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단기 (杏壇記)

 

      이 단을 설치한 지는 오래되었으니, 춘추 시대 노나라 대부 장문중이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노나라 도성 동쪽으로, 궐리와 가까운 곳이다.

      공자께서 나무가 무성한 숲 속에서 노닐다가 이 단 위에서 쉬며 바람을 쐭도 하고, 제자들과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셨다. 하루는 자유,자하,계로 등이 공자를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안연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이 단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옵니다."

      " 이 단을 처음 설치한 연유를 아느냐?"

      "모르옵니다."

      "너희는 기록해 두도록 해라. 이것은 바로 장문중이 쌓은 단으로, 중원의 여러 제후들과 회맹하던 곳이다. 이름을 행단이라고 한 것은 이때부터 유래한 것이니라. 사물을 보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나니,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거문고를 가져오게 하여, 뜯으면서 읊조리셨다.

      "더위가 감에 추위가 오며, 봄이 감에 다시 가을이네."

      회가 조심스럽게 나아가 두 번 절하고 기문을 짓는다. 장문중은 노나라의 훌륭한 대부였으며, 노나라는 천자와 종실이 되는 국가였다. 당시에 제후들을 모아 맹약했던 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나는 모르겠다. 어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서백이 했던 직분을 수행하려했던 것이었다면 유 하혜처럼 어진 사람이 있어도 함께 조정에 서서 일하지 않은 것은 어찌 된 일이며, 예의의 가르침을 밝혀서 제 환공과 진 문공이 했던 일을 시행하려는 것이었다면 자기 집에 점치는 거북을 간직하기 위한 집을 지어 신하로서의 예의를 범한 것은 어찌된 일인가? 당시에 등용되지 않았다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자신을 등용해 주었다면 천자의 종실이 되는 나라에 있고 또 주나라 왕실이 미약해지던 시대를 당하여, 실행에 뜻을 둔 선비가 왕실을 버려 두고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단 위에서 맹약을 주재하고 제후들을 연합하는 사이에서 보여준 모습이 어찌 주공의 위엄을 빙자하여 제후를 속인 짓이 아니겠는가? 땅에다 희생을 놓고 그 위에 맹약의 문서를 얹어 두고 제후의 입에 맹약의 피를 바르게 한 것은,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고 포악하게 굴어 자신에게 이롭게 하려는 짓에 가깝지 않겠는가?

       아아! 문중이 이 단에 이르러 맹약할 때는 주나라 왕실의 위엄이 허물어지기 전이었건만 이를 구원할 수 없었고, 선생께서 이 단에서 감상을 일으키신 때는 주나라 왕실이 이미 어지러워진 뒤이건만 이를 바로 잡고자 하셨으니, 시대의 행, 불행과 세상의 치,불치는 천운이리라.

       문중은 여기에서 희생의 말을 잡아놓고 여기에서 군대 문제를 맹약하면서 동맹국의 민중들에게 위엄을 부렸지만, 동주의 운수를 돌리지도 못했고 여러 오랑캐의 침략을 늦추지도 못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여기에서 도학을 강론하시고 여기에서 의리를 창도하시면서 천리의 공명정대함을 밝히셔서, 사람들이 왕실을 업신여길 수 없다는 것과 중국이 오랑캐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이 단에서 군대 문제를 의논했던 사람은 장 대부인데 한 나라의 대부에 불과하였고, 규구에서의 맹약에 비해 도리어 부끄러운 점이 있으며, 이 단에서 도학을 강론하였던 분은 우리 선생이신데 천하의 성인이 되셨으니, 어찌 서백이 추구하려 했던 일에 대한 유공자가 아니겠는가? 같은 단 위에서 일을 했지만 의리와 이익의 서로 같지 않음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후세에 의리를 실천할 선비들은 여기에서 마땅히 무엇을 본받아야 하겠는가? 그것이 장씨의 법이겠는가? 선생의 학문이겠는가? 나는, 이 단을 쌓은 사람은 장 대부이고 이 단에 이름을 붙인 사람도 장 대부이지만, 후세 사람들은 틀림없이 '장씨의 단'이라일컫지 않고 '공씨의 단'이라고 일컬으리라 생각한다. 선생께서 탄식하신 것은 문중을 사모해서가 아니요, 문중이 왕도정치를 보좌할 만한 재주가 없었음을 슬퍼하신 것이다. 세월이 가는데 대하여 느꺼워하신 것은 흘러가는 세월 자체를 탄식하신 것이다. 하물며 여기에 단이 있으니, 후세에 이 단에 오르는 자 중에 선생의 탄식을 알아 줄 사람이 있을는지? 여기에 나무가 있으니, 후세에 세신을 기억할 사람이 있을는지?

       계로가 일어나서 노래하였다.

           평평한 이 단에는,

           군자가 있건마는,

           더러운 저 들판에,

           우리 도가 미약하도다.

           누가 장차 서쪽으로 돌아갈꼬,

           좋은 소식을 품고서?

 

       선생께서 '그래'하고 말씀하셨다.

       왕의 아무 해 월일에 문인 안회가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