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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비르 8
귀 없이 그 소리를 듣는다
17.
나는 종교적이지도 않고 무종교적이지도 않다 나는 계율적으로 살지도 않고 감각적으로 살지도 않는다 나는 <말하는 자>도 아니요 <듣는 자>도 아니다 나는 하인도 아니요 주인도 아니다 나는 구속받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 나는 집착하지도 않고 초연하지도 않다 나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나는 지옥에도 가지 않고 천국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종사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일에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 뜻을 이해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까비르는 보고 있다 설립도 아니요 파괴도 아닌 것을
18.
하아프의 소리 들려온다 손도 없이 발도 없이 춤이 시작된다 손가락이 없이 하아프를 켠다 귀 없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귀다 동시에 그는 듣는 자이다 문은 굳게 닫혔다 그러나 그 속에 향기가 있다 이 만남은 누구도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지혜 있는 이는 이를 이해할 것이다
오쇼라즈니시 강의
** 휘트먼의 시 동물이 되어 살고 싶네 그들은 평온하며 자기만족을 아네.
동물들을 보라. 그들의 침묵이 그 평화로움이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 태도가 몹시 부러울 수도 있다. 동물들을 보고 인간은 타락한 것이라 보는 철학자도 많았다. 성경은 인간은 신의 낙원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는 서양의 견해다. 동양의 견해는 다르다. 인간이 타락한 것은 인간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높지 않으면 어떻게 타락할 수 있겠는가? 동물은 타락이 불가능하다. 동물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죄를 짓기 위해서는 일종의 자각성이 필요하다. 오직 인간만이 그런 능력이 있다. 오직 인간만이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나쁜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죄인과 성자는 다르지 않다. 죄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자 또한 가능하다. 동물에게는 죄인도 없고 성자도 없다.
** 인간은 모험 그 자체다. 아주 위험하기 이럴데없는 모험이다. 인간은 보다 더 높이 위험을 시도한다. 이것이 인간이 그토록 추락할 수 있는 원인이다. 인간은 결코 동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비록 숲에가서 동물과 같이 산다고 해도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그대는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나쁜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 의식의 자각성은 피할 수 없다. 의식이란 일단 한번 얻게되면 다시는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하여 많은 실험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동굴로 돌아갔고 희말라야로 돌아갔고 수도원으로 묻혔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성자가 되지 못한다. 위험을 피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은 말할 수 없이 위험스러운 길이다.
** 인간은 결코 에덴동산으로 다시 갈 수 없다. 인간은 의식의 길, 자각의 길, 사랑의 길, 기도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인간은 동물과같이 순수해 진다. 그렇다고 동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의 순수는 소의 순수요, 인간의 순수는 인간의 순수다. 소의 순수는 의식의 혼수상태다. 성자의 순수는 의식의 자각상태다. 소의 순수는 그 이상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의 순수는 그 자신의 자유선택에서 왔다. 소의 순수는 무지에서 오고 인간의 순수는 지혜로부터 온다.(225p)
**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종교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이세상 전체를 속인다. 까비르는 말한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무 종교인도 아니다. 영혼이 율동으로 넘치는 사람, 영감의 불꽃으로 눈부신 사람, 그런 사람이 종교인이다. 어느 것에도 점령당하지 않는 사람-그런 사람이야말로 종교인이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종교의 형식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신의 사원에 있다. 살아있는 생명의 차원에 있다.
** 예수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몇명이나 이 진정한 뜻을 알아들었을까. 전체와 하나가 된 이의 초월적인 영원성. 방종속에서 살아간다면 그대의 삶은 탐욕일 뿐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탐욕에 의하여 파괴된다. 지나치게 계율적으로 살면 역시 그대는 파괴된다. 탐욕이 아니라 권위주의에 의하여 파괴된다.
** 기독교의 양심, 불교도의 양심, 모슬렘의 양심이 다르다면 이는 가짜다. 진정한 양심이란 오직 하나 진정한 신의 마음, 같을 뿐이다. 사회나 종교가 그대에게 주입해 놓은 우상에 좌우되지 말라. 그 거짓 농간에 속지 말라. 본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듯이 사회의 노예도 되지 말라. 진정한 신은 그대를 오직 축복할뿐이다. -나는 말하는 자도 아니요 듣는자도 아니다.
** 나는 하인도 아니요 주인도 아니다. 지배에 대한 생각은 투쟁으로부터, 어리석음으로부터,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온다. 주인이 되려 하지도 않고 노예가 되려고 하지도 않을 때 자유가 가능하다. 그 누구도 그대의 주인이 되게 하지 말라. 그누구도 그대의 하인으로 취부하지 말라. 그들은 같은 배를 탄다. 남자들은 여자의 주인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꼼작도 못한다.
** 인도의 경우 성자의 기준은 돈의 추구로 판단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돈은 돈일 뿐, 돈은 신이 아니듯이 또한 돈은 더러운 것도 아니다. 일생 돈을 지니지 않는다고 성자라 불리어도 좋다는 것은 넌센스다. 돈은 거저 유통의 수단이다. 까비르는 말한다. 나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나는 지옥에도 가지 않고 천국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지옥이란 두려움을 그대의 주관에 의하여 투사된 그 두려움을 뜻한다. 정말로 이해한 사람은 보상과 심판으로서의 지옥과 천국을 만들지 않는다. 그의 삶은 지금 여기다. 이들은 둘이 아니요 같은 현상의 양면이다. 미래에만 매달려 사는 인간들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냈다. 탐욕을 통해서 천국의 이미지를 만들고 두려움을 통해서 지옥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 천국을 만들고 적을 위해서는 지옥을 만든다. 모든 종교가 이런 식이다. 그러나 탐욕과 두려움의 차원을 넘어가지 않는한 누구도 자신을 구제할 수 없다. 탐욕과 두려움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지옥과 천국이 존재하는 곳은 그대의 탐욕과 두려움 속이다. 탐욕과 두려움이 없으면 천국과 지옥은 저절로 사라진다.
** 진리가 완벽해 질 때 말하는 자는 듣는자와 하나가 된다.
** 누가 지혜로운가. 찬성도 반대도 않는 사람, 어떠한 논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어떠한 선입견도 없는 사람, 어떠한 결론에도 포위당하지 않는 사람, 진리와 함께라면 어느곳이든 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모든 결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그가 구도자다.
** 오돈의 시다. 필연적인 운명은 우연이요 진실은 뜻밖에 마주치는 것- 진실은 넓다. 너무 넓어서 그대의 긍정과 부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그리고 여타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 진실 속에 그대의 모든 범주는 용해되어 버린다. 진실은 뜻밖에 마주치는 것-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러므로 보지 않고 보아라.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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