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 선조2년 아전들의 횡포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상소로 1600자에 달하는 장문임. 봉사란 임금님께 봉해서 올리는 상소문임.>>
경상도 진주에 사는 백성 조식은 진실로 홍공하여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면서 주상 전하께 상소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저는 노쇠한 병이 점 점 더 해서,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몸은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부르시는 명을 거듭 내리시니, 길 떠날 거마를 기다림도 오히려 뒤로 해야 하지 만,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길을 바라보기만 할 뿐 나아가기 가 어렵습니다. 진실로 죽을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성상의 은택을 보답 할 길이 없음을 아옵기에, 감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을 다해서 대왕 전하께 올립니다.
엎드려 보건대, 주상께서는 상지의 자질을 타고 나셔서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시는 마음이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백성과 사직의 복입니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남에게 구하는 데 있지 않고 임금 자신이 善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 데 그 本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선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함을 이름이요, 몸을 정성스럽게 한다 함은 몸을 닦는 것을 이 름이다. 사람의 性情 속에 萬理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仁義禮智가 곧 그 體요, 善이 모두 그 體로부터 나온다. 心은 理가 모이는 바 主體요, 身은 心을 담는 그릇이니, 그 이치를 궁구함은 장차 用에 이르게 하려 함이요, 몸을 닦는 것은 장차 道를 행하고자 함이다. 그러한 이치를 궁구하는 바탕이 곧 讀書이니, 의리 를 講明해서 應事의 當否를 구하는 것이 그것이요, 몸을 닦는 方인즉 體가 아니 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窮理修身의 本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그 홀로 있음을 삼가함은 天德이요, 이것을 밖으로 發해 省察해서 힘써 行하는 것이 王道인데 그렇게 되도록 하는 공부는 반드시 敬으로써 主를 삼아야 한다. 이른바 敬이란 늘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을 整嚴하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늘 밝게 깨어있게 하여 一心이 주인이 되어 만사를 제어함을 말함이니 공자가 이른바 敬 으로써 몸을 닦는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까닭에 敬을 主로 삼지 않고는 心을 좌 정시킬 수가 없고 좌정 시키지 않으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할 수가 없으며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서는 사물의 변화를 제어할 수가 없다.
전하께서 과연 능히 敬으로써 몸을 닦아 天德에 달하고 王道를 행하여 반드시 至 善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그친다면 心明과 身誠이 함께 이르고 物과 我가 아울러 다할 것이며 나아가 이를 政敎에 베푼다면 마치 바람이 부는대로 구름이 가는 것 처럼 백성들이 보다 기꺼이 따라와 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을 말한다면 우선 임금 자신의 심성이 좌정되어 있지 않아 政事는 사사로이 처리되는 것이 많 고 그러다 보니 政命이 발하여도 백성들은 이에 거부반응을 나타내어 나라의 기 강이 서지 않은 지가 여러 代입니다. 그러므로 非한 왕위를 떨치지 않고서는 이 미 흩어져서 뒤죽박죽이 된 세태를 끌어 모을 수가 없고 큰 장마비로 축여주지 않고서는 七年大旱에 말라 있는 풀잎을 윤택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불세출의 영재를 보필로 얻어 상하가 함께 정성을 다하고 협화하고, 온 나라 사 람들이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한 연후에야, 차츰 무너지는 것을 받치 고 말라 비틀어지는 것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재를 얻는 것은 임금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 자신이 몸을 닦지 않 으면 자신에게 사람을 저울질하고 보는 능력이 갖추어 있지 않아 선악을 모르고, 그러한 昏盲한 눈으로 사람을 취하고 버리면 그는 모두 正을 잃을 것이며, 또한 임금이 직접 인사를 관장하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면 누가 임금과 더불어 治道를 이룩하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이 몸을 닦는다는 것은 그가 바로 정치를 하 는 근본이며 어진이를 얻어 쓴다는 것은 그 정치를 성공시키는 근본이며 修身은 또한 사람을 취하는 근본이 되니 사람을 잘못 쓰면 군자가 野에 있고 소인이 조정 을 독점하고 국사를 멋대로 처리하게 됩니다.
