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난설헌 허초희 년보


  
    1563년 강릉 초당리 외가에서 태어나다. 
           아버지는 초당 허엽(1517-1580) 어머니는 김씨 
           서울의 건천동에서 자라다
           오빠 하곡과 손곡 이달에게 글과 문장을 배우다.

    1570년 8세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 
           이 상량문은 그 문체의 아름다움은 고사하고라도 
           그 내용에 있는 각종 고사의 인용 등을 통하여 볼 때 
           당시 난설헌이 학문의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1577년 (15세) 쯤에 안동김씨 성립과 결혼하였으나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1579년 5월 초당 경상감사가 되고 1580년 2월 4일 병사하다.

    1585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몽유광상산을 지었다.

    1588년 9월 17일 작은 오빠 하곡 허봉 별세. 
           초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589년 3월 19일 별세
           김성립 문과 급제

    1590년 11월 허균이 난설헌시집-난설헌집을 엮었다. 
           유성룡이 서문을 썼다.

    1592년 김성립사망 -벼슬은 8품에 머뭄.

    1598년 정유재란이 있은 해 명나라 문인 오명제가 난설헌 시를 가져가
           중국에서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에 실렸다.

    1606년 중국사신 주지번이 난설헌의 시를 가져가 
           중국에서 난설헌 시집이 간행되다
           중국에서 시인으로 이름을 크게 얻다.

    1607년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으로 찍어내다.

    1618년 허균 죽다

    1711년 일본에서 난설헌집(분다이야 지로 편)이 간행되다.
           일본에서도 시인으로 명성을 크게 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