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암이 선물한 <대학> 책갑안에 씀
나는 애초에 타고난 자질이 매우 둔한데다 스승과 벗들의 규계도 없어서, 오직 남에게 오만한 것으로 고상함을 삼았다.
사람에게만 오만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오만한 마음이 있어서, 부귀와 재리를 보면 마치 지푸라기나 진흙처럼 멸시하였다.
사람됨이 가벼워 진실되지 못하고, 호쾌히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팔을 걷어붙이기도 하였으며, 항상 세상사를 잊고 살 듯한 기상이 있었다.
이 어찌 돈후,주신,박실한 기상이겠는가? 날마다 소인이 되는 쪽으로 달려가면서도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
약관에 문과 한성시에 합격하고, 다시 사마시 초시에도 합격하였으나 복시에서는 다 낙방하였다.
'과거 시섬이 애초에 장부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이 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과임에랴!'라고 생각하고는 드디어 사마시는 포기하고,
동당시에만 나아가 세 차례 일등에 합격하였다. 그 뒤 합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나이 서른을 넘겼다.
또 문장이 과문의 형식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여, 다시 평이하고 간실한 책을 구하여 보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성리대전]을 가져다 읽었다.
하루는 그 책을 보다가 허씨가, "나아가 벼슬하면 나라를 위해 크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나아가 벼슬해도 하는 일이 없고 물러나 은거하면서도 지키는 것이 없다면, 뜻하고 배운들 무엇
하겠는가?"라고 한 말을 보고서 흠칫 자신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위축되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배운 것이 형편없어 거의 일생을 그르칠 뻔한
것과, 애초에 인륜이나 일상 생활에서의 일들이 모두 본분 속에서 나오는 것인 줄 몰랐던 것에 대하여 깊이 탄식하였다.
드디어 과거 공부에 싫증이 나서 다시 이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여 점점 근본적인 곳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는 꼭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다가, 하루아침에 문득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을 뵙고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발
을 구르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의 벗 원길은 이를 보고 기뻐하여 나에게 [심경]을 주었으며, 미수는 나에게 이 책을 주었다.
이 때를 당해서는 마치 저녁에 죽더라도 유감이 없을 듯하였다.
아아, 사람이 타고난 자질을 일만 가지로 달라서, 어떤 사람은 팔구 할 또는 육칠 할을 얻어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삼사 할을 얻어서 태어
난다. 팔구 할 또는 육칠 할을 얻어서 태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은, 비록 일이 또는 삼사 할 정도의 그릇된 점이 있더라도 오히려 흰 것 가운데의
검은 것이기에 군자가 못되는 것은 아니지만, 삼사 할을 얻어서 태어난 사람은 비록 삼사 할 정도의 착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검은 것 가
운데의 흰 것이므로 마침내 육칠 할 정도의 나쁜 사람이 된다.
나 같은 사람은 겨우 삼사 할을 얻어서 태어난 사람인데다 기질적인 병통이 있어서 남과는 다른 점이있다.
당시에 뜻을 얻었더라면 자신을 그르쳤을 뿐만 아니라 응당 나라도 그르쳤을 것이니, 비록 나이들어 뉘우침이 있은들 잘못을 만회할 수 있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혀가 내둘러진다.
비록 평범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모두 나보다 나은 사람 같으니, 다시 남에게 오만하고자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앞의 사고 방식대로 살면 소인이 되고, 뒤의 사고 방식으로 살면 도를 들은 사람이 되니, 한 치 되는 기미를 옮김에 따라 천리만큼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부귀에 대하여 오만했던 한 가지 마음으로 말미암아 사사로운 욕심을 적게 하는 한 가닥 길을 열게 되었다.
그리하여 착한 일을 하는 것과 악한 일을 하는 것이 모두 반드시 터전이 있어서 마치 오늘 씨를 뿌리면 내일 돋아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제
사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곤궁함을 걱정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곤궁함이 바로 통달함이 되었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여, 곤궁함을 인
하여 형통해지기를 구하다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되었고, 그 길을 가다가 본지풍광을 볼 수 있었고, 부형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굶주리다가 먹을 것을 얻고 근심하다가 즐거움을 얻게 되었으니, 나의 곤궁함을 세상 사람들의 통달함과 바꿀 수 있겠는가?
나는 바꾸지 않으리라. 다만 다리 힘이 없어서, 용감히 나아가고 힘껏 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자신을 잘 돌이켜 볼 수 있는 방법이 모두 이 책에 있으므로 나의 벗이 이로써 나에게 권면한 것이니, 남이 착하도록 도와주려는 그의 뜻이 어찌
쇠를 끊을 수 있을 정도일 뿐이겠는가? 힘쓰기를 게을리하느냐, 부지런히 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으니, 마땅히 단순한 책으로만 보지
않음이 옳으리라.
가정 임진(1532)년에 남명 조식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