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문답에 대한 해명

 

       전인이라고 하는 자는 곧 이상을 지낸 이언적이 관기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으로, 본래 이름은 옥강이었다. 이언적이 처음 벼슬길에 나아가 경주에서 훈도로 있을 적에 전인의 생모를 자신의 방지기로 두었다. 판서 벼슬을 지낸 조윤손이 당시 경상도의 수사로 부임하면서 전인의 생모인 이 관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이언적이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을 기화로 몰래 자신의 곁에 두고서 이언적을 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 이미 이 관기는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조윤손이 이 관기를 데리고 간 뒤 일곱 달만에 아이를 낳아 옥강이라 이름 하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게 하였다. 이 일은 바로 옛날 진정과 여불위의 관계나 초나라 유왕과 황헐의 관계와 같다고 하겠다.

       나의 장인에게 서모 소생의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조윤손의 서자인 조의산의 처가 되었다. 이렇듯 집안끼리 서로 연이 닿아 나는 일찍이 전인의 출생에 관한 전말을 알고 있었다. 조씨 문중에서도 모두 옥강이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세상 사람들도 모두 조윤손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었다. 조윤손이 죽자 조씨 집안의 사위들이 모두 옥강이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받드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그러나 옥강은 조윤손이 봉사손에게 남긴 재산이 탐나서 한사코 생부인 이언적에게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에 복고가 관서 지방에 유배가 있었는데, 달리 자식이 없어 홀몸으로 외로이 귀양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서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옥강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의 생모가 너의 생부에 대해 말을 하여 너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판서공이 돌아가셨으니, 무엇이 꺼릴 것이 있어 이상에게로 가지 않느냐? 조정에서 오래 전부터 너의 혈통 문제로 의론이 분분하여 이제 너의 생모를 엄히 신문하려 하는데, 너는 너의 생부를 저 버리고 생모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느냐?"라고 하였다. 그러나 옥강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서 떠나지 않았다. 조씨 집안에서 그를 내치고 난 뒤에야 경주로 갔는데 <그 때에도> 여전히 양부인 조윤손의 상복을 입은 채로 들어갔다.

       이렇듯 옥강은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생부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복고 역시 훗날 외로운 혼이 되었으니, 아들이 있었지만 권세가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옥강이 자신을 찾아왔을 적에도 복고는 부자간의 외리를 분명히 하여 옥강이 아비를 무시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이내 흔쾌히 마치 이전에 부자 사이에 한번도 틈이 없었던 것처럼 옥강을 총애하였다. 나는 일찍이 복고가 멀리 귀양 가 있어 서로 만나 손뼉을 치며 기뻐할 길이 없음을 탄식하곤 하였다.

       그런데 <옥강을> 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그가 생부인 복고에게 간 뒤에 고친 이름일 것이다. 내가 늘 옥강을 아비도 몰라보는 간사한 인간이라고 꾸짖었고, 옥강도 그 점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복고는 이러한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옥강이 떠나 올 적에 나를 만나고 왔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옥강에게는 나를 만나 볼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하겠다.

       복고가 일찍이 나를 유일로 조정에 천거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하기를  "그와 더불어 하룻밤도 다정히 보낸 적이 없으니 복고가 실로 나에 대해서 별반 알지도 못할 것인데 어찌 나의 선악을 알겠는가? 남의 선악을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서 문득 임금에게 천거하였으니, 남의 이야기만 듣고서 나를 칭찬하였다면 훗날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서 나를 비난할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