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 최씨 묘표
貞夫人 崔氏 墓表
정부인 최씨가 태어난 곳은 회창 에 있는 정승의 옛집이고, 돌아가신 곳은 초계에 있는 원융의 세거지였다. 정승은 가문을 온전히 해 사 세에 걸쳐 대신의 자리에 올랐으며, 충성과 정절을 세습하여 공이 사직에 있었다. 부인이 시집오기전에 가문에 알맞게 한 점도 컸지만, 그것으로 보인의 행실을 치장하기에는 부족하다.
원융은 총융으로 세 조정에 걸쳐 오랑캐와 중국에 위세를 떨쳤지만, 자신은 한미한 선비 같았고 집안은 살림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부인이 내조를 하고 시댁 식구들과 잘 지낸 점이 있지만, 그것으로 부인의 덕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옥과 천구 같고, 산룡과 분미 같은 훌륭한 자식들은 부인의 큰아들.둘째아들.막내아들, 그리고 딸들이다. 이로써 비로소 훌륭한 자식이 있음을 말한 셈이 되었지만 부인이 훌륭한 성품과 분수를 지니고 있음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고령 현감 이희안과 친하게 지냈다. 당하에서 부인을 뵌 적이 있었는데, 그 훌륭함을 보고서야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면서도 공경스러워 보이는 것은 마치 제사를 받들고 남편을 받드는 거동이었고, 온화하면서도 엄격한 것은 비첩을 어루만져 주고 저녀를 가르치는 법이었다. 동지공이 나라를 걱정하여 집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평생토록 집을 돌보지 않았으나, 부인이 인으로 집안일을 넉넉히 다스리고 전택을 잘 경영하여, 엄연히 예의 있는 한 가문을 이루었다. 동지공이 매양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얻었으니, 집안 식구들의 생계는 전혀 마음 쓰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부인이 어찌 힘써 공부한 적이 있어 수신 제가의 도를 써서 다스린 사람이겠는가? 단지 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난 것이 많아,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을 잃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금이 불을 위해 순수한 것이 아니고, 옥이 사람을 위해 따뜻한 것이 아니다. 대개 그 타고난 성질이 그러한 것이다.
고령은 일찍이 나를 세상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겼다. 따라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에게도 아첨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여, 나에게 묘표를 지어 주기를 요구하기에, 삼가 그 가계를 차례대로 적는다.
부인은 본관이 통천이니, 대장군 록은 우리 태조와 같이 고려 말에 벼슬한 분이다. 이분이 처음으로 회창에 살 게 되었는데, 오늘날의 창원부이다. 록은 판서 운해를 낳았고, 운해는 좌의정 윤덕을 낳았으니 이분이 부인의 증조부이다. 조부는 숙손인데 자헌대부 전라도 병사를 지냈고, 아버지 계한은 훈련원 참군을 지냈다. 어머니 김씨는 현감 진의 아들인 신의 딸이다.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고 향년은 팔십이 세였다. 가정 을사년(인종 1, 1545)에 동지공의 묘 아래에 합장하였으니, 곧 초계의 청계산 봉원이다. 장녀는 충의위 우희순에게 시집 갔으며, 아들 종간을 두었다. 차녀는 총의위 신식에게 시집 갔고, 아들 경심을 두었다.
맏아들 희증은 약관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과게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에 제수되었으며, 둘째 아들 희민도 이어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었는데,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막내아들 희안은 선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여러 번 향시에 장원하였고, 활쏘기와 말타기의 재주도 겸비하였다. 조정에서 처음에 전옥서 참봉으로 기용하였으나 배명만 하고 물러났다. 또 천거되어 고령 현감이 되었는데, 이년도 안 돼 사직하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세 형제의 행적이 아깝다고 하였다. 다만 수찬은 팽년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팽년은 아들 양수.천수를 두었고 사위는 진사 문익성과 학사 정견.사득이다. 교리는 아들 팽신을 두었는데 일찍 죽었고, 사위인 좌랑 김렴과 첩의 몸에서 난 아들 팽치가 있을 뿐이다. 고령은 사위 이득분과 소실의 몸에서 난 아들 연정이 있다. 후취는 사인 이한정의 딸이다. 어진 사람의 후손은 번창하지 않으니, 아름다운 문채가 알록달록한 표범 가죽의 한 점 무늬에 겨우 남아 있다. 사람들 또한 이씨 가문이 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썩어 없어지지 않을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니, 그러한 이야기를 써서 둘에 새긴다.
명나라 가정 35녀녀 병진(명종 11, 1556)에 집안사람 창산 조식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