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천 황현 

조선 후기의 학자 ·우국지사.

....본    관 : 장수(長水) , 조선초 명 정승 황희의 후손이다.
....호       : 매천(梅泉) 
....별    칭 : 자 운경(雲卿) 
....활동분야 : 문학, 교육 
....출 생 지 : 전남 광양(光陽) 
....주요수상 : 사후/건국훈장 독립장(1962) 
....주요저서 : 《매천야록(梅泉野錄)》,《동비기략(東匪紀略)》 


1855년 12월 11일 전남 광양(光陽) 봉강면 석사리(문덕봉 아래 서섯촌 마을)에서 출생.
       아버지는 황시묵 어머니 풍천노씨 
 
       명성황후는 1851년 고종황제는 1852년 생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1861년이다.

       1860년 동학운동이 일어났고 1862년에는 진주 민란이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프랑스인 선교사 7명을 대천의 갈매못과 서울 새남터에서 목을 베었다.

       1867년 경복궁을 완성하다.

       1873년 최익현이 대원군을 탄핵하다.
              대원군 섭정이 끝나다.
        
       1875년부터 서울을 왕래하며 견문을 넓힘.
                  이건창 김택영(한말 삼재)과 사귐.

1883년(고종 20년 28세) 생원진사시에 최우수 합격하였으나 시골출신이라 2등으로 된 것을
       비관하여 본시에 나가지 아니하다. 

1886년(고종 23년 31세,혹은 32세)구례 광의면으로 이사와 구안실이란 독서당을 짓고 공부
       를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1888년(고종 25년 33세) 생원회시에 장원으로 급제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에
       은거하였다. 

1892년 (37세) 아버지 황시묵 별세
       출입을 삼가고 시문짓기와 학문연구만 전념하다.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을 통감 여러 교육기관을 열어 새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인재양성에 투신하다. 


1910년(융희 4)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한달 뒤에 이 소식을 접하고 국치(國恥)
       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9월 7일 새벽 음독 순국하였다. 

이듬해 영 ·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이 출간되었다.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864년부터 1910년까지 47년간의 들은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그러나 매천은 전문 역사가가 아니었으므로 많은 자료를 기록하고 잇음에도 
        다소의 한계가 있었고 구할 수 있는 정보도 구전, 편지, 혹은 인편에 의하였
        으므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됨.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
        (史料叢書)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밖의 저서에 《동비기략(東匪紀略)》이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구례군 광의면 월곡(천은사와 화엄사 중간)에 매천 황현을 배향한 사우 
       매천사가 잇다.

시인으로서의 매천.

      시문에 능하여 시 6000수를 남긴 것으로 전한다. 앞으로 시가 구해지는 대
    로 매천 시 사이트를 열 예정이다. 어떤 자료는 8000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 보통의 시집 한권은 약 70여편의 시가 들어 있으므로 매천이 지은 시를 현재
    의 시집형태로 출판하면 100권 이상의 시집이 된다. 이는 현재 가장 많은 시집을 
    낸 조병화시인의 50여권보다 두배이상 많은 분량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보
    다 더 많은 시를 쓴 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퇴계는 시 2000을 썼다하고 남명도 2000을 썼다하나 남명의 시는 현재 200편 만
    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