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 스승의 말씀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내가 공부하게 된 원인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난 과거 일제시대에 청년운동을 좀 했습니다. 
그 청년운동을 하다가 징역도 살고 그랬는데...
불교니 예수교니 하는 것들을 전부 미신으로만 알았습니다. 
그 당시 내가 어떻게나 똑똑했던지( ?) 일제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사람으로 안봤어요. 
그들이 어떤 자리, 어떤 위치에 있던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고, 
더욱이 민족적 사상도 없다고 얕보는 생각을 했어요. 
이거 탁 털어놓고 지나간 일을 말씀드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데,
아마 젊을 때는 이런 생각도 한번 갖게 되나봐요. 
그래서 사회운동도 하게 되었는데, 
날 아끼는 친구들에게 '네가 그렇게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렇게 한다고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겠나' 하는 충고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그들의 말이 옳거든요. 
전부 그 말이 긍정이 돼요 . 
하지만 긍정이 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내 생각이 없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나중엔 학교도 퇴학당하게 되고 취직도 하질 못하게 되었습니다. 
취직을 할려고 해도 일본 사람 밑에서는 꿈에도 되는 것이 아녜요. 
설사 내가 하고 싶어도 안되는 겁니다. 
항상 사상이 나쁘다고 감시를 받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정한 직업도 없이 있다가 나중엔 만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만주를 난 먹고 살기 위해서 갔어요. 
가긴 갔는데 만주나 우리나라나 꼭 한가지입니다(계속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았음). 
당시 경상남도 의 경찰 간부들이 만주의 경찰 간부로 옮겼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백봉은 부산과 경남 지역 청년동맹 위원장을 지낸 바 있었음). 
그러니 취직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취직을 할려고 해도 취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만주에서 동만산업개발사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광고지를 일본말로도 쓰고 한국말로도 써서 
일본의 관청과 한국의 관청에 다 보냈습니다. 
이 회사는 금광을 소개하고 토지도 소개하고,
만약 토지를 살 경우 농사까지 지어준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사실 자본 한 푼 없이 무작정 벌인 겁니다. 
한 열흘 있으니까 일본에서 답장이 오고 한국에서도 왔습니다. 
한국에서 온 답장에는 이력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이력서를 보고 내가 울었습니다.
그 내용이, 
	나를 그 회사에 넣어 주시오, 
	월급도 얼마 안주셔도 됩니다, 
	내 뼈를 만주땅에 묻을랍니다...이런 식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가만히 보니 내 신세나 다를 바가 없어서 눈물을 흘린 겁니다. 
어쨋든 얼마 지나니까 헌병대에서 헌병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날 유치장으로 데려가 집어 넣었는데, 거기서 6-7개월 고생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붙잡혀 들어간 거예요. 

그 당시엔 필요없는 인간은 수갑을 채워서 밖으로 데려나가 꿇어 앉힙니다. 
그리고는 수갑을 풀어주고 구덩이를 파게 한 뒤에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당시 나하고 함께 감옥 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 최씨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무식한 사람인데 늘 하는 얘기가 딸이 보고 싶다고 그래요. 
딸이 그때 열다섯살이었는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아버지 나 마누라보다는 딸이 제일 보고 싶다고 그래요. 
또 공산당 유격대 대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김씨라고 했죠. 
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이 잘 났습니다. 
또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난 사람이 있었고,
공산당당원인 중국 사람과 일본인도 한명 있었 어요. 
일본인은 경찰 서장하던 사람인데,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붙잡혀 왔어요. 
그런데 그 조그만 유치장 안에서도 그렇게 사회가 다르고 이념이 달라요. 

또 내가 있던 여관 주인과 거기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도 
나 때문에 다 붙잡혀 왔습니다. 
무슨 죄목인 지도 모르죠. 
내가 죄가 없는데 그 사람들이 죄가 있을 턱이 있나요. 
그 사람들에게 '김기추를 언제부터 아느냐?'고 하면서 고문을 해요. 
사실은 다 알면서도 기를 꺽는다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한번씩 불려 나가면 어찌나 두들겨 패던지 걸어 들어오는 사람 이 없어요. 
좌우간 반죽음이 되서 들어와요. 그런데도 나는 부르질 않아요. 
난 '한번 불려나가서 맞기 시작하면 굉장히 맞을려나 보다. 
까딱하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헌데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은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문소리만 나면 가슴이 덜컥했어요. 
게다가 반죽음이 되서 돌아온 사람들은 전부 내 걱정을 하는거예요. 
그거 참 할 짓 아니데요. 

