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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시의 마조 10
일면불, 월면불
어늘 날, 한 중이 마조를 친견하러 왔다. 마조는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들어가도 맞고, 안 들어가도 맞는다!" 이에 중이 서슴없이 원 안에 들어갔다. 마조가 그를 내리쳤다. 중이 말했다. "저를 때리신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닙니다." 마조는 주장자에 기대어 사라졌다.
방거사가 마조에게 물었다. "물은 근육도 뼈도 없지만 만석을 싣는 배라도 거뜬히 받친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도리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여기는 물도 배도 없는데, 근육이니 뼈니 하는 것은 또 웬 말인가?"
어느 날, 은봉이 수레를 밀고 가는데, 마조가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길을 가로막았다. 은봉이 말했다. "스승님, 다리 좀 거두어 주십시오." 마조가 말했다. "한 번 뻗은 것은 다시 거두어 들일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봉은 계속 수레를 밀고 나아갔다. 결국 마조는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법당으로 돌아왔을 때, 마조는 도끼를 손에 들고 소리쳤다. "아까 내 다리에 상처를 입힌 놈은 썩 앞으로 나서라!" 은봉이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서더니, 마조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마조는 도끼를 내려놓았다.
마조는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급소를 찌르는 데 결코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임종을 앞두고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도 근황을 묻는 제자에게 유명한 대답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면불, 월면불"
어느 날, 마조는 절 가까이에 있는 석문산에 올랐다. 그는 얼마 동안 숲 속을 거닐면서 명상했다. 그러다가 동굴이 무너져 평평해진 것을 보고 동행한 시자에게 말했다. "다음 달, 나의 육신은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산에서 돌아와 곧 몸져 누웠다. 다음 달인 2월 4일 그는 목욕을 마치고 결가부좌를 한 채로 입적했다. 여든의 나이였다.
라즈니시 강의
** 어느날 한 중이... 들어가도 맞고 안 들어가도 맞는다. 스승의 자비는 끝이 없다. 원 안에 있느냐 원 밖에 있느냐는 아무 문제가 아니다. 그대가 어디에 있던 스승께서는 그대를 깨우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제자는 구타를 두려워하고 진정한 스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대의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각성이다.(229p)
**..근육이니 뼈니하는 말은 웬말인가? 마조는 말한다. 내게 지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은 하지마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그대에게 실존적인 경험을 주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 싸운다. 그것은 사지도 않은 소 문제로 싸우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지옥이 몇개인가하는 문제로 수 천년을 싸워 오고 있다. 힌두교인들은 하나의 지옥을 믿는다. 그런데 자이나교인들은 하나의 지옥으로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세개의 지옥을 믿는다. 불교는 일곱개의 지옥을 말한다. 어떤이는 일흔 일곱개의 지옥에 대해 말하니도 있다. 그들은 이것들을 아주 심각하게 다룬다. 그러나 이 지옥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보라. 이런 문제로 수천 년 동안 다투고 싸워 오고 있으나 사람들은 이들을 어리석게 여기지도 않는다.
신에 대한 문제도 그렇다. 신을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은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로는 오늘날 미사일 대포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싸우고 서로를 죽이고 있다. 세상에는 신을 믿지 않는 종교도 있다. 자이나교와 불교에는 신이 없다. 반드시 신이 있어야 종교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유대의 신은 질투하고 복수하는 신이다. 그런데 그 신을 예수는 사랑의 신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그 둘을 모두 따른다. 흰두교의 신은 공정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신이 공정한가? 보라 자기를 믿는 이들을 천국으로 보내고 믿지 않는 이들을 괴롭히는 신이 공정한가? 그러므로 사랑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신은 싫고 좋음의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흰두교인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물도 배도 없는데...
위에서 말한 모든 어리석음들을 마조는 나무란다.
기독교의 신은 남자셌으로 구성되어 있는 핵가족이다. 힌두교의 신은 세개의 얼굴이 몸하나에 달려 있다. 불교의 어떤 신은 천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그저 농담으로 듣지말고 사실대로 상상해 보라. 인류의 지성은 수천년 동안 이런 괴기스런 괴물들을 숭배해 오고 있다.
마조는 실존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말라고 말한다.(236p) ** 임종을 앞두고 그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일면불 월면불. 일면불 월면불- 이것은 선에서 유며안 구절이다. 삶을 의미하는 태양을 마주 보고 있든, 죽음을 의미하는 달을 마주 보고 있든 그대의 불성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 그대가 어둠 속에 있던 밝은 빛 속에 있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대의 불성은 항상 변함이 없다.
아무 변화도 없다. 다만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일 뿐이다. 나는 영원하다. 하늘에 달이 떠 있건 해가 떠 있건 하늘은 변함이 없다. 그렇듯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다.
** 고담 붓다의 명상은 두가지 자세로 행해졌다고 한다. 앉는 것과 걷는 것이다. 그는 한 시간동안 사념을 주시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다. 그 다음에는 한 시간 동안 천천히 걸으며 다시 사념을 주시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경험이다. 곧 그대는 앉든 서든 관계없이 잠자든 활동하든 상관없이 그대 안의 어떤 것은 항상 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앉아있든 걷고 있든간에 달라지지 않는다.
** 그는 목욕을 마치고...
죽음은 거져 이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가거나 또는 육체에서 벅어나 거대한 우주의 대양으로 돌아가는 게임일 뿐이다.
칠팔십년 살았으니 이제 몸을 바꿀 때가 되었다.
하이꾸하나
들판과 산이 모두 눈 소에 묻히고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
우주의 광막한 공간안으로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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