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황 강 정
황강정은 황강 이희안(1504-1559)의 정자이며 이희안은 남명의 친구이다. 황강(黃江)은 황둔강(黃芚江)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 강은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위천(渭川)이 되고, 갈천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황둔진(黃芚津)을 이루며 합천으로 흘러들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황강정은 황둔강 하류의 절벽 위에 자리한 것으로, 오늘날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다. 이 정자는 남명의 친구 황강 이희안이 1531년 8월, 그러니까 그의 나이 28세 되던 해 가을에 학문 을 강마(講磨)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다. 정자 앞으로는 황둔강이 유유히 흐르고, 옥두봉(玉斗峰)과 봉령(鳳嶺)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경치가 특히 빼어나다. 황강은 이 정자에 도서를 갖추어두고 엄 숙하게 거처하면서 진리탐구에 매진하였다. 황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황강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였다. 남명을 비롯하여 송계 신계성(申季誠, 1499-1562), 대곡 성운(成運, 1497-1579) 및 동주 성제원(成悌元, 1506-1559)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황강은 이들과 더불어 진리를 탐구하는 한편, 제자를 기르기도 했다. 황강은 남명 및 송계와 함께 영중삼고(嶺中三高)라 불린다. 그는 합천인으로 자는 우옹(愚翁), 이름 은 희안, 황강은 그의 호이다. 이름을 희안으로 한 것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덕행으로 가장 뛰어났던 안연(顔淵)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황강은 1504년(연산 10) 아버지 윤검(允儉)과 어머니 통천 최씨 사이에서 3남 2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 도총부총관에 추증된 분이고, 어머니는 세종조에 좌의정을 지낸 최윤덕(崔潤德)의 손자 계한(季漢)의 딸이다. 좌의정 권진(權軫)의 손자 중신(仲愼)의 딸에게 장가들어 딸을 하나 두었으며, 소실의 몸에 서 아들 팽구(彭耉)를 두었다. 권씨 부인이 죽고 이한정(李漢禎)의 딸에게 다시 장가를 들었으나 자 녀가 없었다. 황강의 이력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연보를 간단히 작성해 보자. 1504년( 1세) : 초계군(草溪郡) 초책면(初冊面) 성산리(城山里)에서 출생 1509년( 6세) : 백형 희증(希曾) 사망 1511년( 8세) : 소학을 둘째 형 희민(希閔)에게서 배움 1514년(11세) : 논어를 읽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음 1519년(16세) : 기묘사화가 일어나 아버지와 둘째형이 연루되어 체포되고 삭탈관작 됨 1520년(17세) : 아버지 별세 1521년(18세) : 중형 희민(希閔) 사망 1522년(20세) : 권씨 부인(부사 仲愼의 딸)을 맞이함 1525년(22세) : 동당시(東堂詩)에 나아가 1등을 함 1531년(28세) : 8월에 황강정이 완성됨 1538년(35세) : 전옥서(典獄署) 참봉(參奉)에 제수됨 1540년(37세) : 봉훈랑(奉訓郞)에 제수됨 1543년(40세) : 상서원(尙瑞院) 직장(直長)을 제수받고,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오름 1545년(42세) : 어머니 최씨 별세 1553년(50세) :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를 이어서 고령현감에 제수됨 1554년(51세) : 권씨 부인 사망 1555년(52세) : 이씨 부인(사인 李漢禎의 딸)을 다시 맞이함 1556년(53세) : 조지서(造紙署) 사지(司紙)에 제수되고, 군자감(軍資監) 판관(判官)에 오름 1559년(56세) : 5월 14일 세상을 떠남 남명은 이우옹모친의 묘갈을 지었고 문이우옹환향이란 시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