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난설헌 허초희의 생애



    난설헌 허초희는 1563년 강릉 초당리 외할아버지 댁에서 
    초당 허엽의 삼남삼녀중 다섯째이며 딸로서는 셋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호조참판을 지낸 김광철의 딸로서 허엽의 후실이였다. 
    아버지의 전실 한씨는 허성과 두 언니를 낳았으며 
    언니들은 우성전과 박순원에게 각각 시집갔다.


    호는 난설헌 자는 경번이다.
    아버지 허엽은 본관이 양천이며 글을 좋아하였다. 
    계속 벼슬을 하였으므로 
    난설헌은 대체로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버지는 딸들에게도 글을 가르쳤으며 
    손곡 이달에게 문장을 배우게 했다.    
    어려서 시재를 발휘하여 신동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림 몇편도 남아있다.
    열다섯에 안동김씨 김성립에게 출가 하였으나 
    시댁의 생활이나 남편과의 결혼이 평탄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에 아홉 살 된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다.
    결혼 얼마후 친정 아버지께서 별세하시고 
    후에 오빠 허봉이 죽어 가정에 어려움이 겹치다.  
    자신의 재주를 펼수 없는 시대상황과 가정의 불행 등이 
    삶에 대한 의욕을 잃게하여 스물셋의 나이에
    이미 자신이 오래살지 못할 것을 예견하다.
    1589년 3월 19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안동김씨 선영에 묻히다.
    죽기전 자신의 시를 다 불태웠으므로 
    실제로 난설헌이 시를 몇편이나 썼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210수가 전하고 
    백옥루상량문과 恨情一疊* 몽유광상산 시를 합하여 
    213수라하기도한다. 

                                            *疊:거듭할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