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과 정암, 남명과 망우당과의 관계에 대하여 - 송병관 무릇 스승은 제자의 위업으로 인하여 더 빛난다. 한훤당선생과 남명선생이 바로 그분들이시다. 스승이신 점필재로부터 소학으로 한몸을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한몸을 세우시고 관직에 오르신 스승인 점필재 선생에게 간곡하게 스승의 길로 국가의 개혁을 인도해 주십사했던 시를 올리셨 던 분. 또 그 스승으로서 관직에 나갔으나 그 시대적 상황에 용기있게 행동하시기에 역부족이 었던 당시의 상황을 답시로 내리셨던 점필재 선생, 그러다가 후일 점필재선생의 제자라는 관계 로 평안도에 유배되셨다가 정암을 만나 1년동안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아끼시지 않고 가르침 을 주셨던 한훤당. 그 한훤당 선생과 정암과의 관계, 가까이서 1년동안 있기에 스승의 조그마 한 실수를 놓치지 않고 지적해주는 정암에게 "네가 바로 나의 스승"이라고 고백하는 가르침의 용기있는 아름다움, 그러나 그 실천 도학에 문무 중 문을 통한 개혁을 하려 했던 것이 너무 과 격하여 끝내는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마치고 말았던 사상가이자 개혁자였던 정암선생. 무릇 살아남아 그 정신을 크게 하였으면 좋으련만 그 과격함이 바로 이 한훤당선생의 점필재 선생과의 관계에서 비롯됨이 아니었는지 후학은 부끄럽게 늘 한훤당 선생의 높은 뜻에 의문을 담는다. 마땅히 그 뜻을 구하는 시기였다면 그 구하려 함이 빛이 나겠지만 하면서도 그 가지 않는 선택의 길이었기에 늘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두분의 조선 사상사의 큰 흐름은 감히 죽음과 함께 밝은 도학과 절의로 큰 길을 내셨던 두 분이 아니셨던가! 무엇이 바른 길인가? 무엇이 바른 가르침인가? 이에 비하면 남명선생과 망우당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와는 다르다. 남명선생의 제자 중에는 출중한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망우당 곽재우는 빛나는 큰 별이다. 그 분은 문과 무로 조화된 사상으로 국가에 충헌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 남명의 제자로 도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무인이시다. 그 기가 살아있어 2000여인의 의병의 믿음을 구하고 충으로써 사직을 위난한 지경 으로부터 구한 분이시다. 평소 남명선생과의 일화는 외손주사위가 되는 광영도 함께 하지만 내 용은 전하지 않지만 스승과 제자의 연으로 스승의 뜻을 잘 헤아려 국가적 위난을 잘 극복하고 험란한 세상에 그 숱한 벼슬자리의 유혹에도 연연하지 않고 무엇이 바른 길인가를 찾아 사시었던 망우당 선생의 뜻은 남명 선생의 가르침이라 생각할 때 한훤당과 정암과의 관계를 서로 비교되는 생각으로 함께 한다. 단성소라는 글에서 임금과 수렴청정의 문정황후를 두려워하지않는 기개로 상소를 하였던 점이라든가 당대의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선생의 마지막 유언에 화려한 장례를 하 지말고 비문에 처사라는 하라는 말을 했다는 말씀에 "진정한 처사는 나!"라고 주장한 남명 조식 의 진정한 처사사상은 오늘날에 시사되는 바 크다 하겠다. 남명 선생과 망우당선생은 끝까지 살 아 남으시면서 지방의 큰 학문의 중흥을 일으키셨던 분이셨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 큰 관리를 지내면 서울에 터를 잡고 눌러 앉는 경우가 많은데 낙향하여 지방 문화의 중흥의 꾀했던 과거의 전통정신은 이제 그 기맥의 흐름을 통해 지방화에 걸맞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훤당 선생과 정암사이의 관계, 남명선생과 망우당과의 관계를 감히 글로 올려 바른 길을 찾는 노력을 다시금 갖게 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