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 김기추1
1908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백봉 김기추 거사는 대범하고도 반항적인 기질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50이 넘은 늦은 나이에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무(無)자 화두로 정진하던 중 1963년 1월 활연대오(豁然大梧)한 우리시대의 도인(道人)이다. 큰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속가(俗家)에 머물면서 거사풍(居士風)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많은 철학교수와 예술가들이 그를 찾았으며 청담, 전강, 구산, 경봉, 탄허, 혜두, 강혜스님네들과 교 분이 있었다. 자비심에 넘치는 열정적인 설법에 감동하여 닫힌 마음이 열리고 눈에서 분별의 비늘이 떨어졌으며 망상을 놓아 참다운 자유와 평화로움에 이른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1985년 8월 2일 아침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입적하였다. 중생에 대한 지극한 연민으로 열반에 든 뒤에도 거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쳤다고 한다. 1. 감방벽에 쓴 관세음보살
백봉 거사의 본명은 김기추(金基秋)다.
1908년 2월 2일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원을 경영하였다.
어린 시절을 전통적인 유학(儒學)의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며, 부산 영도 초등학교를 나와 부산 상업학
교에 진학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조선어와 조선사를 교과목에 넣어주길 요청하고 일본어로 된 학교 교명을 바꾸려는
운동을 선동하다가 주동자로 퇴학을 당한다.
그 뒤 백봉은 민족 단결과 조선 해방에 뜻을 둔 청년 동맹에 가입해서 일제에 항거하지만, 사상범에
대한 일제(日帝)의 가혹한 탄압으로 백봉은 요시찰 인물이 되어 부산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이 수감생활을 할 때 동생이 당시 일본어로 된 {채근담}이 나 {벽암록} 같은 책을 넣어주었는데,백봉
은 {벽암록}에서 참선법에 대한 짧은 글을 읽고 무작정 면벽(面壁)을 했다.
이틀을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까 벽 밖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이고 전깃줄에 참새가 몇마
리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창문틀을 잡고 밖을 바라보니 정말로 사람들이 오가고 전깃줄에 참새가 앉아
있었다.
백봉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당시 그는 사회운동과 민족주의 사상에 전념하던터라 불교나 기독교 등의 종교를 미신으로 치부하던
무신론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제하의 탄압과 해방 후의 온갖 시련을 거치면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회의로
발전했지만, 스스로 내린 결론은 양심적으로 살다가 깨끗하게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감옥을 나온 백봉은 계속해서 일제에 항거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피신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일제의 감시를 피하지 못하고 결국 헌병대에 잡혀가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바로 이 감옥에서 그는 관세음보살과의 인연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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