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선산, 자는 계온 또는 효관, 호는 점필제, 시호는 문간이다.
1431년 (세종 13년)에 아버지 숙자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밀양 대동리에서 태
어났다. 아버지는 선산 영봉리 사람으로, 동향인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어
아들 종직에게 전수하여 뒤에 영남학파의 종주로까지 이르게 하였는데 숙자
는 밀양의 박홍신의 무남독녀에게 장가 들었다가 장인 박홍신이 대마도에 나
아가 싸움터에서 전사하자 밀양 처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종직을 낳았다.
종직은 어릴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교육을 받았는데 총명하여 날마다 수 천자씩
을 기억해 갔다고 한다. 아버지의 교육은 길재의 교육방법을 따라 동몽수지.유
학자설.정곡편을 거쳐 소학, 효경, 대학 및 논맹 순으로 단계적인 과정을 철저
히 밟고, 사서.오경을 차례로 배웠지만 특히 소학 을 학문의 기초로 삼고 어릴
때부터 시를 잘하여 이름이 크게 떨쳤다.
1447년 16세때 향시에 응시하였다가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크게 분발하여 21세에
금산 봉계의 현감 조계문의 딸을 맞아 결혼함으로써 김천과 깊은 인연을 맺고
김맹성과 공부하고,
1454년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여 주역등 경전을 탐독 하였다.
1456년 25세에는 세조 즉위를 축하하는 증강시에 중형 종석과 함께 응시하여 형제가
모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밀양으로 내려가 장례를
치르고 복상여묘하였다. 29세에 형 종석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로써 벼슬길이 열려 곧 근지영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는데 그 문명이 조정에
널리 알려져 형과 함께 한직을 주어 금산 출신의 허종. 이숙감을 비롯하여 어
세공.이극균.어세결.민수.정효상.이영근 등을 선발하여 사가독서케 하였다.
이때부터 문명으로 유명하여 각종 책문을 임금께 올릴 정도이었다. 세조는
학문을 권장하는 방책으로 대표적인 연소한 문신을 뽑아 한직에 제수시키고
예문관의 직까지 겸하게 하여 매일 번갈아 토론 강습토록 하였는데 여기에서
도 종직은 이파.정간종.이맹현.김종연.어세공.류문통.정영통.송춘림.김순명등
과 함께 참가하였다.
1471년 40세에는 성종이 즉위하여 재행이 겸비한 학자를 선발하여 예문관을 겸직케하
였는데 종직이 이에 뽑혀 홍문관수찬 지제교에다 경연검촌관과 춘추관기사관
을 겸하였다.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을 청하매 고향 가까운 함양군수
로 부임하게 되었다. 군을 다스림에 있어서 성리학적 실천윤리를 실천하였고
춘추로 향음례와 양노례를 행하고 효제와 주자가례대로 상제봉행을 권장하며
교육에 있어서는 길재.김숙자의 교육방법 대로 소학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러한 성리학의 윤리실천으로 학행일치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함양
을 찾는 문하생이 운집하였다.
수제자 김굉필.
정여창이 이때에 수학한 제자이다.
공은 전라감사.한성좌윤.형조판서를거쳐
1489년 (성종 20년) 58세에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김천으로 돌아와 백천에 잇는 그의
집에 서당 경렴당을 짓고 학문과 후배양성에 전념하였다.
1492년 (성종 23년) 밀양 외가에 갔다가 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8월에 밀양에서 별세
하니 향년 6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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