옛부터 權臣이 전담한 일도 있었고 외척이 발호한 일도 있었고, 내시가 정령을 가 로 챈 일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처럼 서리들이 나라일을 농락하는 것은 일찍이 듣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대부에게 있어도 오히려 옳지 못한데 하물며 서리에게 있어서 야 되겠습니까? 당당한 제후의 국가로서 조정의 200년의 업적에 힙입고 공경 대부 가 잎뒤에서 서로 따르는데 천한 서리에게 정권을 돌립니까? 이것은 쇠귀에도 들 리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군민에게 대한 모든 정사와 국가의 기밀이 모두 서리의 손에서 나오므로 실과 곡식을 관청에 바치는 데에도 뒷길로 돌려 바치지 않으면 통하지 아니합니다. 안으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은 밖으로 흩어져 열 명 가운데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고을을 자신의 물건처럼 생각하여, 문서를 만들어서 교활하게 자기의 자손 대대로 전합니다. 지방에서 바치는 것을 일체 가로막고 물리쳐서 한 물건도 상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물을 가지고 바치러 갔던 자가 그 온 가족의 가산을 다 팔아도 그것이 관청으로 들어가지 않고 개인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백 곱절이 아니면 받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해마 다 바치는 곡물을 계속해 바치치 못하고 도주하는 자들이 잇달아 생깁니다. 창건 이래로 고을의 백성이 바치는 것이 문득 새앙쥐같은 놈들이 나누어 가질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전하께서 한 나라를 독차지 하는 부를 누리면서도 도리어 이 서리들의 방납한 물품에 의뢰하고 계시다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습니까?
왕망과 동탁 같은 간악한 자들도 이런 적은 없었으며 비록 망해 가는 나라에서 도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러고서도 만족하지 않고 국고의 물건까지 훔쳐 내어 아주 적은 옷감, 매우 작은 곡식도저축된 것이 없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고 도적이 도성에 가득합니다. 나라는 한갓 빈 그릇만 안고 다 썩어서 뼈대만 앙상하 게 서 있으니 온 조정사람들은 마땅히 목욕재계하고 함께 쳐야 할 것입니다. 혹 힘이 모자라면 사방사람들을 불러서 잠시도 잠자고 먹을 겨를이 없이 분주히 임 금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제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서로 작당하여 좀도적질을 하면 포졸들에게 급히 잡 아들일 것을 명하면서 벼슬아치들이 도적질을 하여 國을 쇠진케 하는것에 대해서 는 言官도 이를 감히 말하지 못하며 사직당국은 이를 추궁하지 않으며 혹 일개 관 헌이 좀 규찰하려 들라치면 이내 죄를 씌워 파직시키는 권한까지 그들이 쥐고 있 습니다. 어찌 믿는 세력이 없고서야 이토록 방자하고 못하는 짓이 없이 날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마치 교활한 토끼처럼 각기 세 개의 굴을 가지고 있고, 냇물 의 조개처럼 단단한 껍질을 입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이 굽어보듯 크게 노하시어 왕권의 위엄을 떨치시고 친히 相과 事들 을 조사하여 그 까닭을 규명하시고 직접 처단하시기를 이 四을 물리치고 孔子가 少 正를 죽인 것처럼 하면, 그들은 임금이 악을 미워함이 극에 다달아 있음을 알아서 백성들이 크게 죄악을 범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만일 언관이 論하여 마지 않다가 부득이한 데 핍박된 뒤 구차스럽게 따른다면 善惡 의 소재와 是非의 분별을 알 수 없게 될 것이니 이는 임금의 길을 잃는 것이 됩니다. 임금의 心德이 밝아 있다면 이는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 나에게 있음과 같아서 비추어지지 않는 일이 없게 되어 왕의 심덕과 위엄이 초목에까지도 미칠 것입니다. 하물며 백성에게 미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조정에 서 있는 자 중에 세상을 밝힐만한 王之才와 자기 직무에 충실하는 어진이가 없는 것도 아니나 이들은 명철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우매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즐거움으로 걱정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安하고 있으니 이 어찌 사람의 事함이 굳세지 못하다 하지 않을 수 있 겠습니까? 아니면 하늘의 명이라서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요? 臣은 깊은 산에 살면서 아래로 땅을 굽어보고 위로는 하늘을 우러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 오는 탄식을 억누르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를 여러 번 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