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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송
이 법은 평등하다 이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머리가 있고 손 발이 있어서 그 맡은 바 事實을 履行한다. 이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학다리는 길고 오리다리는 짧아서 맡은 바 生涯를 처리한다. 이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짙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서 맡은 바 時節을 整理한다. 이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뫼는 높으니 높은데 맡기고 물은 낮으니 낮은데 맡겨서 造化의 妙를 가져온다. 이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부처는 미하여 중생이 되고, 중생은 깨쳐 부처를 이루며 간다. (261)
實로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통 마음의 씀이로는 안된다. 그야말로 三世間을 꿰뚫어서 生死關을 뛰어넘는 妙機를 주무르는 데 있는 것이니, 어찌 安逸을 꾀하고 趣味를 살리고 知識 넓히는 수단과 방편만으로서 이 문제가 다뤄질까 보냐. (182)
本來 無一物은 육조대사의 물건이요 本來 無一物이라 함도 틀린 것은 懷讓禪士의 물건이요 본래 무일물이라고 함도 틀린 것이 아님은 나의 물건이다. (184)
이 경전의 공덕은 性中의 煩惱가 쉬고 心中의 我所가 끊어진 無爲法이기에 그만 그대로가 虛徹靈通한 佛心인지라 三世間을 꿰뚫어서 生死를 오로지 여의는 소식이므로 그 理는 뚜렷하고 그 事는 평탄하고 그 道는 지극하니 非相으로서 實相을 삼고 非般若로서 實般若를 삼는 불가사의 不可稱量의 가없는 功德性과는 비유가 아니되기 때문이다. 이 功德性인지라 혓머리가 떨어졌으니 좋이 들내지 못하며, 마음뿌리가 끊겼으니 좋이 일컬으지 못하며, 있고 없음이 망하였으니 좋이 재지 못하며, 착하고 악함이 쉬었으니 좋이 나투지 못하는 當處로서 內外가 비어서 時空이 없으니 魔法과 佛法이 자취를 감추었고 上下가 비어서 中間이 없으니 正道와 邪道가 판가름을 여읜 消息處가 아닐까 보냐. 이 消息處인지라 바로 한 주먹으로 幻化城을 무찌르고 한 다리로 玄妙關을 뒤집으니, 어즈버야! 乾坤이 失色이요 日月이 無光이로다. (189)
부처님께서는 無我法에 통달하여야 참 보살이라 이르신 것이니 이럴진댄 되돌아서 참 보살님을 어디서 만나 뵙겠는가 실로 얻는 바의 마음이 있으면 三界를 다 뒤져도 못 만나 뵙는다. 그러나 얻는 바의 마음이 없으면 뜰 앞에 핀 꽃잎에서도 만나 뵙고 시냇가에 흐르는 물소리에서도 만나 뵙고 뿐이랴 글귀와 말마디에서도 만나 뵈옵느니라 알겠는가 이 소식인지라 허공이 내려앉으니 속히 거두어 들여라. (212)
「머뭄없이 머뭄」을 행하면 하늘눈 슬기눈 법눈은 물론이요 부처눈까지 얻는다. 그러나 찾으려면 天下를 휘돌아도 안된다. 왜 그런가? 찾는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부처님은 그 다섯눈의 당처를 밝히시기 위하여 恒河沙數의 恒河沙數인 세계를 비유하심은 중생이 다 恒河沙數의 그 恒河沙數인 뭉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뭉치마음은 다섯눈을 조종하는 主宰者이다. 이 뭉치마음이 能所緣에 휘둘려서 천만갈래로 굴리이나 그 當處는 하나이다. 하나인 마음은 萬人이 같으므로 如來心이라서 더하고 衆生心이라서 덜함이 없는 하나로서 춤도 추고 싸움도 한다. 惡種을 심어서 지옥도 꾸미고 善種을 심어서 천당도 세운다. 이 마음은 가없는 허공으로 더불어 비롯이 없고 마침도 없이 휘영청이 밝으나 , 들뜨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 뭉치마음으로 변하면서 굴리는 경계에 따라 강물이 흘러내리듯이 일초의 끊임도 없이 그대로 계속하여 쏟아진다. 만약에 이 뭉치마음이 쉴 때가 있다면 이 것은 까무러칠 때와 잠을 잘 순간일 것이라 하여두기로 하자. (221)
生死業을 녹여 냄과 아울러 나의 몸을 三界에 우뚝이 나투는 데는 슬기로운 수단과 방편이 절대로 따르기 마련이니 고인도 이르시기를 「다만 作福할 줄만 알고 性空함을 해득하지 못함은 새의 한쪽 날개가 부러짐이요, 다만 性空함을 볼 줄만을 알고 作福할 줄을 해득하지 못함은 수레의 한쪽 바퀴가 떨어짐과 같느니라.」하셨으니, 이는 大道로 더불어서 서로 계합이 안됨을 뜻함인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을 비교할 때 觀空者는 作福者의 따를 바가 못될 만큼 수승하지마는 금상첨화를 이루려면 作福도 따르게 마련이니, 이러므로 고인도 이르되 「莫言空打坐하라. 猶勝別勞心이로다」번역하여 「퍼질러 앉음만을 말하지 말라. 오히려 따로 마음을 굴림이 나으리라」하신 것이다. 실로 有爲가 비록 거짓이라 하겠지마는 버린즉은 功行을 이루지 못하고, 無爲가 비록 참이라겠지마는 헤아린즉 聖果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니, 福慧雙修가 大道의 基本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231)
最上乘 道理인 이 經을 통하여서 결사적인 정진에 뛰어드는 것만이 무량공덕을 쟁취하는 수단이요 방편으로서 어찌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보시의 복덕行이 이를 따르겠는가 말이다. 어즈버야 心地一片月은 照破三千界로다 번역하여 「마음자리의 한 조각달은 삼천계를 비추어 뚫었도다」어찌 슬기밖의 일에 마음을 던질까보냐 (273)
만약 여기에 미련한 고집장이가 있어서 비록 진실로 내가 있음을 주장할지라도 그 성품은 當處가 비어서 모습이 없으므로 하여금 어디에서 무엇을 끌어 잡고 내가 있음을 내세우며, 만약 法身으로부터 이루어진 나의 色身이 있다면 이 색신은 흰핏톨과 붉은핏톨로 뭉쳐진 세포의 가죽주머니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이나 이 흰핏톨과 붉은핏톨따위는 줄곧 죽고 생김의 연속으로 일정한 모습이라고는 없는데 그 무엇을 기준하여서 내라고 자신있는 장담을 하겠는가. 까닭에 뒤바뀐 생각을 가진 凡夫로서 비록 내가 있음을 우겨댄다손 치더라도 이 범부相도 또한 적멸인 것이요 범부상이 적멸이기 때문에 범부는 범부가 아니고 이 이름이 범부일 따름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므로 古人도 이르시기를 前念 不覺을 이름하여 범부라 이르고 後念 卽刻을 이름하여 범부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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