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데】
『신화론』과 같은 책의 시리즈를, 인간의 시도들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는 각성의 확인으로 마치는 것은 철학적 신조를 공표하는 셈인데요. 사람들은 때때로 이 '아무것도'라는 말을 당신의 심오한 철학의 표현으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나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내 말은 인간이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되, 자신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지구가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때에는 인간의 작업 중에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한 사람들의 주장과는 전혀 달라요.
당신이 방금 표현한 나의 '심오한 철학'은 그 모순에 부딪히고, 그 모순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나의 믿음을 과학적 지식에 둡니다. 내가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에게 배운 모든 것은 나를 열광시킵니다. 이보다 더 나의 사유를 자극하는 것은 없어요. 동시에 해결된 문제, 혹은 해결되었다고 우리가 믿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이렇게 해서 한없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사고능력이 실재와 상응하지 않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며, 또한 실재의 깊은 본성은 재현의 모든 노력을 벗어나 있음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칸트입니다. 그러나 칸트는 이율배반이라는 사실에 입각해 인간의 인식능력이 매우 빈약한 것임을 인정하고서, 도덕적인 삶에서 절대적인 토대를 찾으려 희망했습니다.
이러한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면 극단적인 칸트주의자hyper-kantien 인 나는, 도덕적 삶을 순수이성의 문제의식 속에 포함시킵니다. 도덕적 삶도 극복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 요소를 지니고 있겠지요. 이보다 더 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과학적 지식이 파스칼Blaise Pascal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거시적인 그리고 미시적인 관점과 통해 있다면,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챦은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로부터 최후의 역설이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챦음을 보여주는 이 지식이 어느 정도 정당한 것인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혹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우리는 그 지식이 진정한 지식인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우주가 인간의 사유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유 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거기에서 탈출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 입장이 철저한 회의주의자라고 간주하겠지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겉모습만 맴돌도록 운명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어디에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명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의 겉모습과 결코 확실하지 않는 의미의 배후에 있는 의미의 고된 탐구 사이에서, 수천 년 간의 경험은 인간이 적절한 자리를 잡기에 유리한 매개적인 수준이 존재함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도덕적인 그리고 지적인 안락을 좀더 발견하고, 다른 곳에서보다 더 기분 좋다거나 기분 나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쾌락주의의 입장만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 수준이 바로 과학적 지식, 지적 활동, 그리고 예술적 창조의 수준입니다.
그 수준을 고수합시다. 그리고 때로 우리 자신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우주와 우리 자신을 망라하는 죽음의 경고memento mori('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를 인식하면서, 아주 단호히 모든 실질적인 목표들을 믿는 것처럼, '마치 그러한 것처럼 행동합시다faisons comme si.'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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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디디데 에리봉
송태현 옮김
(주)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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