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 李建昌 [1852~189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       관 : 전주(全州) 
......호           : 영재(寧齋) 
......별       칭 : 자 봉조(鳳朝/鳳藻) 
......활동분야 : 정치 
......출 생 지  : 인천 강화 
......주요저서 : 《당의통략(黨議通略)》 
......주요작품 : 《명미당집(明美堂集)》 
 
  본관 전주(全州). 자 봉조(鳳朝/鳳藻). 호 영재(寧齋). 인천 강화 출생. 가학인 양명학을 계승하였으며, 강위(姜瑋)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과 가까웠다. 1866년(고종 3)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15세의 어린 나이로 인해 등용이 연기되어 1870년에 홍문관에 들어갔다. 1874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5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을 탄핵했다가 벽동에서 유배생활을 한 후 벼슬을 포기하였다. 고종의 간곡한 부름으로 1880년과 1893년에 어사로 나가 관인의 비리를 엄하게 조사하고 민폐를 해결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1890년에 한성부소윤, 1891년에 승지에 나아갔지만 관인 생활은 많지 않았다. 특히 1894년 갑오개혁 이후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사 고군산도에 2개월 동안 유배되기도 하였다.

병인양요 때 조부인 이조판서 이시원(李是遠)의 자결을 목도하였으며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1890년에 한성부소윤으로서 국가의 부동산을 외국인에게 넘기지 말 것을 건의한 것이 한 예이다. 양명학자로서 심학(心學)의 의미를 강조하여 정치 ·경제도 그것에 기반을 두고 허명(虛名)을 배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웃나라에서 부강을 구하는 비주체적 개화를 극력 반대하였다.

문학적으로 김택영에 의해 여한9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권력에 비판적이었으며 민생의 실상과 어려움을 많이 다루었다. 저서로 문집 《명미당집(明美堂集)》과 조선 중기 이후의 붕당을 개관하고 평가한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있다. 

 

김택영 金澤榮 [1850~1927] 


......한말의 학자.
......본      관 : 화개 
......호          : 창강 
......별      칭 : 자 우림, 당호 소호당주인 
......활동분야 : 행정, 문학 
......출 생 지  : 경기 개성 
......주요저서 : 《한국소사》 《숭양기구전》 

  본관 화개(花開). 자 우림(于霖). 호 창강(滄江). 당호 소호당주인(韶護堂主人). 개성 출생. 1891년 진사가 되고, 1894년 편사국주사(編史局主事), 1895년 중추원 서기관(中樞院書記官)을 역임하다가 이듬해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903년 다시 홍문관찬집소(弘文館纂集所)에 보직되어 문헌비고 속찬위원(文獻備考續撰委員)으로 있다가,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1905년 학부(學部)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가의 장래를 통탄하던 중 1908년 중국으로 망명, 퉁저우[通州]에 살면서 학문과 문장수업으로 여생을 보냈다. 특히 고시(古詩)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에서 청나라 캉유웨이[康有爲]·정효서(鄭孝胥)와 어깨를 겨누었다. 

저서에 《한국소사(韓國小史)》 《한사계(韓史몇)》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교정삼국사기(校正三國史記)》

 《중편한대숭양기동사집략구전(重編韓代崧陽耆東史輯略舊傳)》이 있다. 

 

황현 黃玹 [1855~1910]


......조선 후기의 학자 ·우국지사.
......본      관 : 장수(長水) 
......호          : 매천(梅泉) 
......별      칭 : 자 운경(雲卿) 
......활동분야 : 문학 
......출 생 지  : 전남 광양(光陽) 
......주요수상 : 건국훈장 독립장(1962) 
......주요저서 : 《매천야록(梅泉野錄)》,《동비기략(東匪紀略)》 
  
  본관 장수(長水). 자 운경(雲卿). 호 매천(梅泉). 전남 광양(光陽) 출생. 시문에 능하여 1885년(고종 22) 생원진사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에 은거하였다. 1910년(융희 4)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이듬해 영 ·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이 출간되고, 한말 풍운사(風雲史)를 담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史料叢書)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밖의 저서에 《동비기략(東匪紀略)》이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