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매천 관련 사적지 소개

	매천관련 사적지

	 1. 매 천 사

	       황현(黃鉉 1855∼1910) 선생은 영상 황희의 후손으로 자는 운경, 호는 매천이
	     며,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간전면 만수동으로 이사를 한 후 다시 친구의 권유로 
	     광의면 수월리 월곡으로 다시 옮겨 순절하실때까지 살았던 곳이 지금의 매천사
	     로 현재까지 사랑채가 남아 있다. 
	
	     매천선생은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나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
	     말 3재라 불렀으며 고종 20년(1883)에 특별보거과(特別保擧科)에 응시하여 문장
	     으로는 장원이었지만 시골 선비라 하여 2등이 되었다. 다시 고종 25년(1888)에 
	     생원회시(生員會試)에서 장원하였으나, 시국은 혼란하고 벼슬아치들은 썩을대로 
	     썩어 당시의 세태를 개탄한 나머지 벼슬을 단념하고 내려와 초가 3칸을 짓고 구
	     안실(苟安室)이라 이름하여 학문연구와 후배교육으로 세월을 보냈다. 

	     1899년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다 못한 매천은 상소를 올린 바 있고 기울
	     어진 나라를 바로 잡는 것은 오직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1908
	     년 광의면 방광리에 근대식 학교인 호양학교을 세웠으나 매천이 죽은 뒤 일제 탄
	     압에 못이겨 문을 닫았다. 

	     한일합방을 알리는 양국조서가 전해진 이틀뒤인 1910년 9월 8일 저녁 술 석잔을 
	     마신 후 식구들을 물리치고 나서 절명시(絶命詩) 4수와 유서를 남기고 음독 순절
	     하셨다.매천 사우는 1955년 유림들이 건립하였으며 한말 야사를 엮은 매천야록
	     과 매천비 등 많은 고서와 선생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다.
	                     (광의면 수월리 월곡 사당관리인 ☏061-782-5580) 



	 2. 생   가

	       매천 황현은 1855년 12월 11일 광양시 봉강면 서석촌에서 탄생하셨다.
	     생가에 대한 자료는 수집중임. 


 3. 유물 전시관

 4. 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