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7

목적지 없는 여행


임제가 금우를 찾아갔다. 금우는 임재가 자기의 절에 오는 것을 보고는 주장자를 가로 뉘여 막고서 문에 걸터앉았다.
임제는 손으로 주장자를 세 번 두드리고 방에 들어가 제일 상석에 앉았다.
금우가 들오와 임제를 보고는 말했다.
"주인과 손님의 만남에는 각별한 예의가 있는 법인데, 그대는 어디에서 왔기에 이리도 무례한가?"
임제가 말했다.
"노화상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금우가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임제가 드대로 후려쳤다. 금우가 넘어지는 시늉을 하자 임제는 다시 한 번 후려쳤다.
금우가 말했다.
"오늘은 내게 이득이 없구나."
후에, 위산이 앙산에게 물었다.
"이 두 큰스님 중에 이기고 진 사람이 있느냐?"
양산이 말했다.
"이긴 자는 철저하게 이겼고, 진 자는 철저하게 졌습니다."




라즈니쉬 강의

** 우리의 삶에는 모든 것이 조건지워져 있다. 환경, 전텅,에 의해 모든 것이 특정한 조건의 테두리에 갖혀 잇다. 이 말은 그대의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외부에서 온 것이다. 그대는 다만 그것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일 뿐이다. 그대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완전히 빈털털이이다.
선은 그대가 아무 조건없이 삶에 접근하기를 원한다. 
마키아 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적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친구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기 위해선 그 말을 청중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고려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말씀-구하라 주어질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그는 마치 존재계가 닫혀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존재계에 문이 없다. 그러니 어디를 두드리겠는가? 존재계는 매 순간 그대 곁에 있다.
종교적인 의식은-구하라, 그러면 놓칠 것이다. 구하지 마라, 그러면 이미 발견한 것이다.

** 존재계에 아무 조건도 부여하지 말라. 존재계에 압력을 넣지 말라. 그대에게 무엇이 오든 그저 받아들이고 기뻐하라. 
그대가 곧 진리이다. 모든 추구는 어리석은 짓이다. 더 많이 추구할 수록 그대는 진리와 멀어진다. 추구를 멈추라.

...금우...
금우는 자신이 주인이고 임제는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임제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은 무엇인가? 선은 형식에 대한 혁명이다. 선은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의례적인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 주인과 손님 사이에는...
임제는 무례하지 않다. 
주장자를 세번 친 것은, 스승이 제자를 찾아왔다는 의미다.
금우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주장자를 가질 자격이 없다. 그것은 나의 자비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나는 주인으로 온 것이지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다.
임제가 내려친 것은 상황을 이해하라는 뜻이거 두번째는 겉치레를 나무라는 것이다. 그의 삶 전체가 겉치례이다.

...오늘은 이득이 없구나.
이것은 이해에 도달한 사람의 답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든 것을 운명, 손금, 사주의 탓으로 돌리듯이 금우 또한 어리석은 핑계를 댄다.

..이긴자는 철저히....
이것은 매우 심오한 말이다. 이 말은 승자가 되느냐 아니면 패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 의미도 없음을 뜻한다. 핵심은 무엇이 되든 간에 전체적이고 자연발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패배는 승리만큼 가치 있다.
진정한 가치는 자발성과 무조건성에 있다. 만일 실패하면 그 실패를 아무 조건 없이 즐겁게 받아들여라. 그것은 자연의 선물이다.
선는 승리나 패배에 관심이 없다.

전체적인 사람은 패배하지 않는다.
전체성이 곧 그의 승리이다.
승리를 자랑할 것도 없고 패배의 문제도 없다. 졌다는 느낌도 없다. 
승패는 우연의 결과다. 

** 선은 모든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중구에는 
완벽한 경지에 오른 음악가는 악기를 버리고, 완벽한 경지에 오른 궁수는 활과 화살을 버린다.는 말이 있다.


** 표적은 표적이 아니야. 자네가 곧 표적이지. 전체적으로 되는 법을 배우게.


** 삶은 끊임없는 과정이다. 종착지가 없다. 순례여행 자체가 삶이다.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없다.


** 그대의 삶 전체는 하나의 여행이고 순례이며, 발견이고 추구이다. 그대는 수백만 년 동안 달리기 선수로 훈련받았다. 그리고 돌연 신을 만났는데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뀨

마지막 목적지도 없고
아무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만물은 춤추고 즐기고 농래하라고 있는 것이다. 가치에 대하여 묻지 말라. 무엇이 덕이고 무엇이 선인지 묻지 마라. 모든 것을 즐겨라. 삶은 어디에서도 끝나지 안ㄹ을 것이며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순례의 길을 가라.
길이 끝나는 지점은 없다.


** 주시자는 없다. 오직 주시가 있을 뿐이다.
붓다는 궁극적인 체험을 '촛불을 끈다.'는 말로 표현했다. 닐바나가 그런 뜻이다. 순수한 각성이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그대의 개체성을 규정지을 만한 것도 없다. 다만 고정된 형체없이 떠다니는 구름이 있을 뿐이다. 그 엄청난 '있음(isness)' 말할 수 없는 기쁨....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기쁨이 아니다. 그대는 부재한다. 그대의 부재안에 기쁨과 지복이 떠오른다.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 그때에 주시는 순수하다. 이 주시는 최상의 은총을 가져온다.
이 주시가 곧 붓다이다(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