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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당기 ( 永募堂記 )

두류산 천첩만학의 물이 다투어 흘러와 굽이틀어 청천이 되는 곳이 바로 진양의 촉석루가 있는 것이다. 이 물이 다시 동남쪽으로 넓은 들판을 삼키기도 하고 토하기도 하면서 수십 리쯤 달려 내려온 곳이 바로 가방의 관개리이다. 마을 어구에는 검푸른 물이 거울처럼 펼쳐져 있고 푸른 산이 뼈를 드러낸 듯하다. 그 꼭대기에 훌륭한 집이 우뚝 속아 있고 '읍벽'이라는 편액을 걸어 두었는데, 이 집이 바로 이 진사 어른이 옛날 살던 집니다. 이 집의 대문 밖 남쪽을 향한 사방 두어 발의 터는 그윽하면서도 전망이 탁 트였는데, 진사 어른이 일찍이 여기에 작은 집을 지으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자부 이공량이 진사 어른의 맏아들로서, 그 아버지의 뜻을 이러 여기에 집을 지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전망이 아름답게 비치어 물과 달이 서로 잠겨 있으니 참으로 누워서도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이군이 이 당의 이름을 '영모'라 하였으니, 아아, 상상할 만하도다!

옛집과 옛나무는 오히려 남아 있건만 선인은 계시지 않고 옛 산과 옛 물은 여전하건만 선인은 돌아가셨으니, 여기에 앉고 여기에 눕고 여기서 노래하고 여기서 춤추고 여기서 형제들과 우애 있게 지내고 여기서 벗들과 어울리면서, 어찌 잠시인들 선인을 잊을 수 있겠는가! 무성한 대나무 일천 줄기가 산처럼 우뚝 서서 옥색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선인이 손수 심으신 것이요, 맑은 강 한 줄기가 바람결에 비단 같고 고요할 때 무지개 같은 것은 선인이 밥상을 마주해도 밥맛을 잊었던 것이다. 월아산이 높이 버티고 있어 흰 구름 속에 소라 껍데기처럼 솟은 모양은 바로 선인이 몰래 감추어 두고 홀로 즐기던 경치였고, 귀동에 넘실대는 푸른 들판의 이내 낀 경치는 바로 형제들이 함께 즐기던 것이다.

많은 자손들이 예의의 방향을 잘못 알고 있는것은 선인이 끼치신 가르침이 아닌가! 입고 먹을 것이 넉넉하여, 긂주리고 헐벗을 때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선인이 끼치신 은택이 아닌가! 하물며 아들은 과거에 합격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즐거움이 있고, 여러 아우들은 자신을 수양하여 선인에게 누가 미칠 염려도 없음에랴! 이 어찌 모두 덕 있는 공이 편안히 거처하면서 사랑을 끼쳤고, 훌륭한 이들이 종신토록 그 덕을 영원히 사모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리 자형은 평소 별난 행실을 좋아하지 않았고, 입으로 일찍이 남의 나쁜 점을 말한 적이 없으며, 마음으로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남을 사랑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며 소탈하고 얽매이지 않아 고인의 풍모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문장을 하여 매양 동당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실패하였으며, 더불어 사귀었던 사람이 모두 당대 일류의 명사들이었지만, 한번도 고관 대작의 집을 기웃거려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서울에 집이 있었지만 홀로 고향에서 지냈던 것은 어버이를 영원히 사모했지 때문이었다.

만년에는 자취를 감추고 세상을 피하여 술에다 몸을 감추었는데, 때로는 옥산을 무너뜨릴 듯이, 우레처럼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또 천하의 만물을 마치 바람이나 구름이나 초파리처럼 하찮게 보았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때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다면 세상을 이미 잊었고 자신의 몸을 이미 잊은 것이건만 그래도 잊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에 대한 생각만은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지 못하고, 외로운 집에서 쓸쓸히 살다보니 그리워하는 마음이 홀로 살면서 더욱 깊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한마와 같았으나 불행히고 일찍 죽었다. 위로는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아래로 자식을 생가함에, 오장이 타는 듯하여 세상 모든 일에 뜻이 없어졌으니, 한 세상에서 손을 저으며 떠나 문득 아무런 생각도 없는 곳에다 몸을 던져 버리고자 해도 끝내 회포가 없을 수 없는 경우가 어찌 아니겠는가?

그래도 두 아들이 있어서, 준민은 두 번 과거에 급제하여 거듭 악란학사가 되었으며, 헌민은 생원시 을과에 합격하였다. 이 두 아들이 모두 아들과 손자를 두어서 이미 아이가 아니건만, 그래도 때로는 큰 이불 위에서 끌어안고 누워 따뜻하게 감싸 주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여 마치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같이 하니, 사모하고 자애하는 은덕이 한 집안에 흡족하게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그 어버이를 생각하고 아들은 그 아버지에 의지하여, 아버지도 넉넉하고 자식도 넉넉하며 집안 또한 넉넉하니, 강의 위아래에 위치한 명홍정, 조월대, 십완정 등의 주인과 견주어 본다면 과연 어떠할까?

신유(1561)년 신축(12)월에 방장산 노인 남명조식은 가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