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 화병 발문

 

        잘 갈무리하는 사람은 하늘에 갈무리한다. 그 하늘의 실상은 태허이다. 공허하지만 갈무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갈무리는 굳이 갈무리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갈무리되는 것이다. 사물을 숨기는 바가 없으면 사람들이 아무도 그것을 다투지 않는다. 크게는 천하와 같은 것에서부터 작게는 티끌과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힘으로써 끌어당기려고 하면 도리어 잃게 되고, 지혜로써 가두어 두려고 하면 도리어 잃게 된다. 반드시 사물을 각기 사말에게 맡겨서 자연에 갈무리되도록 한 뒤에 하늘에 책임을 맡겨야 한다.

        이제 보니, 한훤 선생께서 집안에 가루리해 두셨던 옛 그림이 이리저리 굴러다녀서 주인의 소유가 되지 못한 지 거의 백 년이었다가, 이번에 다시 주인에게 갈무리되었다. 이 두어 장의 유묵은 사람이 맡아서 지킨 것도 귀신이 돌보아 준 것도 아닌데, 쥐가 하손하지도 못했고 좀벌레가 파먹지도 못했고 바람이 훼손하지도 못했고 비가 썩게 하지도 못했다. 채색이 아련한 빛을 머금고 있어 완전한 것이, 마치 어제 표구한 듯하다.

       열 폭 짧은 병풍에 검푸른 전나무와 늙은 소나무, 푸른 나무와 파릇한 버들, 오래된 나무와 무성한 대숲, 거문고와 학, 소와 양, 낚싯줄을 드리우고 달을 완산하는 모습, 구름 낀 산의 초가, 백 리 긴 강, 천 척의 매달아 둔 듯한 폭포 등이 보이는데, 그 때는 어느 시대이며, 드러누워 쉬는 사람은 누구인가? 선생께서 마주보고 누워 있을 때나 눈길을 주고 감흥을 일으키실 적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상상해 본다. 온갖 생각을 펼쳤다가 말았다가 하며, 휘파람 불고 읊조리며 고개를 들었다 떨구었다 하는 등 상쾌한 바람 같은 선생의 영혼이 흐릿하게 그림 속에 남아 있고, 사모하는 마음 사이에 예전의 모습이 오히려 보이는 듯하다.

       그 분은 이미 떠나가 버렸으니 '어흠'하는 소리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 자손된 사람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오히려 공경하거늘, 하물며 이것은 정신이 엉겨 있는 것이어서 마치 선생의 면목을 뵈옵는 듯함에랴! 후생으로서 선생을 뵙고 싶어도 뵐 수 없는 사람도 이 그림을 보고 감회를 일으키리라.

       이 그림은 안견이 그린 것인데, 안견은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는 능력이 있어 동국의 오도자로 알려졌다. 손가락이 사물과 어울려 조화를 부림에,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참모습을 그려내어 요술을 부리듯 생생한 향기와 살아 있는 터럭을 이루어낸 것이니, 애초에는 사물을 그 그림에다 부쳐 둔 것일 따름이었다.

        선생께서 불행함을 당하심에 미쳐서 나라에서 그 집을 적몰하니, 집안의 재산이 쓸린 듯 다 없어져 해어진 빗자루 하나 남지 않았으나, 다만 이 한 물건만이 도화서에 갈무리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갈무리하지 않음으로써 갈무리한 셈이 되었고, 나의 소유는 아니게 되었다. 또 어느 해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민가로 훌쩍 나간 뒤 아무도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이는 다시 갈무리하지 않은 곳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지난 경오(1570)년에 주상께서 소대때에 우연히 "김굉필의 유적을 볼 수 있는다?"라고 물으시니, 승지 이충작이 등대하여 "신이 한 민가에서 김모가 집에 갈무리하던 화병첩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고 하였다. 초계 현감을 지낸 선생의 손자가 즉시 충작에게 탐문하였더니, 충작이 "일찍이 현감 오언의의 집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언의의 손자 학유 오운이 애초에 그의 처가 허원보의 집에서 얻었던 것인데, 새 비단으로 다시 표구하여 김초계에게 주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힘이 미친 것은 아니니, 주상의 물으심이 당초에 자연의 우연함에서 나왔고, 다른 사람들이 전수한 것도 일찍이 자연의 다행함에서 나왔고, 그 손자가 얻게 된 것도 마침내 자연의 기회로부터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치의 자연스러움에 맡기면 실하면서도 자취가 없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맡겨 두면 허하면서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무리하지 않았으므로 갈무리가 된 것이며, 뜻함이 없었기 때문에 잘 갈무리된 것이니, 하늘에 갈무리하면 사물이 숨을 데도 없고 사람이 빼앗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컨대 주인은 집에 갈무리하지 말고 선생을 모신 서원에 갈무리한다면, 아마도 잘 갈무리하는 것이 되리라. 단단한 쇠로 봉하여 대대로 지키더라도 골짜기 속에 배를 숨겨 두는 꼴이 꼭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김초계는 나이가 여든이 가까운데, 이 일 때문에 두류산으로 나를 찾아와 그 전말을 기록해 주기를 청하였다. 사양해도 되지 않아 이렇게 기록한다.

         융경 5년 신미(1571)년 임신(7)월 11일 남명 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