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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탄신 500주년, 퇴계 문중서 축하 방문
덕천강을 앞에 두고, 구곡산을 병풍처럼 두른 경남 산청군 시천면 덕천서원. 여름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던 17일 저녁 귀한 손님들이 잇달아 찾았다. 남명 조식 선생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남명제) 준비차 모여든 한복 차림의 유림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명과 같은 해에 태어나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양대 학파를 이룬 퇴계 이황 선생 14대손인 이원강(65) 삼우정기 대표와 15대손 이동승(71) 서울 대 명예교수, 퇴계 선생 큰집 종손인 이창건(55) 대구 영진전문대교수 일행이었다. “종손(이동희)께서 아흔이 넘은 고령이시고,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아 저희들을 대신 보내셨습니다. 양쪽 이 같은 경사를 맞았으니 이번 일을 유림 부흥의 계기로 삼아 힘을 합쳤으면 합니다.”(이동승 교수) “두 어른 모두 경의를 내세우셨으니, 표방하는 이념도 비슷합니다. 양 문중이 뜻을 모아 최근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사회를 바로잡는 데 노력하시지요.”(조옥환·남명학연구원 부이사장·68) 덕천서원 한켠 방에 들어선 양쪽 문중 대표들은 유교의 미래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밤늦도록 자리를 지켰다. “요즘 세상은 유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너무 지나칩니다. 예전에는 정면에서 싸웠지, 뒤에 서 뒤통수치지는 않았어요.” “해방 이후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니, 윤리적 가치가 뒤로 밀려났습니다.” “퇴계선생 이후 대과 급제자만 56명이 나왔다”거나 “민본주의와 비판적인 선비정신을 강조한 남명이 요즘 사회 분위기에 어울린다”는 등의 문중 자랑도 간간히 새어나왔다. 퇴계 문중의 이번 방문은 남명과 퇴계 탄신 500주년을 맞아 분열된 유림이 단결과 유학의 부흥에 힘을 합 치자는 취지에 양쪽 문중이 의기투합했기 때문. 퇴계와 남명은 학문과 윤리로 무장한 당대 최고의 선비로 이름을 떨쳤으나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두 학파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동인으로 한 정파였으나 퇴계학파 는 남인으로, 남명학파는 북인으로 나뉘어졌다. 양쪽 문중에선 “거리가 멀어 교류가 뜸했다”는 정도로 얘기하지만, 두 문중 사이에 보이지않는 긴장과 경쟁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퇴계 문 중과 도산서원이 남명제에 대거 대표를 파견한 것은 국내 유림을 대표하는 양대 문중이 화해와 단합의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16일에는 퇴계가 후학을 가르친 도산서원 대표 5명이 덕천서원을 찾았다. 이들은 남명 문중에서 반길만한 뜻깊은 선물을 내놓았다. 도산서원 유생 100여명이 연명으로 남명 탄신 500주년을 축하하기위해 작성한 ‘도산서원 파록’이었다. 특히 퇴계문중에선 후손 100여명의 이름과 함께 “두 선생이 일평생 교분을 맺 었으니, 후손들은 영원토록 돈독하게 관계를 이어가자”는 축하의 글을 보내왔다. 덕천서원 원임인 하유집 (하유 집에서 왼쪽 수레차 대신 나무목변) 성균관 부관장은 “도산서원 파록은 덕천서원 유생들에게 공람 을 시켰고, 앞으로 영구히 서원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했다. 18일 오전에 치러진 남명제에선 퇴계 큰집 종손인 이창건 교수가 축관을 맡아 양문중의 단합을 과시했다. 허권수(49)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는 “분열돼있던 유림들이 퇴계·남명 탄신 500주년을 맞아 단합해서 유 학의 맥을 잇자는 취지에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남명 12대손인 조창섭 서울대사대 학장은 “10월에 있 을 퇴계탄신 500주년 행사에는 남명 문중과 덕천서원 대표들이 축하방문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 산청=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