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병산서원 2

  서원 경내의 선물로는 존덕사, 내삼문, 입교당(立敎堂), 동재, 서재, 전사청, 장판각, 만대루(晩對樓),
복례문(復禮門), 고적사 등이 있다.
  
  복례문은 서원의 정문이다. 본래 만대루 동쪽에 있던 대문을 1921년 이전하여 중건한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규모의 솟을대문이다. '복례(復禮)'는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
仁)"에서 따온 말이다. "자기를 누르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라는 이 뜻은, 곡 세속적인 자신의 마음과
자세를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이층 누각 만대루가 가파른 계단 위에 옆으로 길게 서 있다. 만대루는 정면 일
곱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누 아래에는 자연스런 형상 그대로의 구불텅한 수많은 나무
기둥이 열을 지으며 이층 누를 바치고 있다. 서원은 이 누 밑을 지나 강당 앞마당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의 기둥으로 구성된 아래층과는 대조적으로 위층은 반듯하게 다듬은 누마루 기둥들이 정제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성리학적인 자연관과 조선 유학의 꼿꼿하고 청청한 맥이 동시에 아래, 위층 건물에
살아나 있는 듯하다. 만대루의 '만대(晩對)'는중국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에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에서 따온 것이다. 누각의 이음을 시에서 빌려 왔듯이 만대루가 얽어
내는 공간은 가히 시적이다. 이곳에 서면 한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을 낀 자연이 펼쳐지는 경관을 읽을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원 일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원의 자리로 번잡한 거리의 우마(牛馬) 소리를 멀
리해 뛰어난 경치를 지닌 곳을 택하는 까닭은, 영기(靈氣)를 지니고 있는 곳이어야 걸출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만대루 누마루에 서면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 만대루는 유생들이
유식도 하고, 풍관을 보며 시회(時會)를 가졌던 곳이다.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조성된 공간 서쪽으로는 물길을 끌어만든 작은 연당 광영지(光影池)가 있는데, 
방형의 연당 속에는 원형의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방지원도(方池圓島)의 주변에는 봄부터 붉게 피
는 배롱나무와 사철 청청한 대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강당인 입교당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세 칸은 대청이고 양쪽 각 한 칸
은 온돌방이다. 동쪽의 온돌방 명성재(明誠齋)는 원장이 기거하던 곳으로, 이곳에 앉으면 서원 모든 곳이
읽힌다. 앞쪽으로는 동,서재 등 강학공간, 그리고 만대루와 그 건너 자연이, 강당 동쪽 협문 밖으로는 전
사청이, 강당 대청 뒤 판문 밖으로는 장판각이, 강당 동북쪽 뒤로는 전사청과 사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방 경의재(敬義齋)는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강당 대청 가운데에 앉아 만대루가 들어선 앞쪽을 바라보면, 서원 일대의 경관이 또 다른 모습으로 얽
혀 들어온다. 만대루 이층 일곱 칸 기둥 사이로 강물과 병산과 하늘이 일곱 폭 병풍이 되어 얽히며 펼쳐
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것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극적인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 바로 나
자신이 자연 가운데에 묻혀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강당 앞마당 좌우에는 원생이 기거하며 수학하던 동재와 서재가 위치했는데, 정면 네 칸의 맞배지붕 건
물로 전면에는 툇간을 조성했다. 동재의 큰방은 동직재(動直齋), 서재의 작은 방은 마루방으로서 장서실
(藏書室)이다.

  강당 동쪽 옆을 돌아 뒤로 들어가면, 언덕 위에 있는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사당인 존덕사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 북벽에 유성룡을 주벽으로 모시고, 동벽에 유진을 종향
하고 있다. 사당 앞 동측 계단 옆에는 관세대가 있고, 사당 기단의 양측 계단 앞에는 정료대가 길쭉한 
팔각 석주의 구조물을 하고 서 있다.

  병산서원 만대루와 입교당 대청에서 읽히는 건축공간과 경관의 얼개는, 건축을 둘러싼 산천경개가 어떻
게 건축의 공간미학으로 재구성되어 되살아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병산서원의 건축은 우리
나라의 산하를 알고, 그 속에 건축을 얽어 만든 정신과 방식을 아는 데 길잡이가 되는 실례를 잘 보여준다.
병산이 있고 낙동강이 설정된, 이러한 산하를 갖춘 곳에 하나의 인공물을 집어넣는 데는 고도의 기술을 필
요로 하는데, 병산서원은 태초부터 있어 온 이 자연에 공간을 열리게 하고 트이게 하는 방식으로, 마치 자
연 그대로의 모습인 듯한 건축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사위가 조용한 청아한 밤에 서원 일곽을 이루는 공간은 마치 길고 짧은 긴장과 완화가 이어지는 가
락으로 가득 찬 듯하다. 담과 건물들로 둘러싸인 서원 뜰은 텅 비었으되, 그냥 텅 비어 있지 않음을 지붕
과 담의 선에서 나타나는 리듬과, 그것을 배경으로 저 멀리 서 있는 병산과 소나무에서 읽을 수 있다. 텅
빈 마당위를 덮는 나무와 그 속을 흐르는 구름과 달을 배경으로 기둥과 누각 지붕 사이로 다가오는 병산의
산세라든가, 들창문을 통해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병산서원이 예사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
닫게 해준다.

  병산서원이 주는 이러한 건축미는 눈으로, 소리로, 어둠과 빛으로 느끼는 그 모든 것이다. 병산서원은 
한국의 서원건축이 주는 아름다움이라는 가능태를 우리에게 실제로 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