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란바바 2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라
마두까르 : 당신이 홀로 있음과 고요함 속에 머물게 되기 이전에,
당신은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오쇼의 아쉬람에서 했던 것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당신은 오쇼의 공동체에서 일함으로써 오쇼와 그의 일에 헌신했습니까?
당신은 가능한한 오쇼의 공동체 속에서 그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습니까?
당신은 오쇼의 명상과 치료집단에 참여하였습니까?
스승에 대한 순복과 헌신이 당신의 기본적 수행이었습니까?
끼 란 : 그렇습니다.
그러한 수행들이 바로 오쇼와 함께한 나의 생활이었습니다.
마두까르 : 당신이 적용한 또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합니까?
모든 노력을 버리고
'다만 존재할 뿐'으로 남아 있은 뒤에야 비로소 당신의 깨달음은 일어난 것입니까?
그것이 정확합니까?
끼 란 :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이 어떻게 그런 깨달음을 불러왔는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마두까르 : 깨달음을 불러온 무언가가 있긴 있었습니까?
어떤 종류의 인과관계가 있었습니까?
보통 우리는 수행이 목표지점으로 이끌어준다고 믿습니다.
깨달음의 과정과 그 과정의 내용에 관하여 가능한한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당신의 과정을 묘사(描寫)함으로써
당신은 제가 제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의 묘사를 통하여
저는 아마 저의 공부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끼 란 : 깨달음의 과정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모든 영적(靈的) 여행에 관한 저의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깨달음이란
당신이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행위 - 예컨대 명상이나 뭐 그런 것들 -
때문에 발생하는 그런 사건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노력을 통하여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은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찾고 있는 당사자인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큰 주제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바깥 어딘가를 찾아다닙니다.
우리는 늘 무슨 목표를 뒤쫓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찾습니다.
우리는 불성을 찾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찾는 일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찾고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이런 깨달음을 원합니까?
누가 부처가 되고자 합니까?
우리가 이 주요한 질문을 잊고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방향으로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밖에서 찾는 모든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찾는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질문자가 누구입니까? 당신이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당신이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순입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데,
당신이 어딘가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신을 찾는 모든 노력과 모든 행위는 당신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오직 모든 노력과 모든 행위를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목표를 향한 행위를 한다는 그런 기본적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는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집니다.
마음은 의식적 행위라는 언어만을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자랍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쇼는 이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하고 우리는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모든 이런 질문들은 마음이 묻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구에서 우리는 마음 너머에 있는 어떤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도달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마음을 놓아버렸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실제로 그 공간은 마음이 녹아 사라졌을 때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틀린 도구입니다.
여기에서 그것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도구를 써서 어떻게 그 공간에 도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공간에 도달하는 데에, 마음은 도움이 되는 도구가 아니라 장애물일 뿐입니다.
명상수행, 심리치료, 집단수행, 기타 모든 그런 터무니 없는 짓거리들이 마음에 의하여 행해집니다.
우리는 그 공간에 도달하기 위하여 마음을 사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쇼의 면전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행들은 실제로 깨어나는 데에는 장애물들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모든 노력을 그만두시오!
모든 의도적 행위를 내려놓으시오!
멈추고 바라보기만 하시오!
다만 지켜보시오!
단지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기만 하시오!
무엇이 되겠다는 모든 욕망을 내려 놓으시오!"
당신이 당신의 모든 행위를 내려놓았을 때, 그 즉시 행위자가 녹아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행위자는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해체되고 녹을수록, 존재는 더욱 그 자신의 작용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아! 그것이 이런가?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그것이구나!"라고 당신은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보고 다만 웃을 뿐입니다.
그것은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면, 마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해를 넘어서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사용하고 있는 한, 스승은 당신에게 무언가 할 일을 주어야 합니다.
스승은 당신에게 당신이 당신의 모든 노력을 통하여 절망하고 지쳐버릴 때까지
당신에게 무언가 할 일을 줍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당신은 그 모든 노력들에서 손을 놓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완전히 절망하게 됩니다.
이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서 당신은 완전히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말합니다.
"아! 아!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끝장났다."
이러한 완전한 포기에서 당신은 완전한 받아들임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은 존재와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받아들임이 당신의 모든 의지적 노력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마음의 뿌리를
몽땅 잘라버릴 것입니다.
그 영양분이 없으면 자아(ego)는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당신 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봄(witnessing)으로써
그리고 아무 것도 애써 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천천히 천천히 이러한 받아들임의 상태는 실현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은 다만 발생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구경꾼의 상태에 도달할 때에, 비로소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오랜 구도(求道) 여행의 종착점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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