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청도 운문산
청도 운문사 인근에는 스승과 가까이 지내던 삼족당 김대유가 살았다.
김대유는 스승보다 열두살이나 위였으나 친분이 두터웠다.
김대유는 무오사화에서 희생된 김일손의 조카로 조광조가 주청한 현량과
를 통하여 등용되어 칠원(현재의 함안근처)현감으로도 있었다. 그러나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죽자 운문산 아래 우연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사냥을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하는 등 본 마음을 감추고 살았다.
스승께서는 이곳까지 찾아와 김대유와 교유한 것을 보면 그를 크게 평가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1552년 그가 죽자 스승은 장례에 참석하여 애도를
표하고 묘갈명을 지어주었다.
김대유는 죽음을 맞이하여 비복들에게 풍악을 울리게 하였다고 한다.
남명은 이를 "꼭 그래야 초탈이 되는가. 오히려 마음이 흔들린 것이 아닌
가"고 말씀하셨다 전한다. 생활이 풍부하여 가난한 남명을 걱정하였다하
나 남명은 굳이 그의 원조를 받지않았다고 전한다.
우연의 위치는 필자로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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