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祖修正實錄 卒記



    처사 조식이 졸하였다. 조식의 자는 건중이며 그 선대는 창녕인(昌寧人)으로 삼가현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호방하고 용감하여 자질구레한 예법에 구애받지 않아 스스로 그 재주를 과시하는가 하

   면 문장은 두드러지게 예스러움을 지향하였는데, 내심 과거급제나 공명은 손쉽게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던 가운데 일찍이 친구와 [성리대전]을 읽다가 허노재가 말한 "이윤이 뜻했던 바에 

   뜻을 두고 안연이 배웠던 바를 배운다. 세상에 나가서는 공을 세우고 집에 들어와서는 절조(節操)

   를 지킨다"는 대목에 이르러, 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하고 크게 마음을 가다듬고서

   실학에 뜻을 독실히 하였으며 아울러 과거공부를 폐기하였다.

   일찍이 서울에 갔다가 성수침을 방문했는데 그가 백악산(白岳山:서울 북악산) 밑에 집을 짓고 세

   상사와 인연을 끊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그와 벗이 되었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하지 않고 지

   리산 아래서 살았다. 취사(取捨)를 함부로 하지 않아 남을 인정해주는 일이 적었으며 항상 조용한 

   방에 단정히 앉아 칼로 턱을 고이는가 하면 허리춤에 방울을 차고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여 밤에도

   전신을 흐트러뜨린 적이 없었다. 한가로이 지낸 세월이 오래되자 사욕과 잡념이 깨끗이 씻겨 천 길

   높이 우뚝 선 기상이 있었고, 꼿꼿한 절개로 악을 미워하여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

   격하게 멀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으며 오직 학도들만이 종유하였는데 모두 심

   복하였다.

   명종조에 이항과 함께 임금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였을 때 임금이 치도(治道)를 물으니 조식은 매

   우 소략하게 대답하였는데, 물러나 이항과 술을 마시고 취하여 "너는 으뜸 가는 도적이고 나는 그

   다음 가는 도적이니, 우리들은 남의 집 담장을 뚫는 그런 도적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길로 하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청백한 이름이 더욱더 퍼져 나갔다. 금상이 조정에서 여러 번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병이 나자 주상이 의원을 보내 병을 치료하게 하였는데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세상

   을 마쳤다. 나이 일흔두살이었다. 조정 대신이 그에게 시호를 내려 그 뜻을 기리고 장려할 것을 청

   하니 주상께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윤허하지 않고, 대사헌을 증직하고 부의를 하사하여 장사지내

   게 하였다.

   조식의 학문은 마음으로 도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치용(致用)과 실천을 앞세웠다. 시비를 강론

   하거나 변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학도를 위하여 경서를 풀이해준 것은 없고, 다만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터득하게 하였다. 그 정신과 기풍이 사람을 격려하고 움직이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를 따라 배우는 자들은 공부가 열리는 일이 많았다. [참동계](參同契:후한(後漢)의 위백

   양(魏伯陽)이 [주역]의 이치를 빌려 몸 수련하는 법을 설명한 도교의 경전)를 꽤나 즐겨 보면서, 

   좋은 곳이 매우 많아 하군을 하느느 데 도움이 있다고 하였고, 또 불가(佛家)의 최고 경지는 우리 

   유가와 일반이라고도 하였다. 일찍이 '경의'라는 두 글자를 벽에 써두고 배우는 자들에게 보였는데

   임종시에 문인에게 말하기를, "이 두 글자는 행와 달처럼 버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조식의 저서

   는 없고 약간의 시문(詩文)만 세상에 나돌 뿐이데 , 학자들이 남명선생이라 불렀다.

 


    운명한 지 두 달 뒤인 음력 4월 6일에 남명을 산천재 뒷산언덕에 장사지냈다. 앞으로 덕천강이 주

   야로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고, 뒤로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겹겹이 우

   뚝우뚝 솟아 있다.

   이 산소는 남명 자신이 생전에 잡아둔 곳인데, 앞으로 급한 절벽을 이루어 우뚝 솟은 것이 그 자

   신의 기상과 흡사하였다. 이때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과 시골 각지에서 제자와 유림.조정관

   원 등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장례 절차는 남명이 생전에 제자 하응도, 손천우, 유종지에게 써준 [사상례절요]에 따라 진행되었

   다. 남명의 제자 가운데는 관계에 진출해 중앙관직을 지내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학문적으로 상당

   한 비중을 가진 이, 연령이 많거나 스승과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이도 있었으므로, 제주

   를 누가 하느냐와 장례식때 제자들이 서는 서열 문제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누가 제주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제주할 때, 동쪽 맨 첫머리에 덕계 

   오건을 시작으로 수우당 최영경, 그리고 여러 제자들이 차례로 섰음을 알 수 있다.

   남명의 제자나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어 보낸 만사(輓詞)와 제문(祭文)이 수백 편에 이

   르렀는데, 모두 그의 죽음은 나라의 쇠퇴이고 유학의 불행으로 앞으로 선비들이 누구를 의지하고 살

   아가느냐며 한 나라의 정신적인 기둥이 쓰러진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