당시 내가 무신론자인데-내가 이 얘길 하려고 옛날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회칠한 감방 벽에다 한문으로 관세음 보살을 쓰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부산에서 청년동맹 위원장을 하다가 붙잡혀 들어가 징역을 살았는데, 
그때 책을 보다 관세음보살 이란 명칭을 알긴 알았어요. 
아뭏든 이 관세음보살을 감방 벽에다 쓰기 시작했는데,
한 5-6개월 쓰니까 벽 전체가 관세음보살로 꽉 찼어요. 
물론 벽에다 낙서를 하면 걸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겁을 내면서도 아무 이상이 없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아마 내 딴엔 죽기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아까 말했던 딸 생각하던 최씨가 그 방에서 제일 먼저 죽었습니다. 
이 사람이 밖에 나가서 죽을 때, 
'에이, 니기미 X팔'하고 앉은 뒤에 한 칼로 죽었다고 밥 심부름 하던 아이가 소식을 전해줬어요. 
또 공산당 하던 김씨는 헌병에게 다가가 '날 살려다오,
내가 그 은혜는 갚을께.날 살려다오'라고 말하더라는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하,무식하긴 두 분 다 무식한 분인데,최씨가 좀 더 여유가 있구나,
죽는 판에도 그렇게 늠름하게 갔으니." 
또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가 중국 사람인 그 아이는 
만주국 국가를 부르고 죽었다고 전해줘요. 
그도 공산당으로 들어왔는 데,
마지막에 만주국 국가를 부른 것은 혹시 살려주지 않을까 생각해서 부른 것이라 생각했어요. 
아뭏든 감옥 안이 이런 판이었어 요. 
한쪽에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반쯤 죽어서 들어오고,
한쪽에선 모가지가 떨어지고 있었으니 말예요. 
그러니 내 딴엔 좀 놀래고 걱정스러우니까 온 벽에 전부 관세음보살이라고 쓴 것 같아요. 
겁나는 줄도 몰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다가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생각이 그리 깊지가 않았어요. 그거 참 이상한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부 나오라고 해요. 
방을 점검하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밖으로 나오면서 '아이고,오늘 내가 죽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어요. 
감방 벽에다 잔뜩 써놓았으니까 말예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전부 앉아 있는데,사토라는 헌병이 와요. 
이 사람이 3백명까지 목을 자르고 그 다음부턴 안잘랐다고 자기 스스로 말한 사람입니다. 
이 자가 다가와서 '어이,김기추,너는 관 세음보살을 막 써놓았데'라고 말해요. 
어이쿠,이젠 큰일났구나 생각하는데,그 자의 표정을 보니 웃으면서 말을 해요. 
퍼뜩 머리 에 떠오르는 것이 
'일본엔 불교가 성하다던데 이 자가 불교 집안인가 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죽을 판이라서 아무 대답 도 못하고 있는데,
가만히 얼굴 표정을 보니 사람을 죽이려는 표정이 아니예요. 
'까딱하면 내가 살는지 모르겠구나'-이렇게 생각 하면서 감방에 들어와보니,
벽에 관세음보살 써놓은 것도 그대로 있어요. 
당시에 나는 쓰면서도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다 써놓고 도 '관세음보살'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우면서 쓴 것 같아요. 
안 외우면 그렇게 써지질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비심을 발동시키면 바로 여러분 자신이 관세음보살의 대행기관입니다. 
관세음 보살과 여러분이 둘이 아니예요. 
또 여러분은 파순(波旬;악마)이도 될 수 있습니다. 
모습놀이 모습[相]에만 집착해서 살아가는 것을 하면 그 몸 그대로 파순이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런 걸 알 턱이 있나요. 
그러다가 한 달쯤 있는데,헌병 오장(伍長)인 기무라라는 자가 
운동복을 입고 막대기를 들고 들어왔어요. 
덜커덩하고 큰소리를 내면서 문을 열더니, 내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이제,난 죽는구나. 
내게 물을 먹이면 물 먹을 자신은 있는데, 정신은 잃지 말아야겠다." 
단지 이 생각 뿐입니다. 
그래서 따라 나가니까 기무라가 목욕탕으로 가요. 
'그렇지,날 물 먹인 뒤에 때릴려나 보다'라고 생각 하는데, 
그가 문을 열더니 
'어! 아직 준비를 안해 놓았네'라고 말한단 말예요. 
그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 먹일 준비를 다 해놓고 날 불러야될텐데, 이거 이상하구나,
까딱하면 내가 살는지 모르겠구나." 
목욕탕에 고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자, 기무라가 날 다른 방으로 데려가요. 
그 방에선 다른 사람을 취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하, 다른 사람을 취조하고 있는 방을 빌어서 가니,
이건 계획적으로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방에서 취조하고 있던 자가 날 보더니 
'아,이게 김기추인가?'하는 겁니다. 
방 안에 들어간 나는 방 한 쪽에 서 있었는데,
날 데리고 나온 기무라가 내게 의자를 권해요. 
내가 의자에 앉자,
기무라는 연필을 가지고 와서 내 손가락에 끼운 뒤에 누르는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뼈가 부숴져도 상관 안합니다. 
그렇지만 거짓으로 아프다고 하니까,
'에이'하면서 좀 놔두다가 감방으로 돌려 보내 는 거예요. 
감방으로 돌아오니까, 사람들이 날 보고 놀랍디다. 
내가 무사히 돌아오니까 놀라는 거예요. 
그리고나서 며칠 뒤에 풀 려났는데,
그 뒤부터는 헌병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먼저와는 달라요. 
취직을 하라는 거예요. 
아마 그들이 날 살려서 이용을 할 것 인가,
아니면 해로우니 죽여버릴 것인가 의논하다가 살려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취직을 하는데, 당시 노구교 사건이 터졌어요. 
그 사건 때문에 헌병 대장이 현지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나도 집에 좀 다녀 오겠다고 하면서 집으로 온 뒤 흐지부지 안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