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에는 가르침을 업으로 삼는 교사 교수 강사가 줄잡아 70여만에 이르리라고 예상된다. 아니면 오히려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 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민족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햇볕같은 가르침을 내 놓는 민 족의 스승이 계신지 그분이 누구인지 대라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군이래 이 강토 에 이토록 물자가 넘치고 먹을 것이 넘치고 마을마다 길이 열리고 고층빌딩이 늘어섰던 일은 없었다. 단 백년전만해도 이나라에는 돌같은 도로는 거의 없었다. 궁궐과 누각을 예 외로하면 민간이 사는 2층 집조차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30-40층의 아파트 에 50-60층의 건물이 도시마다 즐비하고 어지간한 시골마을은 다 포장된 도로로 연결돼 있 다. 그런데도 신문마다 방송마다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하지 태평년대란 말은 들어 볼 길이 없다. 그저 우리는 지금이 난세인가 긴가민가 나날을 보낸다. 나라를 지키는 젊은 우리의 아들 50-60만의 국군이 있는데 이들의 주적에 대하여 누구나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어떤 이가 교육개혁을 하였다고 하는데 학생도 교사도 학부형도 70%가 잘못했다고한다고 한다. 의료보험만해도 의사도 약사도 환자도 안 아픈 보험료 부담자도 다 싫다고한다고한다. 그 런데도 그런 일은 우리 모두가 의무적으로 짊어지고가야한다. 세상에 아픈 것만해도 서러운데 보험료내고 의사한테 돈내고 또 약사한테 돈내고 주사약 사다가 다시 병원가서 주사 맞고 누가 이런 일을 좋다하겠는가. 지금 이나라에 스승은 누군가? 우리는 누구에게 "말씀" 한마디를 구할 수 있는가? 16세기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문예부흥의 시기였다. 이를 보면 인류는 각기 연결된 하나 의 장 속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에도 서양의 르네상스 못지않는 인문학의 대 폭발이 있었다. 여러 스스이 나타났고 지식인들 모두가 여기에 몰려들어 집대성에 기여했다. 조광조 남명 퇴계 기대승같은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나타나 성리학을 계승 발전 시켰다. 당시 이기이원론이니 주리론이니 주기론이니하는 학문들은 지금 이 시대에 논해도 하나도 어 눌하지않다. 그분들이 인간의 본질과 삶의 원리를 생각한 깊이는 오늘날 우리가 도달한 깊 이와 별로 차이가 없을 분 아니라 오히려 더 심오한 면까지 있다. 남명은 걸출한 스승이셨다. 그는 절대 왕조와 이를 지탱하는 성리학의 시대에 살면서 이 모든 테두리를 자유롭게 넘나 들었다. 스승은 치도가 왕권이냐 신권이냐하든 시대를 뛰어넘어 그것이 생민에 있음을 가 르쳤다. 스승은 혁명에 나서지 않았으나 배는 물위에 뜨고 물은 배를 가게하지만 때론 배를 뒤업기도 한다고(민암부) 직설적으로 말했다. 관리와 아전이 백성의 피를 빠는 것은 털옷의 털을 닳게하는 정도가 아니라 털옷의 가죽을 갈아내어 통째로 털이 다 달아나 나라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왕께 직접 간했다.
스승은 사리사욕, 정권 권력, 어느 곳에서도 한점 흠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 뿐인가 당시 주지학적 학풍과 형이상학적 이론의 다툼이 편가름의 정 치논리로까지 해악을 끼치던 시기에 실천이 없는 경학은 한갖 해악을 끼칠 뿐이라고 가르치 셨다. 스승은 선비는 옳치 아니한 일은 칼처럼 잘라내야한다고 가르치시고 몸에 칼을 지니 고 다니셨다. 옳은 가르침에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곧게 지키려고 항상 방울을 차고 다니셨다고도 한다. -칼을 찬 유학자- 그것은 당시 시대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이상한 그림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악을 잘라낼 칼, 잘못 가는길을 가르쳐 줄 방울을 흔 들어 줄 스승이 참으로 대망되는 시대이다.
지식인은 거쳐 세상을 비판하고 자기 수행을 해 야한다고 은둔한 유학자라는 이상한 남명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승이 언제 언둔 했다는 말 인가. 그분은 제자들에게 병법을 가르치시고 외적이 침입할 때 나라를 지키는 계책을 물으셨 다. 스승께서 돌아가신 후 20여년 왜군이 이 강토를 유린할 때 조선의 의병 70%가 스승의 제 자들이 이끈 의병이었다. 곽재우 김면 정인홍 최영경-이런 스승의 제자들이 직접 나서서 나라를 위해 칼을 들었던 일을 우리는 잘 안다. 남명이야 말로 민족의 큰 스승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대망하는 큰 스승이다. 오늘날 방울을 흔들어 주실 스승을 기다리는 이 나라에 방울을 찬 스승의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