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제 8
눈먼 당나귀
임제가 말했다. "나는 마음 바탕의 법을 설한다. 이 마음 바탕위 법은 능히 자유롭게 범부의 경지에 들어가고 성인의 경지에도 들어간다. 만일 그대들이 지어낸 진과 속, 범부와 성인의 구별로써 진속범성의 세계를 차별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이 진속범성이 참사람에게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잡았으면 그대로 쓸 뿐 결코 이름을 붙이지 말아야 하니, 이것을 일컬어 '깊은 뜻'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기로 작정했을 때, 임제는 가장 깨끗한 가사를 입고 자리에 바로 앉아서 운집한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 수제자인 삼성이 나와서 말했다. "누가 감히 스승님의 정법안장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임제가 말했다. "훗날 사람들이 너에게 정법안장에 대해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하겠느냐?" 삼성이 바로 '할!' 했다. 임제가 말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당나귀에게서 멸해 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라즈니쉬 강의
** 우리는 임제와 더불어 아름다운 날을 보냈다. 그를 잠시만이라도 우리와 동시대인으로 만든 것은 정말이지 달콤한 경험이었다.
성경의 영향으로 서양에서는 용이 악마의 상징이지만 동양에서는 황제의 상징이다. 역경에서는 지혜의 상징이다.
신박물관은 신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제 신들은 박물관의 유품이다. 인간의 삶과 신들의 관계는 끝났다. 미래의 인간은 신을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길게 허구적인 발명품인 신의 위세에 눌려 살아왔다. 새로운 인간의 신은 더 이상 하늘에 있지 않다. 그 신은 새로운 인간 안에 있다. 더 친밀하고 더 가깝게 있다. 새로운 인간은 신을 숭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삶 속에서 신을 살 것이다. 그는 신을 노래하고 춤출 것이다. 그 자신이 신의 사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인간을 붓다라고 부른다.
...나는 마음 바탕의 법( 心地法)을 설한다.... 마음바탕은 빈 마음이다. 오직 근원적인 바탕만 남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먼저 그대가 살아 있어야한다. 죽은 사람은 꿈꿀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대의 삶은 모든 투영과 상상, 천당과 지옥에 있는 모든 신들, 온갖 신화 철학 신학의 바탕으로 기능한다. 그 모든 것의 바탕은 마음이다. 선은 마음의 본질적인 바탕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선은 그 본질적인 바탕 위에 신화와 신앙체계를 세우지 않는다. 선은 침묵의 마음으로 남는다. 침묵은 무심이다. 또한 마음바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념이 없기 때문이다.
** 이 마음은 만물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참사람에게는 이름 붙일 수 없다. 임제는 그 자신의 깨달음 그 깨달음에서 태어난 새로운 인간을 암시하고 있다. 마음바탕은 이 참사람에게 명칭을 부여할 수 없다. 선은 성스럽든 세속이든 어떤 사념도 인정하지 않는다. 선은 오로지 순수한 의식, 텅빈 가슴만을 인정한다. 그토록 많은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이 마음은...수많은 사람들이 허구적인 신의 그늘 아래 살아 간다. 모든 것은 마음의 게임이다. 마음이 신을 만들고 마음이 악마를 만든다. 마음은 그대가 원하는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참사람은 창조할 수 없다. 깨달은 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형체가 없으며 아무 경계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그를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오직 의식의 근원만이 가치 있다. 그대가 그 근원 위에 키우고 있는 모든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 진리와 마주칠 때 마음은 완전히 무능하다. 마음은 진리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진리는 이름이 없다. 그대의 궁극적 존재는 이름 붙여진 적이 없다. 이름을 붙일 방법도 없다. 진리를 발견했을 때 그대는 거기에 완전히 압도되고 흡수되어 사라진다. 오로지 진리만이 남는다. 사랑, 자비, 우아함, 광채, 등 모든 것이 거기에 있지만 그대는 사라졌다. 그러니 누가 그것을 이름 붙일 수 있겠는가? 그대가 사라진다 함은 우주의 문이 열림을 의미한다.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잡았으면 그대로 쓸 뿐 결코 이름을 붙이지 말아야하나니 이것을 일컬어 깊은뜻(玄旨)라 한다.
도는 붓다가 얻은 이해의 경지와 똑같은 경지를 말한다. 도라는 단어는 아무 의미도 없다. 노자는 도에 대해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살고,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용해되고, 그것안에서 부활할 수 있을 뿐,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언어는 그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존재계의 순수성을 더럽힐 수 없다. 내가 말하는 순간 그것은 더렵혀질 것이다. 존재계는 어마어마한데 인간의 언어는 너무 하찮다.
노자..진리는 말해지는 순간 진리가 아니다. 임제..그대로 사용하라. 이름을 붙이지 마라.
이 신비한 이치(현지)는 그것을 말한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 속에서 그것을 살았다. 종교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다. 종교는 공부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하는 것이다.
..내가 가고 난 다음 나의 정법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하라 인도에서는 수 천년 동안 '제 삼의 눈' 이라고 불러 온 것을 선에서는 정법안장이라고 부른다. 외부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두개의 눈이 쓰인다. 내면을 보기 위해서는 그 둘이오직 법안으로 용해돼야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보물(신비한 이치, 현지, 제삼의 눈)을 주었다. 누구도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게하라.
수제자 삼성...
많은 말이 필요없다. 고함 소리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임제는 항상 눈먼 자들이 정법안장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임제는 단정히 열반에... 866년 혹은 887년 임제는 스물 두명의 깨달은 제자를 남겼다.
내가 이 각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적은 단 하나 그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창조하는 것, 그대의 운명은 붓다가 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뀨의 시
내가 이 가르침을 드높이거나 글씨로 쓰거나 상관없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황제의 영토이다. 나는 경건하게 예를 올리고 말한다. 뜻대로 하소서 뜻대로 하소서.
이는 존재계에 완전히 내맡김의 표현이다. 때로는 불운한 일이 일어난다. 불운은 지복의 변장한 모습이다. 불행조차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ㅁ은 그 불행을 기쁨으로 변형시킨다. 아무 저항도 없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불행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형시키는 기술이다.
** 무슨 일이 일어나든 원한을 갖지마라. 존재계에 불만을 갖지마라. 이것이 선의 메시지다.
** 외부 세계가 실재하는 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듯이 그대의 믿음은 별로 믿을 것이 못된다.
** 그대는 며칠동안 피었다가 사라지는 계절화가 아니다. 그대는 영원한 꽃이다. 그러니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는 미련을 버려라.
** 깨어 있는 자에게는 공휴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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