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합천 유애비문

        누군들 부모가 없을 것이며, 어느 부모인들 어린애가 없을 것인가?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으면 다른 사람이 더러 거두어 길러 줄 수도 있다.부모가 갓난애를 먹을 때는 사람이 때에 따라 틈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 공이 백성의 부모가 되었을 때는 사랑이 어찌 잠시라도 틈이 난 적이 있던가? 우리 갓난아이들이 어진 어머니 품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어찌 거두어 길러 주겠는가? 아침에 먹여주지 않으면 굶주리고, 저녁에 먹여주지 않으면 초췌해지고, 세 끼를 다 먹지 못하면 버려질것이니, 우리 갓난아이들은 구렁텅니나 골짜기에 죽어 넘어지고 말 것이다. 불러 봐도 소용없고 다른 곳에서 빌려 올 수도 없이니, 백만 명을 합해 놓아도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리일 뿐이다.

        사람이 오십 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그리워하여, 큰 길거리에서도 늘 이야기하고 비석을 세우고 한다. 우리 부모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학사 증영이 그 사람이다. 우리 갓난아이란 누구인가? 합천군의 백성이다. 부모된 사람은 무엇인가? 합천의 군수이다. 그가 부임해 왔을 때에는 자신만만하여 우리 백성 보기를 아픈 상처 보듯 하더니, 그가 떠나갈 때는 황급히 비석에 그의 공적을 기재하지도 않고 떠났다. 우리에게 밭이 있으면 공이 농사짓게 해주고, 우리에게 뽕이나 삼이 있으면 공이 옷을 만들어 입게 해주었다. 나라에서 중요한 징용이 있으면 관아에서 스스로 대응하고, 백성들에게 굶주리는 기색이 있으면, 자기 음식을 밀어 고기를 먹여 주었다. 향약을 일으킨 것은 윤리를 돈독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주포를 불린 것은 백성들의 노역을 덜어 주려는 것이었다.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이 외로운 송아지가 젖을 들이받는 것처럼 덤벼도 노하지 않고 타일렀으며, 권문세가에서 뇌물을 요구할 때는 매번 빈 봉투를 보냈다.

        이제 그분이 떠나가니 사랑이 나올 것이 없다. 다만 생각건대,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올 것이니, 내일 부모가 될 사람이 자식 기르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갓난아이가 되는 사람도 역시 어버이 사랑하는 것을 배운 다음에 효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다면 계속해서 끝없이 자애로운 부모가 있을 것이고, 끝없이 효를 생각하는 자식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부모를 생각하여 사랑을 남겨 준 것을 드러낼 뿐이다. 어찌 혹시라도 부모의 은혜에 대해 구별함이 있어서이겠는가?

        명 나라 거정 38년 기미(명종 14,1559) 11월에 합천 군민이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