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 김굉필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본 관 : 서흥
호 : 사옹 ·한훤당
별 칭 : 자 대유, 시호 문경
주요저서 : 《경현록》 《가범》 《한훤당집》
본관 서흥(瑞興). 자 대유(大猷). 호 사옹(蓑翁) ·한훤당(寒喧堂). 시호는 문경(文敬).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주로 현풍에서 성장하였으며 인근 함양의 군수로 잇던 김종직을 만나
성리학을 배운다.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햇다.
1471년 18세 결혼 처가는 합천 야로
1480년(성종 11년 27세) 초시에 합격하였으며,
1494년 40세에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주부
(主簿) ·감찰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4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조의제문 건에 연루 평안도 희천에 유
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의 임지로 와 있던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
을 전수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로 순천에서 사사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되어 도
승지가 추증되고, 1517년에는 정광필(鄭光弼) 등에 의해 우의정이 추증되었
다. 학문경향은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로 이어지는 의리지학(義理之學)
을 계승하였으며, 치인(治人)보다는 수기(修己)에 중점을 두었다. 이로 인하
여 여러 사화를 통하여 제자들이 많이 연루 되기도 햇지만 또한 살아남아 성리
학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사료된다.
문인으로는 조광조 ·이장곤(李長坤) ·김안국(金安國) 등이 있으며, 16세기 기호
사림파의 주축을 형성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정여창(鄭汝昌) ·조광조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과 함
께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됨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
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는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
희천의 상현서원(象賢書院),(회천은 평북 영변북쪽에 잇다)
순천(順天)의 옥천서원(玉川書院), 임청대, 추모비
달성 구지면 도동동의 도동서원(道東書院)이 잇다.
문집에 《한훤당집》, 저서에 《경현록(景賢錄)》 《가범(家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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