공의 상복을 벗고, 이듬해 자굴산에서 글을 읽었다.
자굴산은 의령의 진산(鎭山)으로서 해발 892미터인데 삼가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남명은 자굴산 명경대(明鏡臺)라는 곳에서 글을 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남명께서 기록한 명경대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알려지지 않다.
남명선생 편년에는
“산은 의령 땅에 있다. 이른바 명경대란 것이 있어 매우 높고 시원했기에
선생께서 항상 왕래하며 유람하였다(시 두수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명
경대에서 남긴 시 2수가 있다.
자굴산으로 들어가려면
퇴계의 처가 동네인 가례면 소재지를 지나야 한다.
명경대의 위치가 자굴산의 어디 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의령군 가례면 갑을
리 산 136번지에는 대한불교 대승종 금정사 건립 터가 있고 그 옆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명경대라고 하기도 하나 고증이 된 것은 아니다.
남명이 남김 명경대란 시다.
높다란 명경대 공중에 솟게 한 이 누구인가
하늘 받치는 기둥 부러져 이 골짜기에 박혔네.
푸른 하늘 내려오지 못하게 떠받치며
해 돋는 곳까지 시원히 통하고 있네.
속세 사람 찾아오는 것 싫어해 구름이 막아 있고,
귀신이 시기할까봐 나무들이 에워쌓네.
내가 주인 되고자 하늘에 빌고 싶지만
융숭한 하늘 은혜 세상에서 질투하면 어쩔꼬.
남명은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을 만큼 명경대를 좋아했다.
하늘 받치는 기둥이 부러져 이 골짜기에 박혔다고 남명은 표현했다.
이것이 남명이 닮고자 기상이다.
이 바위위에는 성터로 추측되는 돌무더기가 잇고
수십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위가 평평하다.
이곳 정상에서 바로 해돋는 곳을 바라볼 수 있고 해돋는 곳이 시원하게 통
하고 있다. 이곳에서 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남명이 살았던 토동이다.
남명은 명경대 아래에 있는 절간에서 공부했다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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