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6 /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당신은 아는가. 지금이 당신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 것을….
이 책은 소설가 조경란이 문득 ‘인생이란 그런 것, 좀체 화사한 날들은 오지 않는 것’이라고 깨닫게 됐을 때 제출하는 삶의 중간 보고서다.
슬픈 것도, 담담한 것도 아닌 시련이 서늘하게 몸을 관통하고 흘러가는 뒷모습으로 독자의 눈알을 뻑뻑하게 만들어도 그녀의 책임이 아니다. 조경란은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모텔로 도망나온 엄마·여동생과 함께 새우잠을 자고, 그 욕실 변기에 앉아 ‘검은 책’을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행복한 악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제이크’라고 불리는 책 속의 악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꿈꿀 때 내 내면의 힘이 불러내오는 상징적인 존재 같은 것’(19쪽)이다. 제이크는 거실 소파에도 누워 있고 수도꼭지에서 기어나오기도 하며 옥상 난간에도 붙어 있다.
작가 삶의 중간보고서
그녀는 자신의 서러운 시절과 눈물들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의 손목을 잡아끈다. 인생의 전환과 변화를 위해 제이크를 만나러 가자는 것이다. 불현듯 울컥거리는 목메임은 왜 언제나 잔을 비우지 못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일까. 누구도 자기의 그늘 속에 들어가서 쉴 수는 없기 때문일까. 조경란은 “간절한 것이 오지 않을 때, 그래서 애를 태워야만 했을 때” 비로소 삶을 밀고 나갈 힘이 생겼다고 독자에게 억지를 부려본다. 빛나는 고립을 위해서일까.
누구는 서른에 생의 잔치를 끝냈다고 했으나 조경란은 아직 마흔이 아득한 나이에 “사랑도 한때였다”는 말로 육신에 남아 있는 풋내를 털어낸다. 자전적 산문집 발간이 젊은 소설가에게 언젠가 건너야 할 강처럼 가로놓인 것이라면, 조경란은 이제 상처보다 더 아팠을 속내를 드러내려 차가운 강가에서 옷을 벗고 몸을 담근다. 그녀가 꾀를 벗는 모습에 강둑의 독자들이 동그랗게 눈을 뜬다. 찬 수박을 미처 삼키지 못한 아이의 입에 당신의 입을 댈 때 알게 되듯, 부드럽고 차가운 것의 절정은 무방비 상태다.
조경란은 1996년 등단했고,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같은 단편집, 그리고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같은 장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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